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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간 SIAI의 요즘 변화를 멀리 떨어져 지켜보다 보면 내가 얼마나 좁은 시야로 교육 사업을 이끌었는지도 느끼고, 한편으로는 이게 내가 이끌었어야 하는 방식이 아닌 가는 생각, 그리고 내가 Under-institutionalized 였기 때문에 저 친구들에게 많은 피해를 줬겠다는 깨달음도 얻는다.
이 친구들이 SIAI 경영권을 넘겨받고 가장 먼저 서둘렀던 것은 수익화 모델을 체크하는 것이었다.
제일 처음에는 Bootcamp를 쳐다보더니, 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할려다가 결국 Bootcamp를 접었다. 개발자 수준의 일반 사용자들에게 이름을 알리는 사업의 가치가 없다는 판단과, 수익성이 안 나온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어차피 개발자들은 SIAI가 수학, 통계학 기반의 제대로 된 AI/Data Science 교육을 해도 타겟군이 아니고, 그렇다고 프리미엄 MBA를 한다고 해도 타겟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발자 직군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인식은, 개발자들이 들으면 화가 날 수도 있겠지만, 인도에 외주 주는 저급 기술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A급 엔지니어라면 모를까, Bootcamp 교육하다가는 같은 수준으로 대접받는다는 판단에, 굳이 그런 시장을 노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저 친구들의 판단이었다.
다음으로 봤던 것은 AI/Data Science 컨설팅 시장이다. 이미 자기들이 간단하게나마 이것저것 했던 이야기를 해 줬기 때문에 유럽 시장 상황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브랜딩'이 부족하다고 결론을 내리더니, 그 다음 단계 사업 모델로 넘어갔다.
브랜딩을 갖추려면 무슨 사업을 하는 걸까 싶어서 보니 '프리미엄 MBA"를 기획하더라.
스위스에 있는 대학, 지난 몇 년간 고생해서 만들어 놓은 교육 과정, 그 교육 과정을 기반으로 나온 고급 논문, 그리고 유럽의 각종 인프라와 고급 인력을 이용해서 스위스의 IMD를 베낀, AI 전문 MBA로 수익성을 내야겠다고 나섰다.
난 그런 메일이 오고 가는 걸 보면서 또 엄청나게 많은 강의 자료를 만들어야되겠구나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애들은 어느 학교의, 어느 회사의 누구를 어떻게 불러와서 언제 Guest lecturing을 시키고, 언제 세미나를 열고, 위치는 오스트리아 어디에 있는 어느 성이 예전에 황궁이었으니까 거길 언제 빌려서 어떻게 행사를 하고.... 같은 이야기를 먼저 꺼내더라.
내가 유럽 출신이었으면, 최소한 그런 '프리미엄 MBA'의 생리를 잘 알았으면 아마 저 친구들의 생각을 뒤늦게 따라가면서 버벅거리지는 않아도 됐을 것이다. 즉, 나 자신이 Under-institutionalized 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Henry Kissinger의 Diplomacy를 읽다 보면 저 친구들이 평소에 하던 이야기와 같은 아주 사소한 지식들과 경험이 얼마나 유럽 역사를 크게 흔들었는지 알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세계 1차 대전의 시발점이 됐던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총탄 피격 이후 이어진 장례식에 유럽의 주요 왕족이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이유를 황태자의 부인이 귀족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 황태자 사후 부인의 출신 때문에 황궁 내 지위가 흔들거린 점, 그리고 황궁 일대에서 평민 출신 부인의 사태 파악 역량 부족, 왕궁에 친척이 드나들지 못해 외부와 연락마저 단절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부분이 있다.
난 책으로만 배웠을 뿐인데, 아주 꼼꼼하게 당시 사정을 추적하고, 막을 수 있었지만 막지 못했던 연쇄 사건들의 배경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는 Diplomacy의 관점이 저 친구들이 '프리미엄 MBA' 준비하는 아이디어, 발상, 설계에 하나하나 녹아 들어가는 걸 보면서, 내가 정말 얼마나 'Under-institutionalized' 출신인지를 뼈 아프게 느끼게 된다. 행사장으로 어느 성을 몇 월에 빌리고, 그 성에서 무슨 행사를 하고, 이런 부분들이 단순히 가격, 날씨 같은 걸 고려해서 결정하는 게 아니더라.
이런 배경을 하나도 몰랐던 시절에는 그저 이름만 화려하게 해 놓고, 실속없이 시간만 때우면서 골프나 치고, 와인이나 마시는게 MBA라고 생각했는데, 누구를 어떻게 데려와서 무슨 이야기를 꺼내도록 하고, 그 자리에 누구를 같이 참석시켜서 전체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고, 공간을 어떻게 쓰게 될 테니 행사 1,2,3을 어떤 식으로 나누고, 인적 구성의 비율을 어떻게 조절하고, 특정 장소의 주변 환경, 내부에 장식된 무슨 시설을 어떻게 역사적 사건과 연결시켜 Narrative를 더 꾸며내고, 연구했던 내용을 어떻게 녹여넣고.. 이런 걸 다 생각해서 저런 행사가 기획된다는 걸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렇게 브랜딩을 갖춰야 AI/Data Science 컨설팅 시장에서 중동 자본의 선택을 받고, 그 자본력을 바탕으로 유럽 시장에서 고급 외부 인력을 끌어들이고, 다시 그 인력을 바탕으로 어떻게 교육을 시켜서 인재를 키울 것인지에 대한 계획들이 나오는 걸 보면서, 역시 나는 콘텐츠 생산 기계에 지나지 않는구나는 착잡함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유럽이 이미 수백 년에 걸쳐 저런 행사들을 진행해 왔고, 그걸 어린 시절부터 겪고 자란 애들에게는 당연한 지식, 당연한 사고 방식이지만, 내용을 하나도 모르면서 팀원 중에 백인 얼굴이 있어야 안심하는 주요 대기업 관계자들을 보면서 구역질이 나오는 감정을 느꼈던 내 입장에서는 '겉모습의 완성도'라는 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늦은 나이에 겨우 알게 되는 사건이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저 친구들이 저렇게 열심히 브랜딩을 해서 조직의 외관, 혹은 체급을 유럽 정상권 MBA로 안착시켜주면, 내가 한국에서 두 번 다시는 '공신력' 같은 단어로 불편한 일을 겪을 일은 없어질 것 같다. 그간 콘텐츠의 전문성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황당한 무시를 많이 당했는데, 콘텐츠의 전문성을 알리고 살리는 길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콘텐츠의 전문성을 기르는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고 불편해하는 영역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보면, 세상 일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 외관도 또 다른 콘텐츠라는 걸 받아들여야겠지만, 내 역할은 이 조직이 외화내빈(外華內貧)이 되는 걸 막는 것이겠지만, 언젠가는 '외화(外華)'보다 '내화(內華)'가 더 빛을 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