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페널티 앞세워 변신 꾀하는 '밸류업 프로그램', 한국 증시가 움직인다

페널티 앞세워 변신 꾀하는 '밸류업 프로그램', 한국 증시가 움직인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1 week
Real name
전수빈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독자 여러분과 '정보의 홍수'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뗏목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 중 길을 잃지 않도록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겠습니다.

수정

"이런 걸 원한 게 아니다" 밸류업 프로그램에 실망한 증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증시 퇴출' 페널티 앞세워 보완 시사
이 원장 강경책 통했나, 배당 확대·자사주 소각 자처하는 기업들
value_up_program_20240311

국내 증시를 휩쓸었던 '저 PBR주' 열풍이 점차 힘을 잃고 있다. 정부의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이 시장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자,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로 상승세를 탔던 저 PBR 종목들이 줄줄이 미끄러진 것이다.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미국 증시 등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등을 돌리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차후 밸류업 프로그램이 강제성을 갖추며 '변신'을 시도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도 흘러나온다.

시장 기대 밑돈 밸류업 프로그램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밸류업 프로그램을 단행하겠다는 뜻을 밝힌 뒤, 한동안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강경 대응'에 대한 기대가 실렸다. 차후 정부가 강제력 있고 급진적인 방안을 공개, 본격적으로 주가를 부양할 것이라는 여론이 확산한 것이다. 특히 밸류업 프로그램 수혜가 예상되는 저 PBR 종목에는 대규모 매수 수요가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정부가 공개한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은 시장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정부가 기업가치 제고 공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상장사들이 이에 따라 자사 주가를 자체 분석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연 1회 자율적으로 공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외로도 △기업 밸류업 표창 등 혜택 부여 △코리아 밸류업 지수 개발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기관 스튜어드십 코드에 반영 등의 대책이 밸류업 프로그램에 포함됐다.

시장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상법 개정 로드맵, 자사주 소각 관련 법인세 혜택,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증시가 기대했던 구체적이고 강제성 있는 대책이 줄줄이 제외됐기 때문이다. 특히 밸류업 프로그램이 기업의 자율적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목됐다. 지난달 26일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브리핑에서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시장 기대보다 인센티브가 약하고, 페널티가 없어 강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은 뒤, “(페널티가 없는 것은) 기업가치 제고는 본인(기업)이 진정하게 (필요성을) 느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며 의도를 명확히 밝혔다.

쏟아지는 시장 비판 속 '전환점'

해당 발표 이후 투자자들은 밸류업 프로그램에 기업의 혁신·가치 제고를 유도할 만한 ‘생태계 조성 방안’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일각에서는 밸류업 프로그램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 주식 양도세 기준 완화와 같은 총선용 증시 단기 부양책에 불과하다는 혹평마저 흘러나왔다.

이에 정부 측은 인센티브가 아닌 페널티를 도입, 밸류업 프로그램의 강제성을 확대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나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연구기관장과의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상장 기업도 일정 기준에 미달할 경우 거래소 퇴출이 적극적으로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성장이 정체돼 있는 기업 △재무 지표가 좋지 않은 기업 △인수·합병(M&A) 기업의 수단이 되는 기업 등이 증시에 잔류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을 표명한 것이다.

이어 이 원장은 "성장 동력을 가진 스타트업 등에 돈이 갈 수 있도록 옥석 가리기가 명확히 돼야 한다"며 밸류업 노력이 미진한 기업에 대한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이 원장의 발언은) 밸류업 프로그램과는 관계가 없다”며 선을 그었으나, 업계에서는 이 원장의 발언을 사실상 밸류업 프로그램의 보완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원장이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발언을 통해 실효성 부족 비판을 받은 밸류업 프로그램의 변화를 암시했다는 분석이다.

value_up_fe_20240311.png

"주주환원 확대하겠다" 국내 증시의 변화

이 원장의 강경 발언은 실제 증시에 변화를 초래했다. 이번 주 주주총회 개막을 앞둔 기업들이 줄줄이 주주 환원 요구를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직접적인 변화가 관찰되는 부분은 '배당'이다. 지금까지 국내 증권 시장은 고질적인 저배당 기조로 몸살을 앓아왔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배당 성향은 20.1%로 확인됐다. 이는 △미국(40.5%) △영국(45.7%) △독일(40.8%) △프랑스(39.3%) △일본(36.5%) 등 주요 선진국은 물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35.0%)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이 같은 저배당 성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연결된다. 

하지만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이후 본격적인 변화의 조짐이 감지됐다. 다수의 기업이 배당을 확대하며 주주 환원에 적극적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교보증권, 교촌F&B, 한양증권, 한국알콜, 파세코 등 약 20개사는 '차등 배당'을 단행하겠다고 공시, 적극적 주주환원 실천을 예고하기도 했다. 차등배당은 대주주가 본인의 배당금 전부 또는 일부를 포기해 기타 소액주주에게 양도하는 방식으로, 통상적으로 대주주보다 소액주주들에게 더 많은 배당을 제공하는 주주 친화적 정책으로 꼽힌다.

그간 소액 주주들의 요구가 빗발쳤던 '자사주 소각'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장사 21곳(지난달 12일 기준)이 내놓은 자사주 소각 계획 규모는 자그마치 3조3,148억원(약 25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전년 동기(3,934억원)와 비교하면 8.4배 수준이다. 금융당국이 올 상반기 내로 자사주 보유 비중 10% 이상인 기업에 대해 △자사주 보유 사유 △추가 매입 △소각‧매각 계획 등을 사업 보고서에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만큼, 차후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 규모는 한층 커질 것으로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이 같은 변화의 바람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도록 정부가 꾸준히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흘러나온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1 week
Real name
전수빈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독자 여러분과 '정보의 홍수'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뗏목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 중 길을 잃지 않도록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겠습니다.

‘더 빨리, 더 가볍게, 더 싸게’ 이차전지 경쟁 2막 돌입, 리튬황전지에 업계 이목 집중

‘더 빨리, 더 가볍게, 더 싸게’ 이차전지 경쟁 2막 돌입, 리튬황전지에 업계 이목 집중
Picture

Member for

1 month 1 week
Real name
안현정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정보 범람의 시대를 함께 헤쳐 나갈 동반자로서 꼭 필요한 정보, 거짓 없는 정보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을 사는 모든 분을 응원합니다.

수정

국내 배터리 3사 차세대 배터리 개발 로드맵 발표
삼성SDI·SK온 “전기차 충전 속도 획기적으로 단축”
항공기로 타깃 확대한 LG엔솔은 ‘리튬황전지’ 주력
inter_battery_20240308
3월 6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2024’를 찾은 관계자들이 삼성SDI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사진=코엑스

이차전지 시장 내 경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모습이다. 안전성과 충전량을 기준으로 경쟁하던 지금까지와 달리, 완충 속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다. 이르면 2년 내 전기차 완충 시간을 10분 안쪽으로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도심항공교통용 리튬황전지의 개발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10분 충전으로 600㎞ 달리는 ‘꿈의 전기차’ 나오나

국내 최대 규모의 이차전지 전문 산업전시회 ‘인터배터리2024’가 지난 6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됐다. 3일간의 일정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영국, 중국 등 18개국 115개 기관이 참석해 산업 발전을 도모한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7일 인터배터리2024 부대행사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해 차세대 배터리 개발 로드맵을 공개했다.

먼저 삼성SDI는 2026년까지 초고속 충전 배터리를 양산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양극에는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을, 음극에는 실리콘카본나노복합체(SCN)를 소재로 사용하는 해당 배터리는 완충까지 단 9분이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고주영 삼성SDI 부사장은 “평균 주유 시간이 5분 정도인 내연기관차는 한 번 주유로 600㎞까지 갈 수 있다”며 “이와 비슷한 수준의 충전 속도와 충전량을 확보하는 것이 기본 전략”이라고 밝혔다. 이어 “2026년을 목표로 9분 충전 배터리를 개발 중이며, 2029년에는 20년 장수명 배터리를 개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SK온 역시 충전 시간을 앞당겨 이용자들의 편의를 돕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SK온은 이번 전시회에서 완충 시간을 15분까지 단축한 신제품을 선보였는데, 이를 추가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이존하 SK온 부사장 겸 연구위원은 “기술적으로는 완충까지 7분이 걸리는 배터리 개발에 성공한 상태”라고 밝히며 “다만 충전기 용량 확대 등 해결해야 할 부분들이 남아 있어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초급속 충전기 용량은 350킬로와트(㎾)인데, 10분 이내 급속 충전을 위해서는 450㎾급 제품이 필요하다는 부연이다. 급속 충전기 보급이 빨라질수록 양산 시기 또한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풀이되는 발언이다.

Li_lgensol_20240308
리튬황전지 작동 원리/출처=LG에너지솔루션

전기차를 넘어 항공기에도 배터리 탑재 추진

이번 전시회에서 업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분야는 리튬황전지의 양산 가능성이다. 국내 기업 중 리튬황전지 개발에 가장 적극적인 LG에너지솔루션은 리튬황전지 양산 시점을 2027년으로 제시했다. 양극에는 황을, 음극에는 리튬메탈을 사용하는 리튬황전지는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에너지밀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활용 가능성을 높이 평가받는다. 극심한 온도 변화에서도 성능의 저하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또한 특징이다.

다만 그 한계도 명확하다. 황의 경우 매우 낮은 전기전도성을 비롯해 충전 및 방전 과정에서 생성되는 중간 생성물이 전해질에 쉽게 녹아 나온다는 특성이 있어 배터리 용량 및 수명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또 고에너지 밀도를 위해서는 황이 포함된 전극의 두께를 증가시킨 후 대면적으로 제작해 황 고유의 높은 용량을 유지하는 고도의 전극 공정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최근의 연구는 리튬황전지의 전기화학적 성능을 높이기 위해 황과 탄소, 탄소나노튜브, 그래핀 등 전도성 탄소 소재와 복합체를 제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방전 과정에 일어나는 리튬 폴리 설파이드의 용해 방지를 위해서는 전해질에 여러 첨가제를 투입하는 방법 등이 검토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0년 8월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협력해 리튬황전지 시제품을 적용한 무인기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실험에 나선 비행기는 성층권 최고 고도에서 약 13시간 동안 비행하며 리튬황전지 개발 가능성에 청신호를 켰다. 김제영 LG에너지솔루션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현재 고고도 비행기 및 도심항공교통(UAM)에 탑재되는 리튬황전지 개발이 막바지에 들어섰으며, 리튬이온 배터리 대비 2배에 달하는 무게당 에너지 밀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배터리 기술 경쟁 "지금부터가 진짜"

국내 배터리 3사가 일제히 차세대 배터리 개발과 양산을 향한 광폭 행보를 보이면서 시장 내 기술 경쟁도 격화하는 양상이다. 현재 전기차 중심 이차전지 시장에서는 ‘삼원계’로 불리는 NCM(니켈·코발트·망간),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배터리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주를 이룬다. 배터리별 장단점이 상이한 만큼 기술 경쟁의 패권은 누가 공통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하느냐에 달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된 견해다.

구체적인 공통 과제로는 1회 충전으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 확대 및 에너지밀도 향상, 원가 절감 등이 꼽힌다. 초고속 충전 배터리 양산, 리튬황전지 개발 등은 모두 이같은 과제를 극복하려는 기업들의 노력인 셈이다. 최근에는 전기차 관련 사고에서 꾸준히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화재 문제와 관련한 안전성 강화 연구도 중요시되는 분위기다. 고분자 기반 반고체전지와 전고체전지, 황화물계 전고체전지 등은 모두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경량화, 탄소 중립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한 가운데 국내를 넘어 글로벌 이차전지 시장의 기술 패권을 잡는 기업은 어느 곳이 될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1 week
Real name
안현정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정보 범람의 시대를 함께 헤쳐 나갈 동반자로서 꼭 필요한 정보, 거짓 없는 정보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을 사는 모든 분을 응원합니다.

초고층 아파트 외면하는 재건축 조합들, 안 짓는 게 아니라 '못' 짓는다?

초고층 아파트 외면하는 재건축 조합들, 안 짓는 게 아니라 '못' 짓는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1 week
Real name
전수빈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독자 여러분과 '정보의 홍수'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뗏목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 중 길을 잃지 않도록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겠습니다.

수정

물가 상승세 타고 뛰어오른 건설 자잿값, 공사비 부담 급증
"초고층은 더 비싼데" 수익성 고려해 층수 낮추는 조합 속출
'자기자본·PF 리스크' 떠안은 건설사·시행사도 등 돌려
redevelop_20240308

'초고층 아파트'를 꿈꾸던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건설 자재 가격·인건비가 나란히 뛰며 공사비 부담이 가중, 초고층 아파트 설립의 장벽이 눈에 띄게 높아진 탓이다. 급등하는 분담금을 견디지 못한 일부 단지는 50층 이상(높이 200m) 초고층 재건축에서 50층 미만 준초고층 재건축으로 눈높이를 낮추는 추세다.

뛰어오르는 공사비, 초고층 아파트 '주춤'

지금껏 초고층 아파트는 '고급화의 상징'으로 꼽혀왔다. 특히 조망권이 좋은 한강 인근 서울 재건축 단지의 경우, '랜드마크' 입지를 점하기 위해 최대한 건물을 높이 올리며 일종의 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건설 자재 가격 인상으로 공사비가 뛰고, 조합원들의 분담금 부담이 급증하면서 이 같은 '초고층 경쟁'에 본격적인 제동이 걸리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건설용 중간재 물가지수(2015년=100)는 2020년 12월 106.4에서 지난해 12월 144.2로 35.5% 치솟았다. 이는 제조업자가 판매한 상품 전반의 가격 변동을 측정하는 생산자물가지수 상승률(22.4%)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레미콘(34.7%) △시멘트(54.6%) △철근(64.6%) △형강(50.4%) △아연도금강판(54.1%) △건축용금속공작물(99.5%) 등 대부분의 건설 자재 가격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린 영향이다.

건설 자잿값 상승세는 정비 사업 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주거환경연구원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서울 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 등)의 연도별 3.3㎡(1평)당 평균 공사비는 2019년 490만2,000원에서 지난해 754만5,000원으로 53.9% 급등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주상복합 재개발 현장에서는 3.3㎡당 공사비가 1,000만원을 넘기도 한다"며 "공사비 상승세가 피부로 체감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분담금 부담에 눈높이 낮추는 조합들

공사비 증가는 초고층 아파트 재건축을 추진하는 조합에 '치명타'로 작용했다. 일반적으로 초고층 아파트의 경우 △하중을 버티기 위한 고강도 자재 투입 △복잡한 인허가 절차 △안전 확보 비용 확대 등으로 인해 일반 단지 대비 공사비 부담이 큰 편이다. 업계 관계자는 "층수가 50층을 넘어가면 공사비가 최소 40%가량, 경우에 따라 두 배 수준까지도 추가 투입된다고 보면 된다"며 "자재 가격이 인상되면 (초고층 아파트 재건축 조합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일부 단지는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눈높이를 속속 낮추고 있다. 무리하게 초고층 아파트 건설을 추진할 경우, 사업 속도가 지연되고 비용이 급증하며 사업성 전반이 악화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일례로 한강 인근 지역에서 70층 이상 재건축을 추진하던 성수전략지구 내 1지구는 최근 소유주 투표를 진행, 50층 이하 '준초고층' 재개발로 눈을 돌렸다. 50층 미만 재개발을 선택한 조합원은 50.97%, 초고층 재개발을 선택한 조합원은 47.47%였다.

redevelop_2_20240308

이 같은 현상은 비단 한강 인근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서울 개포주공 6·7단지는 지난해 서울시의 '35층 룰(서울의 아파트 층수를 최대 35층으로 제한하는 규제)' 폐지에 따라 49층 재건축을 타진했지만, 결국 기존 안대로 35층 재건축안을 진행하기로 했다. 고층 아파트 건설 시 따라오는 비용 부담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도 최고 층수를 49층으로 상향하는 안을 검토했으나, 결국 기존 상한선인 35층 높이로 재건축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PF 위기 겪는 시행사·건설사에도 부담

건설사·시행사들 역시 초고층 아파트 설립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리스크, 금융규제 강화 움직임 등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대다수 국내 시행사는 부동산 개발 총사업비의 5~10%가량을 자기자본으로 충당하고, 이외 비용을 PF를 통해 충당해 왔다. 자기자본이 적은 상태에서 대출에 의존하는 구조인 셈이다.

문제는 현재 금융당국은 PF 조달 시 시행사의 자기자본 요건을 최대 20%까지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점이다. 국내 대다수 시행사가 영세 업장이다. 충분한 자기자본과 신용을 갖추지 못한 대다수 국내 시행사에는 '규제 리스크' 속 초고층 아파트 사업에 뛰어들 만한 여력이 없다는 의미다. 만약 시행사가 이 같은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초고층 사업을 진행할 경우, 공사 비용 상승으로 사업성이 악화하며 건설업계 내 '연쇄적 부실' 리스크가 발생하게 된다.

신용이 부족한 시행사들은 PF 대출을 받을 때 건설사(시공사)의 보증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업이 벽에 부딪히거나 충분한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보증을 선 건설사가 PF 대출을 대부분 갚아야 한다. 대다수 건설사가 부실 PF 위기에 봉착한 현재, 시행사는 물론 건설사와 금융회사 등이 연쇄적으로 부실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건설업계 전반에 찬 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모두가 선호하던 초고층 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시장의 현시점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1 week
Real name
전수빈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독자 여러분과 '정보의 홍수'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뗏목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 중 길을 잃지 않도록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겠습니다.

더딘 인플레이션 둔화세 속, 신중론 고수한 파월 의장 "금리 인하에 더 큰 확신 필요하다"

더딘 인플레이션 둔화세 속, 신중론 고수한 파월 의장 "금리 인하에 더 큰 확신 필요하다"

Member for

1 month 1 week
Real name
Keith Lee
Position
Professor

수정

Fed 의장 “물가둔화 확신 필요”, 기존 입장 재강조
골드만삭스 "디스인플레이션 과정 매우 더딜 것" 지적
월가를 중심으로 퍼지는 '스태그플레이션' 시나리오도
Powell_FE_20240307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모습/사진=Fed 유튜브 캡처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6일(현지시간) 연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물가가 둔화됐다는 확신(confidence)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금리인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어 경기침체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국 경제가 견조한 속도의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가까운 미래에 침체에 빠질 이유가 없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월가에서는 현 상황이 이어질 경우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같은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월 의장 "인플레이션 둔화 확신 전까진 금리 인하 없을 것"

6일(현지시간) 파월 의장은 미 연방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서 “경제가 예상 경로로 움직인다면 올해 어느 시점에 현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되돌리는 완화책을 시작하는 게 적절할 것”이라면서도 “경제 전망은 불확실하며, 물가상승률 2% 목표로의 진전은 보장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날 파월 의장은 금리 인하에 나서기 전 물가가 잡혔다는 더 큰 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인플레이션이 목표 수준인 2%로 지속 가능하게 움직인다는 더 큰 확신을 얻기 전까지는 기준금리 인하가 적절하지 않다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인플레이션이 2%로 둔화할 것이란 확신이 들 때까지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겠다던 기존의 입장은 물론 Fed 다수 위원의 언급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1월 FOMC 의사록에 따르면 대부분 Fed 위원은 정책 기조를 너무 빨리 완화할 경우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인플레이션이 2%로 지속 가능하게 하락하고 있는지 판단할 때 향후 경제 데이터를 신중하게 평가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파월 의장은 신중론을 유지하는 배경으로 미 경제가 튼튼하다는 점을 들었다. 경기침체 가능성에 대한 질의에서 “나와 동료들은 미국 경제가 견조한 속도의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미국 경제가 가까운 미래에 침체에 빠질 증거나 이유는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민자 유입 증가가 2022∼2023년 미국 경제에 주목할 만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다만 ‘미국 경제가 연착륙(soft landing)으로 향하고 있느냐’는 질의에는 “경제가 견조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만 말하겠다”고 답하며 용어 사용에 신중한 모습을 취했다. 미 상업용 부동산발 은행 대출 부실화 위험에 대해서는 은행권의 손실이 예상된다면서도 제어할 수 있는(manageable)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지지부진한 디스인플레이션 속도

최근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완연한 둔화 추세에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2023년 6.8%에서 2024년 5.8%, 2025년 4.4%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들은 예상보다 빠른 디스인플레이션에 세계 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같은 디스인플레이션 신호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미국 경제의 강한 성장세는 최근 인플레이션 둔화 신호가 가짜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지적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수년간 미국 경제가 몇 년간의 가파른 물가 상승세를 겪었음에도 거의 타격을 입지 않고 인플레이션에서 벗어났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 상승세가 다시 회복된다면 Fed는 금리를 계속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이에 따라 현재는 거의 사라진 경기침체에 대한 공포가 다시 되살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Fed가 선호하는 인플레이션 측정치인 개인소비지출(PCE) 지수는 지난 1월 전년 동월 대비 2.4% 상승을 기록하며 작년 중순의 7% 상승에서 크게 둔화했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 물가를 제외한 근원 PCE 지수 역시 최근 연율 기준 2.3% 증가에 그치며 Fed의 목표치인 2%에 근접했다. 다만 미국의 상품 물가가 하락한 것과 달리 많은 서비스 부문 물가는 팬데믹 이전 추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임금 상승률이 꺾이지 않은 점도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를 늦추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미국인들의 전년 대비 임금 상승률이 5.5%에서 4.5%로 떨어지기는 했으나 Fed의 물가 목표치를 고려했을 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미국에서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노동 부족'이라는 키워드가 구글 검색량 최다를 기록할 정도로 일자리가 많았다. 이에 최근 전년 대비 임금 상승률은 팬데믹 이전 수준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뛴 5%에 근접했다. 임금 상승으로 비용이 늘어난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이를 전가하면서 물가 상승을 부추긴 결과다. 이에 대해 골드만삭스는 노동 수요 감소가 임금 상승률 둔화로 이어지려면 1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최종 디스인플레이션 과정이 매우 느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inflation_FE_20240307

월스트리트,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둔화하더라도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실제 최근 월스트리트에서는 미국 경제가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경기침체)으로 향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미국 경제를 망친 주범으로 꼽힌다. 유가 급등, 실업률 상승, 완화적 통화 정책으로 1980년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4.8%까지 치솟자 Fed의 정책 입안자들은 당시 금리를 거의 20%까지 인상했다.

이에 대해 마르코 콜라노빅 JP모건체이스 수석 시장전략가는 "현재와 비슷한 점이 많다"며 "우리는 이미 한 차례 인플레이션을 겪었고, 정책과 지정학적 발전이 이대로 간다면 두 번째 (스태그플레이션) 물결을 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몇몇 Fed 관계자들은 금리 전망을 논의하면서 2% 인플레이션에 이르는 경로를 "평탄하지 않다(bumpy)"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지정학적 위험은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키우는 대표적 요인이다. 지난 2022년 2월 발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지난해부터 시작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도 아직 진행 중에 있다. 게다가 산유국에 대한 전쟁 위험은 국제유가의 변동성마저 부추긴다. 하마스 전쟁이 다른 산유국으로 확산할 경우, 혹은 다른 지역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이로 인해 전 세계가 다시 인플레이션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같은 공급측 인플레이션은 세계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다시 긴축으로 선회하도록 하는 만큼 세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빅테크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를 더한다. 빅테크들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대규모 채용을 단행했지만, 비대면 경제 호황이 끝난 지난해 하반기부터 잇달아 긴축 경영으로 전환했다. 글로벌 빅테크의 감원 현황을 추적하는 레이오프(layoff.fyi)에 따르면 새해부터 2월 중순까지 마이크로소프트(MS), IBM, 메타, 아마존, 구글 등 157개 빅테크 기업들에서 약 4만 명이 감원된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더해 유럽연합(EU)의 빅테크 옥죄기 움직임도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법안인 디지털시장법(DMA)은 이달 시행을 앞두고 있다.

중국의 경제 반등 여부도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가 올해 2분기부터 안정 추세를 보이며 투자와 소비 회복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우려도 크다는 점이다. 블룸버그는 올해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5.1%를 기록할 경우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제로 코로나 정책이 유지됐을 때보다) 약 0.9%포인트를 추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Fed의 긴축 기조를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증폭시킨다.

Member for

1 month 1 week
Real name
Keith Lee
Position
Professor

중국 양분 삼던 석유화학, 이젠 중국에 '해 질 날'? 롯데케미칼·LG화학 정리 수순

중국 양분 삼던 석유화학, 이젠 중국에 '해 질 날'? 롯데케미칼·LG화학 정리 수순
Picture

Member for

1 month 1 week
Real name
박창진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지근거리를 비추는 등불은 앞을 향할 때 비로소 제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과거로 말미암아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비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수정

LC타이탄 매각 착수한 롯데케미칼, LG화학도 NCC 매각 타진
'과성장' 중국에 속수무책, "가격 경쟁력 중국 못 따라가"
매각 청사진도 미래 '불확실', "NCC는 이미 매각 실패 경험 있어"
LGchemistry_NCC_20240307
LG화학 여수 NCC 공장의 모습/사진=LG화학

국내 2위 석유화학 기업인 롯데케미칼이 말레이시아 소재 대규모 생산기지인 롯데케미칼타이탄(LC타이탄) 매각 작업에 착수했다. 1위 업체인 LG화학도 전남 여수 나프타분해시설(NCC) 2공장 지분을 팔기 위해 쿠웨이트석유공사(KPC)와 협상에 나섰다.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한국 주력 수출산업의 상징적 공장들이 중국기업의 저가 공세에 밀려 백기를 들고나온 것이다.

롯데케미칼·LG화학, 실적 부진에 설비 매각 '속속'

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최근 롯데케미칼은 국내외 석유화학 기업 및 대형 사모펀드(PEF) 등을 대상으로 LC타이탄 인수자 물색에 나섰다. LC타이탄은 롯데케미칼이 지분 74.7%를 보유한 말레이시아 증시 상장사다. 당초 LC타이탄은 2010년대 중후반까지 매년 3,000억~5,000억원가량의 이익을 낸 알짜 회사였다. 지난 2017년엔 인수가의 2.5배 가치(시가총액 4조원)로 상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석유화학 제품 최대 수입국이던 중국이 기초 화학소재를 자급화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2022년 2분기부터 영업이익이 돌연 적자로 돌아서더니 지난해엔 612억원(약 4,600만 달러)의 영업손실을 냈다. 기업가치도 7,465억원(약 5억6,000만 달러)까지 추락했다. LG화학도 여수 NCC 2공장을 분할한 뒤 KPC에 지분을 매각하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 회사를 신설해 NCC 설비 등 자산을 이전한 뒤 LG화학이 지분 51%, KPC가 49%를 보유하는 구조다.

업황 침체에 실적 부진까지 겹치면서 국내 석유화학업계 전반이 침몰하는 분위기다. 이전까지만 해도 석유화학 제품은 반도체, 자동차, TV 등과 함께 한국의 대표 수출 품목 중 하나였다. 가성비가 좋다 보니 세계 곳곳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찾은 것이다. 그중에서도 중국은 한국 석유화학 제품을 가장 많이 찾는 나라였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중국은 세계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라이벌로 변신했다. 이후 중국의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에 한국 기업의 글로벌 파이는 점차 줄었다. 특히 지난해엔 석유화학 제품 수출액(456억 달러)이 전년 대비 15.9%나 쪼그라드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 들기도 했다. 국내 1~2위 석유화학 기업인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이 일제히 기초 유분 생산 설비 정리에 나선 이유다.

china_chemistry_20240307

중국 수출 비중 '뚝',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몰락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석유화학 기업의 중국 수출 비중은 36.3%로, 3년 전인 2020년(42.9%)에 비해 6.6%p 떨어졌다. 중국 국유기업인 시노펙, 페트로차이나 등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생산능력을 대폭 끌어올린 여파다. 경기 둔화 등으로 석유화학 제품 수요는 줄어드는데 중국의 공급량은 대폭 늘어나는 형국은 몇 년째 계속됐다. ‘석유화학의 쌀’ 에틸렌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중국의 에틸렌 생산량은 5,174만t으로 2020년(3,227만t)보다 60% 증가했다. 2025년엔 5,597만t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로 인해 에틸렌, 프로필렌(PP) 등 기초 유분의 중국 자급률은 2020년 이미 100%를 넘어섰고, 2025년엔 120%까지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한국 석유화학 기업이 설 자리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LG화학이 여수 NCC 2공장을 매각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여수 2공장은 에틸렌만 연 80만t을 생산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며 지난 2021년 세워졌지만, 현재는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업계의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과 나프타의 가격 차이)의 손익분기점은 300달러인데, 지표가 오랜 기간 200달러대를 벗어나지 못하며 수익을 내지 못한 탓이다. 큰 이익을 얻지 못하면서 매출 기여도도 낮아졌다. LG화학의 2021년 석유화학 매출 비중은 전체의 47.3%, 배터리(LG에너지솔루션)는 41.8%였지만 2022년부턴 역전됐다. 2023년 상반기엔 석유화학과 배터리의 비율이 30.4%, 60.3%로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하루빨리 한계 사업을 정리하고 수익성이 높은 사업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기초 유분 생산 설비를 정리한 뒤 미래 사업인 이차전지 등으로의 체질 전환을 추진하겠단 복안이다. LG화학은 앞서 이미 충남 대산공장에 위치한 스티렌모노머(SM) 공장을 철거한 상태다. 이외에도 전북 익산 양극재 공장, 미용 필러 사업부, 백신 사업부 등이 매각 대상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에 대해 노국래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장은 "범용 사업 중 경쟁력 없는 한계 사업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장기 가동 중지, 사업 철수, 지분매각, 합작법인(JV) 설립 등을 통해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이에 따른 인력 재배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매각 여부조차 불확실, 이대로 괜찮나

다만 장밋빛 청사진의 톱니바퀴가 온전히 굴러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평가다. 매각이 제대로 이뤄질지 여부가 여전히 미지수로 남은 탓이다. 일단 소재 산업은 지난해 대부분 매각을 완료한 상태다. LG화학은 지난해 9월 IT 소재 사업부 내 편광판 및 편광판 소재 사업을 중국에 약 1조1,000억원(약 8억3,000만 달러) 돈으로 매각한다고 공시했다. 당해 IT 소재 사업부 내 디스플레이용 필름 공장도 매각했으며, 2020년엔 액정표시장치(LCD) 편광필름 사업 및 점접착제(OCA) 사업도 정리를 완료했다.

문제는 역시 석유화학 산업이다. LG화학은 지난해 여수 NCC를 매각하려 몇몇 업체와 접촉한 바 있으나 결국 매각가를 합의하지 못해 불발됐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NCC는 시설 투자비만 3조원이 들었다"며 "중국의 자급력 확대 이슈가 커지는 상황에서 그만한 금액을 지불할 업체는 사실상 없지 않겠냐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가장 큰 문제는 '떨어지는 해'인 석유화학 산업에 관심을 갖는 기업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실제 최근 NCC 업황에 대한 제조사들의 인식은 점차 악화하는 추세다. 전반적인 경기 부진으로 석유화학 제품 시황이 약세를 보인지 이미 오랜 기간이 지난 탓이다. LG화학이 NCC 매각을 타진하면서 산업 자체에 대한 신용도가 충격을 받은 영향도 크다. 중국을 양분으로 성장한 석유화학의 해 질 날도 머지않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1 week
Real name
박창진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지근거리를 비추는 등불은 앞을 향할 때 비로소 제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과거로 말미암아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비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국 민간부채 14분기째 위험 수준, 짙어지는 금융위기 공포

한국 민간부채 14분기째 위험 수준, 짙어지는 금융위기 공포
Picture

Member for

1 month 1 week
Real name
이제인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수정

가계‧기업 빚 14분기째 ‘빨간불’, 일본 이어 2위
민간부채 GDP 2.26배, 신용격차는 14분기째 위험 
가계부채 터지면 외환위기 때 보다 심각할 수 있어
BIS_FE_20240306

우리나라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를 합산한 민간신용(가계·기업부채) 규모가 14분기째 위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72년 관련 통계 작성 후 최장기간이다. 앞서 1980년대 초반에도 10%p를 넘은 적이 두 차례 있긴 하나,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연속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과도한 민간부채가 투자와 성장의 발목을 잡으며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민간부채 위기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을 경우 외환위기에 맞먹는 파괴력이 있을 것이란 경계감도 나온다.

‘신용 갭’ 10%P 이상 경보 단계, 1972년 이후 최장기간

6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한국의 신용 갭은 10.5%포인트(p)를 기록했다. 한국의 신용 갭은 지난 2020년 2분기를 시작으로 줄곧 10%p를 웃돌고 있다. 이는 1972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로 최장기간이다. 신용 갭은 부채의 위험도를 평가하는 지표로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이 장기적 추세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는지를 나타낸다. 민간신용 비율이 과거 추세보다 빠르게 상승할수록 신용 갭은 벌어지는데 BIS는 이 지표를 잠재적인 국가 신용위기를 가늠하는 데 활용한다. BIS는 신용 갭이 10%p를 초과하면 '경보', 2~10%p면 '주의', 2%p 미만이면 '보통' 단계로 각각 분류한다.

한국의 신용 갭 추이를 보면 지난 2017년 4분기 말(-2.9%p) 이후 상승세로 전환해 2019년 2분기 말(3.0%p) '주의' 단계로 분류됐다. 이후 2020년 2분기 말 12.9%p까지 가파르게 치솟으며 10%p 위험 수위인 '경보' 단계에 다다랐다. 2021년 3분기 말(17.4%p)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뒤 2022년 3분기 말(16.8%p) 이후로는 하락세를 그리고 있으나 여전히 10%p를 넘는 위험 수위의 단계에 있다. 과거 한국의 신용 갭이 10%p 수준을 넘나든 기간은 매우 드물었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인 1997년 4분기 말(13.2%p)부터 1998년 3분기 말(10.5%p)까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4분기 말(10.7%p)부터 2009년 4분기 말(11.2%p)까지가 전부였다.

이뿐만 아니라 이번 BIS 조사 대상국 중 지난해 3분기 말 신용 갭이 10%p를 초과한 국가는 BIS 조사 대상 44개국 중 한국과 일본(13.5%p)이 유일했다. 태국(8.0%p), 사우디아라비아(2.2%p), 아르헨티나(1.5%p), 독일(0.0%) 등의 나라를 제외하곤 모두 마이너스 수준의 신용 갭을 기록했다. 이는 한국의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이 지난해 3분기 말 225.5%에 달하며 2020년 1분기 말(200.0%) 이후 15분기째 200%를 웃돌고 있는 점이 반영된 영향이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1.5%,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124.0%로 각각 집계됐다.

가계·기업부채에 정부의 부채까지 더한 한국의 총부채 규모는 지난해 3분기 말 5,988조1,91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29조8,614억원 더 늘었다. 총부채 규모는 지난해 4분기 말 기준으로 사상 처음으로 6,000조원(약 4조5,000억 달러)을 돌파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debt_FE_20240306

한국 경제의 회색 코뿔소 '가계부채', 은행 부실화 가능성↑

문제는 민간신용 부채 증가세가 꺾이지 않을 경우 은행 부실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4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의 지난해 말 기준 추정손실은 총 1조9,660억원(약 14억7,000만 달러)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48.8% 급증한 것으로 역대 최대치다. 이는 고금리와 경기 침체 장기화의 여파에 따른 연체율 상승으로 사실상 대출 채권을 회수하기 어려워진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권은 리스크 관리에 고삐를 바짝 죄는 분위기다. △취약 차주에 대한 조기 신용 평가 △고위험 차주 선별 △가계대출에 대한 관리 강화 △부실기업 대출에 대한 조속한 정리 등 필요한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아울러 4대 금융그룹은 이미 지난해 연간 총 8조9,931억원에 달하는 대손충당금을 적립해 2022년보다 무려 73.7% 늘린 상태다.

특히 가계부채의 부실은 금융시스템을 위협하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절반은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부동산 경기가 일부 되살아나면서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주담대는 전년 대비 51조원이나 증가했는데, 주택 가격 하락과 금리에 민감한 주담대의 특성상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다.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대표적인 ‘회색 코뿔소’로 꼽힌다.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파급력이 크지만 쉽게 간과하게 되는 위험 요인이란 의미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도 큰 문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부동산 PF 대출잔액 130조원 가운데 최악의 경우 70조원이 부실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PF 사업장 옥석 가리기 등 구조조정에 착수한다고 밝혔지만 이것 만으로 부실이 줄어들지는 미지수다. 여기에 1,000조원을 웃도는 자영업자 대출 중 40조원이 부실로 내몰릴 수 있다는 한국은행의 진단도 불안을 키우고 있다.

금융위기 다시 도래할 수도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IMF 사태나 글로벌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부동산 PF나 가계부채가 정보에 민감하지 않은 채무증권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언제든 위기 발생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통상 증권의 가치에 대해 분석해 정보를 생산하는 작업에는 많은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담보나 보증을 끼워 채무 증권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를 통해 대규모의 채무증권 거래도 손쉽게 가능하다. 하지만 이같은 채무증권의 장점은 금융위기에 있어선 오히려 약점이 된다. 앞서 겪었던 모든 금융위기가 채무증권 시장의 위기와 함께 발생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부채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이미 고강도의 긴축 정책을 통해 디레버리징에 성공했지만, 한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렇다 할 디레버리징 과정을 거친 적이 없어 GDP 대비 부채 비율이 오히려 커졌다. 이는 부동산과 가계대출에 의존해 온 경제성장 방식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의 국가들은 가계부채를 줄이고 정부가 빚을 떠안는 방식을 취한 반면에 우리나라는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경기 부양책으로 사용하면서 정부 대신 가계가 부채를 늘리게 된 것이다. 결국 역대 정부 모두 영끌, 빚투, 갭투자 등으로 대변되는 부채 공화국의 악순환을 만든 셈이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1 week
Real name
이제인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밸류업 명분 업고 전력질주 시작한 행동주의 펀드, 개인 투자자에 '득'인가 '독'인가

밸류업 명분 업고 전력질주 시작한 행동주의 펀드, 개인 투자자에 '득'인가 '독'인가
Picture

Member for

1 month 1 week
Real name
박창진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지근거리를 비추는 등불은 앞을 향할 때 비로소 제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과거로 말미암아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비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수정

밸류업 프로그램 아래 행동주의 펀드 득세
산적한 경영권 분쟁 문제, 행동주의가 '메기' 될까
먹튀 논란 여전한 행동주의 펀드, 개인 투자자에 이득일까
activist_hedge_fund_20240305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주주환원을 요구하는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이 본격화했다. 이들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물론 배당 확대 요구까지 다양한 쟁점을 쏟아낼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엔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에 따라 명분까지 확보한 만큼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주총 전 행동주의 활동 본격화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4일 '금호석유 주주제안 프레젠테이션 기자간담회'를 열고 주주제안 세부 내용을 공개했다. 차파트너스는 지난달 주주제안에서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의 건 △자기주식 소각 관련 정관 변경 △자기주식 소각의 건 등 3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차파트너스는 금호석유화학의 개인 최대 주주인 박철완 전 상무와 손잡은 행동주의 펀드로, 금호석화 지분 0.03%를 확보한 뒤 박 전 상무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아 주주제안을 제기했다. 자사주 18.4%를 전량 소각하고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를 선임하라는 게 골자다. 이에 대해 김형균 차파트너스 스페셜시츄에이션본부장은 “경영권 분쟁은 과거부터 존재할지 모르나 우리는 그것과 무관하게 전체의 81%에 달하는 일반주주 입장에서 주주제안을 했다”고 전했다.

KCGI자산운용의 움직임도 포착됐다. KCGI자산운용은 최근 주주환원율과 자기자본이익률(ROE), 주가순자산비율(PBR) 등이 기준에 미달하는 기업의 주총 안건에 반대 의사를 행사하는 의결권 행사 세부 기준을 마련하고 나섰다. 당장 주요 투자회사인 고려아연의 이번 정기주총 안건에 대해 해당 세부 기준을 적용하겠단 입장이다. 이에 대해 KCGI자산운용은 “그간 외부 의결권 자문기관에 의존해 의결권을 행사해 왔으나 주주이익 관점에서 적극적인 의사결정을 하는데 아쉬움이 있었다”며 “주주 가치 제고 관점에서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을 수립 실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며 새 기준을 적용할 경우 투자기업 중 약 50% 이상 주총안건에 대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물산 또한 행동주의 펀드의 주요 타깃이다. 삼성물산은 영국계 자산운용사 시티오브런던, 미국계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 한국계 안다자산운용 등 5개 행동주의 펀드 연합으로부터 배당 증액과 자사주 소각 등의 주주제안을 받았다. 이들 행동주의 펀드 연합은 5,000억원(약 3억7,000만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과 보통주 4,500원(우선주 4,550원) 배당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은 "주주제안이 요구하는 배당과 자사주 매입액 삼성물산 잉여 현금 흐름을 100% 초과한다"며 거듭 우려를 표했지만, 흐름을 타기 시작한 행동주의 펀드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value_up_fe_20240229.png

탄력받은 행동주의, 주주제안 통과 비율도 상승세

이처럼 행동주의 펀드들의 활동은 날로 활발해지는 추세다. 글로벌 기업거버넌스 리서치업체 딜리전트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공개 주주제안을 받은 기업은 77개사로 지난 2020년(10개사) 대비 7.7배나 증가했다. 행동주의 펀드들의 주주제안이 실제 주총에서 통과되는 비율 또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21년과 2022년의 경우 주주제안 통과비율은 각각 5.5%와 5.6%에 그쳤지만 지난해는 20.2%로 늘었다. 정부가 발표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도 행동주의 펀드들의 분위기를 띄우는 요인이다.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주주환원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노선이 정해지면서 최대 주주가 아닌 일반주주와 이사회의 역할을 강화하는 주주제안이 큰 명분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총수 일가의 경영권 분쟁 소식이 산재해 있는 만큼 주주 행동주의의 위력이 한층 강력해질 수 있다고 증권가는 전망하고 있다. 당장 롯데알미늄에선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포함한 정관 변경 안건을 상정해달라 주주제안한 상황이고, 이전엔 행동주의펀드 라데팡스가 추진한 한미약품과 OCI그룹의 통합 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 차남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대표가 경영 참여를 목적으로 6명의 신규 이사 선임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사실상 혼란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지만,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행동주의 펀드의 득세가 '오히려 좋을 수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오랫동안 지배구조를 바꾸지 않은 기업들에 대해선 행동주의 펀드가 '메기'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재벌가의 경영권 힘겨루기에 행동주의 펀드가 개입하면 주주총회에서 벌어지는 지배주주와 총수 일가 간 표 대결에 변수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며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이 주주친화적인 방향으로 기업 경영의 물길을 바로잡을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동주의도 과유불급, 경계 목소리도↑

다만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득이냐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통상 행동주의 펀드는 주식 투자를 통해 수익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자사주 소각과 매입, 배당 확대, 이사 선임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때론 주식 매수로 확보한 지분을 바탕으로 경영권 분쟁에 참여하기도 한다. 기업의 성장전략과 괴리된 채 단기 주가 상승과 차익 실현에만 급급하다면 앞서 언급한 '메기' 역할은커녕 오히려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로 전락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한 상장사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는 기업의 지속가능성보단 현재의 주가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행동주의 펀드가 개입하면 이슈가 되니까 개인투자자도 자연스레 모이겠지만, 결국 장기적인 기업 발전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기업 체력에 비해 과도한 주주환원 정책을 요구하며 의심스러운 속내를 내비친 행동주의 펀드들은 이미 다수 존재한다. 상술한 삼성물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앞서 삼성물산은 보통주 주당 2,550원의 배당을 결정했는데, 행동주의 펀드들은 거의 2배 가까이 배당액을 올려달라고 압박하는 모양새다. 이들의 제안이 받아들여질 경우 삼성물산은 잉여 현금 흐름을 100% 초과해 투자 재원 마련에 장애를 겪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다 보니 "사실상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식의 먹튀 수법을 대놓고 활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지만, 막상 셈을 다해보고 난 뒤 남는 건 행동주의 펀드가 가져갈 뿐이란 지적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 또한 행동주의 펀드의 긍정적 역할을 기대하되 과유불급의 선을 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추세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1 week
Real name
박창진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지근거리를 비추는 등불은 앞을 향할 때 비로소 제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과거로 말미암아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비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돈줄 마른 건설사들 "이자 감당도 어려워", 4월 위기설 현실화하나

돈줄 마른 건설사들 "이자 감당도 어려워", 4월 위기설 현실화하나
Picture

Member for

1 month 1 week
Real name
이제인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수정

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지방 건설사 위기, 법정관리 신청 이어져
"4월에 대거 회생절차 들어갈 것", 4월 위기설에 업계 우려 증폭
올해만 벌써 5개사 부도 및 565개사 폐업, 2019년 이후 최대 수치
construction-industry_FE_20240304

공사비 상승, 분양시장 침체 등의 여파로 연초부터 지방 건설업체의 법정관리(회생절차) 신청이 이어지면서 건설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채무 이행을 위해 대기업 계열사들은 자산 매각 등 제살깎기 수단을 동원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으나, 그마저도 여력이 안 되는 지방 중소 업체들은 부도를 맞거나 아예 폐업하는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다. 여기에 오는 4·10 총선 이후 중소·중견 건설업체가 대거 무너질 수 있다는 ‘4월 위기설’은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지방 중소 건설업체들, 회생절차 신청 증가

4일 건설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선원건설이 신청한 회생절차와 관련해 지난 26일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포괄적 금지 명령은 채무자가 회생절차를 신청했을 때 채권단이 부채 상환 방안을 결정하기 전까지 경매 등 재산권 행사를 금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공능력평가 122위인 선원건설의 지난해 토건 시공능력평가액은 2,267억9,500만원(약 1억7,000만 달러)으로, 경기지역 상위권 건설업체로 꼽힌다. 현재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서 23가구 규모 공동주택과 용답동 오피스텔(196실), 가평군 설악면 아파트(420가구), 부산 해운대 오피스텔(98실) 등 주거시설을 시공 중이다.

그러나 원자잿값 폭등과 함께 일부 사업 준공 시기가 맞물리면서 회생절차를 밟게 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선원건설의 공사미수금은 724억원(약 5,500만 달러)에 달한다. 또 단기대여금 86억원(약 646만 달러), 기타미수금 32억원 중 66억원가량을 회수 불가능한 대손충당금으로 처리한 것으로 파악됐다.

선원건설뿐만 아니라 지방의 많은 건설업체들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자금난을 피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176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인천 부평구 소재 영동건설은 지난달 설립 30년 만에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고,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울산 내 토목건축업 1위를 차지했던 부강종합건설(시평 179위)도 같은 달 법원의 포괄적 금지 명령을 받았다.

'4월 위기설' 우려 높아지는데, 금융당국 "근거가 뭔가" 일축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4월 위기설'까지 나돌며 업계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를 겪고 있는 건설사들이 총선이 끝나고 외부 감사 보고서가 나오는 4월이면 대거 법정관리에 들어갈 것이라는 게 위기설의 골자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달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개혁신당 양정숙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재무상태를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지표인 부채비율 200% 이상인 종합건설사가 14곳에 이르고, 기업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는 지표인 부채비율 400% 이상인 종합건설사도 2곳으로 확인되는 등 재무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종합건설사 시공능력 순위 10위권 내 종합건설사 중 유동부채비율 70% 이상인 건설사가 7곳, 70% 이상 80% 미만 3곳, 80% 이상 90% 미만 2곳, 90% 이상 2곳이나 됐으며 50위까지 확대하면 유동부채비율 70% 이상인 건설사가 28곳이나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최상위 건설사의 절반 이상이 재무 상태가 매우 부정적이라는 의미다. 현재 기업 워크아웃을 준비 중인 태영건설의 부채비율이 257.9%, 유동부채 비율이 68.7%였다는 점에 비춰볼 때 건설사들의 부도 위기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닌 셈이다.

다만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현장 분위기와 달리, 금융당국은 위기설에 대해 진원지가 없다며 선을 그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2일 오전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명확하게 밝혔다. 이 총재는 "부동산 PF는 상당수 정리되는 중이고, 정리하고 있어서 총선 전후로 크게 바뀔 것이라는 근거가 뭔지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아가 PF를 보고 금리 결정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PF가 모두 살아날 수 없지만,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가계부채 문제건 부동산 PF 문제건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지금 정부의 일"이라며 일축했다.

property_Finacial_20240304

건설업체 상당수 '도산 위기', "건설사 법정관리행 계속 이어질 것"

하지만 업계에서는 4월 위기설이 근거 없이 나오는 얘기는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지난달 20일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무려 5곳의 건설업체가 부도를 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 2곳에서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2019년(10곳)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이들 부도업체는 모두 광주·울산·경북·경남·제주 지역을 거점으로 둔 전문 건설사다.

폐업하는 건설사도 늘었다. 지난 1월 1일부터 2월 18일까지 폐업 신고한 종합건설사는 64곳, 전문건설사는 501곳으로 총 565곳에 달했다. 부동산 활황기던 2021년 폐업한 업체가 361곳이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 폐업 기업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건설업체 상당수는 자금 사정도 악화한 상황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시장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국내 매출 500대 건설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76.4%가 현재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답했고, 자금 사정이 양호하다는 답변은 18.6%에 불과했다.

자금 사정을 압박하는 요인으로는 고금리와 급격한 원자재 가격 상승이 지목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하면 지난해 건설공사비지수는 153.26으로 3년 새 25.8% 올랐다. 간접비 등을 고려하면 실질 공사비는 50% 이상 늘어난 셈이다. 여기에 최근 금융당국이 밝힌 ‘부동산 PF 정리 로드맵도 4월 위기설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로드맵에는 정부가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된 PF 사업장을 경·공매로 넘길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과정에서 PF 대출보증을 선 건설사는 손실이 현실화해 유동성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금융당국의 로드맵은 총선이 끝나는 4월 직후 본격화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건설사의 법정관리행은 계속 이어질 공산이 크다. 지역 건설사의 자금난을 키운 악성 미분양이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부동산 시장을 뒤덮은 악재가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의 거품이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분석한다. 당장 수면 위로 부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산처럼 쌓인 부채는 언제 어떻게 우리 경제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는 과거에도 당국의 ‘안심하라’는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1998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국가적 위기를 겪은 바 있다. IMF 사태 당시 김영삼 정권은 "구제금융 신청은 절대 없다"며 위기론을 단박에 일축했고, 경제학자들도 잇따라 장밋빛 전망만을 연일 쏟아냈다. 금융위기 때도 세간에 도는 위기설은 한낱 낭설로 치부했다. 4월 위기설이 실제 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교한 플랜을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1 week
Real name
이제인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한국 경제 숨통 옥죄는 가계부채 리스크, 길 잃은 정부

한국 경제 숨통 옥죄는 가계부채 리스크, 길 잃은 정부
Picture

Member for

1 month 1 week
Real name
전수빈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독자 여러분과 '정보의 홍수'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뗏목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 중 길을 잃지 않도록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겠습니다.

수정

가계부채 누적에 신음하는 한국, 가계부채 비율 '줄어도 1위'
부동산 중심으로 불거진 가계부채 위기, 금융위기로 번진다
한국은행과 엇나가는 정부 금융 정책, 리스크 해소에 집중해야 
debt_fe_20240304

한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전년 대비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지는 고금리 기조 및 부동산 경기 침체가 가계부채 증가세에 제동을 건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비율이 여전히 세계 1위 수준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일시적으로 가계부채 비율이 줄었다고 해서 한국 경제의 '경착륙'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한국,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세계 1위

국제금융협회(IIF)가 최근 발간한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세계 33개 국가(유로 지역은 단일 통계) 중 1위였다. 100.1을 기록하며 가계 부채가 GDP를 웃도는 유일한 국가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는 홍콩(93.3%)·태국(91.6%)·영국(78.5%)·미국(72.8%) 등 여타 국가 대비 눈에 띄게 높은 수준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가계부채 비율이 전년 대비 하락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가계부채 대비 GDP 비율 하락 폭은 -4.4%p(104.5→100.1%)로 영국(-4.6%포인트)에 이어 두 번째로 컸다.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이 정점을 기록했던 2022년 1분기(105.5%)와 비교하면 5.4%p 낮은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과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 노력이 빛을 발할 경우, 연내로 가계부채 비율이 100%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도 제기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계대출 축소를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상황이 오히려 악화할 것이라 보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견인한 만큼, 책임을 지고 확실히 경제 뇌관을 관리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해 예금취급기관(예금은행+비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이 줄어드는 동안 정부 정책금융 가계대출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주택도시기금과 한국주택금융공사가 공급한 주택담보대출의 증가 규모만 총 28조8,000억원(약 216억 달러)에 달한다.

가계부채가 '금융위기' 초래한다?

부풀어 오른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거대한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금리 기조 속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가계가 줄줄이 부실화할 경우, 경제 전반에 엄청난 충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것은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지난달 부동산 전문가 172명과 공인중개사 523명, 자산관리전문가(PB) 7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인중개사와 PB 각 79%가 주택가격 하락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74%가 집값 하락을 전망했다.

고금리 기조 속 가계부채 급증을 견인한 부동산 가격의 '거품'이 꺼져가는 가운데, 무리한 대출을 동반해 부동산을 매입했던 소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매입)족'들은 벼랑 끝에 내몰렸다. 이자 부담이 꾸준히 불어나는 가운데, 부동산 경기 침체로 주택 매각에 난항을 겪으며 상환 여력을 잃게 된 것이다. 대출금을 연체하는 차주들은 눈에 띄게 증가했고, 이는 은행권의 부실 리스크로 이어졌다.

debt_property_20240304

실제 4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의 지난해 말 기준 추정손실은 총 1조9,660억원(약 15억 달러)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1조3,212억원) 대비 48.8% 증가한 수준이자 역대 최대치다. 전문가들은 은행권 손실 증가의 원인으로 △경기 침체로 인한 취약 차주들의 자산 건전성 악화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고금리로 인한 연체 등을 지목한다. 사실상 가계부채 위기가 금융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셈이다.

정부, 확실한 금융 정책 방향 수립해야

이에 한국은행과 정부는 본격적인 딜레마에 빠졌다. 부동산 거품을 무너뜨리기 위해 금리를 높은 수준에서 유지할 경우 가계부채 부실 리스크가 증가하고, 가계 안정을 위해 금리를 인하할 경우 인플레이션 위협이 가중되는 난감한 국면에 맞닥뜨린 것이다.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긴축 유지를 택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2021년 8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기준금리를 3%포인트(연 0.50%→3.50%) 인상하고, 2월부터 동결을 이어가며 높은 금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한국은행과 '엇박자'를 탔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동안,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에 오히려 대출금리 인하를 종용했다.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최초 출시하며 가계대출 증가를 부추기는가 하면, 해당 상품이 가계부채 급증의 주범이라며 갑자기 중단시키는 등 시장 내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외로도 정부는 수많은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을 내놓으며 고금리 기조 속 부동산 시장 부양에 힘썼다. 그 결과 정책금융발(發) 가계대출 잔액은 눈에 띄게 증가했고, 취약 차주들의 부실 리스크 역시 급증하게 됐다.

정부의 주먹구구 대처 속 불어난 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돼 한국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금융당국이 정확한 금융 정책 방향을 확립하고, 시장에 일관적인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질서 있는 가계부채 축소 대책을 제시, 시장 내 리스크를 점진적으로 해소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1 week
Real name
전수빈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독자 여러분과 '정보의 홍수'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뗏목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 중 길을 잃지 않도록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겠습니다.

'비전 프로' 애플 독주에 LG-메타 합종연횡, XR·AI가 LG의 구원투수

'비전 프로' 애플 독주에 LG-메타 합종연횡, XR·AI가 LG의 구원투수
Picture

Member for

1 month 1 week
Real name
박창진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지근거리를 비추는 등불은 앞을 향할 때 비로소 제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과거로 말미암아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비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수정

하드웨어 명가 LG전자, 메타와 손잡고 XR 등 사업 진출
영업 부진 타개책은 AI? LG-메타 협업에 역량 강화 기대감↑
내부에서만 수익 내던 LG경영개발원, 이번 기회로 '한계 돌파'하나
LG_Meta_FE_20240229

IT 하드웨어 명가로 꼽히는 LG전자가 첨단기술 분야 최강기업 중 하나인 메타와 손을 잡는다. AI, XR(확장현실) 등 미래 성장성이 높은 분야를 함께 걸어 나가기로 합의한 것이다. 일단 내년 1분기 출시를 목표로 고성능 XR 기기를 공동 개발하고 차후 AI 챗봇 등을 구현할 수 있는 메타의 LLM(대규모언어모델) 기술을 LG전자의 TV, 가전, 모바일 기기 등에 적용하기로 했다. LG전자와 메타의 합종연횡이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LG전자의 '뒷심'이 돼줄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LG-메타 협업체계 가시화, "내년 XR 헤드셋 출시"

LG전자는 28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메타와 XR, AI 신사업 협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논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엔 지난 27일 방한한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와 권봉석 LG 최고운영책임자(COO), 조주완 LG전자 CEO, 박형세 HE사업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회의 테이블에 오른 첫 주제는 차세대 XR 기기 공동 개발이었다. 양사는 애플의 '비전 프로'를 능가하는 XR 헤드셋을 내년 1분기까지 출시하기로 합의했다. 제품 양산은 공식적으로 LG전자가 맡기로 했다. LG전자는 TV에 들어가는 운영시스템(OS)인 '웹OS'를 통해 쌓은 콘텐츠 서비스를, 메타는 5년 넘게 메타버스 사업을 벌인 노하우를 XR 기기에 담을 방침이다.

AI 기술 협업 방안도 논의 안건에 올랐다. 주제는 세계에서 쓰이고 있는 LG전자 제품 7억~8억 대를 메타의 LLM 기반 AI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저커버그 CEO는 최근 인간 이상의 지능을 갖춘 AGI(범용인공지능) 개발을 선언했는데, 그 출발점이 현재 개발 중인 LLM ‘라마 3’다. 조주완 CEO는 특히 ‘온디바이스 AI(인터넷 연결 없이 기기 자체에서 구동되는 AI)' 관점에서 두 회사의 시너지 창출 가능성에 많은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CEO는 “(AI 관련) 협력 범위는 굉장히 넓다”고 말했다.

LG전자는 XR 사업 추진에 있어 디바이스뿐 아니라 플랫폼과 콘텐츠 역량까지 균형 있게 갖춰 나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메타와의 협업이 추진된 배경에도 이 같은 인식이 큰 영향을 미쳤다. 차세대 XR 기기 개발에 메타의 다양한 핵심 요소기술과 LG전자의 기기 역량을 결합하면 큰 시너지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XR 기기는 모바일 스크린의 한계를 뛰어넘는 몰입감과 직관성을 갖춰 다수의 전문가들로부터 스마트폰을 대체할 수 있는 '포스트 스마트폰 기기'로 평가받는다. 개인이 직접 착용하는 웨어러블 기기라는 점에서 고객 접점을 대폭 늘릴 수 있는 제품이기도 하다.

LG_Meta_20240229
(왼쪽부터) 조주완 LG전자 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권봉석 LG COO가 28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LG

글로벌 위기 둘러싸인 LG, 재무구조 악화도

최근 LG전자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확대, 경기 침체 등 경영 환경을 둘러싼 복합 위기에 잠식되고 있다. LG전자의 최대 강점 중 하나로 꼽히는 디스플레이도 부진을 면치 못하는 양상이다. LG전자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는 지난 2022년 2조원(약 15억 달러)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경기 침체에 따라 수요 부진이 심화하면서 역대급 어닝쇼크(예상보다 부진한 실적)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더욱이 실수요가 언제 회복 국면에 접어들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실질적인 실적 개선은 당분간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매년 대규모 자금 조달에 성공해 온 LG화학조차 재무구조 악화 우려에 휩싸인 상태다. LG화학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2조5,292억원으로 전년 대비 15.1% 감소했다. 특히 석유화학 부문은 영업손실 1,430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고, 첨단 소재 부문은 5,85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나 전기차 시장 악화로 수익성이 전년 대비 36% 악화했다. 그러는 사이 회사채 조달 폭이 늘면서 재무구조 악화가 가시화했다. 현금 곳간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순차입금은 2022년 말 7조1,750억원에서 지난해 3분기 12조7,522억원으로 크게 불어났다. 현금창출력의 공백을 차입금으로 메우고 있단 의미다.

메타가 '탈출구'? 'AI 연구원' 역할 강화도 기대

이 같은 상황에서 메타와의 협업체계가 가시화한 건 LG전자에 있어 명백한 호재다. 업계에선 이미 메타와 손을 잡은 LG전자가 글로벌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분야는 단연 AI다. 최근 자사 가전제품에 AI 기능을 활발하게 적용하고 있는 LG전자에 있어 메타와의 XR 기기 협업은 AI 기술 역량을 강화할 최적의 환경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LG전자가 "생활가전 사업의 목표인 ‘가사 해방을 통한 삶의 가치 제고(Zero Labor Home, Makes Quality Time)’ 실현을 AI를 통해 가속화할 것"이라고 언급한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난 2020년 발족한 LG전자 내 AI 전담 연구 조직인 'LG AI 연구원'의 역할 강화에도 개연성이 생겼다. 그간 LG AI 연구원은 LG 계열사 내에서만 수익을 내는 등 명확한 한계에 가로막혀 있었다. 실제 지난 2022년 LG AI 연구원의 상위 조직 LG경영개발원이 올린 매출은 총 2,046억1,270만원이었는데, 이중 특수 관계자와의 거래로 발생한 매출만 2,044억7,900만원에 달했다. 사실상 매출의 대부분이 내부에서 발생한 셈이다. 다만 LG경영개발원의 매출이 꾸준히 상승 지표를 이루고 있었던 만큼 역량 자체는 부족하지 않으리란 평가가 많다. 산하의 LG AI 연구원 또한 메타와의 협업 아래 역량을 키운다면 LG전자의 제반 기술 강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1 week
Real name
박창진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지근거리를 비추는 등불은 앞을 향할 때 비로소 제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과거로 말미암아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비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