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기업들 "EU 내 경영 환경 악화, 경제 안보 강화에 불확실성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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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기업의 유럽 경영 환경 평가 5년 연속 하락 "정치적 긴장과 규제 강화로 불확실성 확대돼" EU, 中 기업에 보조금 대가로 '기술 이전' 요구
유럽연합(EU)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이 체감하는 유럽 내 비즈니스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비즈니스 환경 악화의 원인으로 범정치화로 인한 '불확실성 확대'를 꼽았다. 중국과 서방 국가 간의 정치적 갈등에 더해 EU의 경제 안보 기조가 더해지면서 대중국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에는 EU가 중국 기업에 지급하는 보조금을 대가로 지식재산권을 유럽 기업으로 이전토록 강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중국에 대한 견제가 갈수록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中 기업들 "EU 비즈니스 환경 갈수록 악화해"
10일(현지 시각) 로이터에 따르면, 유럽중화상회의(China Chamber of Commerce to the EU, CCCEU)와 글로벌 전략 컨설팅 업체 롤랜드버거는 전날 '2024~2025년도 플래그십 보고서'를 공동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기업 2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올해 EU 내 비즈니스 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62점으로 2019년보다 11점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보면 2019년 73점에서 △2020년 70점 △2021년 68점 △2022년 65점 △2023년 64점으로 5년 연속 하락했다.
조사에 참여한 기업의 68%는 '지난 1년 동안 비즈니스 환경이 악화했다'고 응답했고 'EU 시장이 더 이상 공정하고 개방적이지 않다'는 응답도 절반이 넘었다. 지표별 조사 결과를 지난해와 비교해 보면 정치(45점→42점), 경제·산업(58점→60점), 인재(70점→65점), 인프라(75점→73점), 연구개발(83점→80점), 비즈니스 서비스(55점→50점) 등 6개 지표 모두 하락했다. 올해 새로 추가된 시장 접근성과 경쟁 여건(55점), 사회문화적 여건(57점) 등도 50점대를 기록하며 비즈니스 환경이 '열악하다'고 평가했다.
전년 대비 투자 규모의 변화에 관한 질문에는 '올해 대(對)EU 투자가 지난해보다 늘었다'는 응답이 43%로 1년 전 80%대에서 많이 감소했다. 비즈니스 환경이 악화한 요인으로는 '공개입찰 참여 장벽', '보조금 자격 취득 확률 하락', '다른 나라 기업보다 긴 투자 심사 기간'이 꼽혔다. 주요 투자 촉진 요인으로는 '브랜드의 글로벌 인지도 제고 기회 확대', '수요가 많은 대규모 시장에 대한 접근성 제도', '디지털-녹색 분야의 새로운 기회 확보' 등의 응답이 많았다. 또 당면한 과제로는 '무역장벽 증가', '인건비 상승', '지정학적 긴장' 등을 제시했다.
中 기업에 대한 공평·공정·예측 가능성 강조
한편 CCCEU는 이날 공개된 플래그십 보고서를 통해 유럽에서 활동하는 중국 기업의 경영 키워드로 '불확실성'을 제시하면서 "EU의 경제 안보 기조와 이로 인한 범정치화가 비즈니스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며 "EU가 유럽 내 중국 기업을 위해 공평·공정·예측 가능한 시장 환경을 조성하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EU와 중국 간 정치적 이슈가 사업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한 기업이 90%에 달했다.
EU는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에 밀리기 시작하면서 중국에 대한 규제를 본격적으로 강화하기 시작했다. 지난 2019년 EU는 중국을 '협력 파트너, 경제적 경쟁자 및 체제적 라이벌'로 규정하며 대중국 전략을 전환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어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중국에 대한 '디리스킹(de-risking)' 전략을 채택했다. 올해 12월부터는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기반으로 저가 공세를 펼치고 있는 중국 배터리 기업에 대해 전방위적 규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할 예정이다.
특히 EU는 엄격한 환경 규제를 받는 역내 기업들이 환경 규제가 훨씬 덜한 중국 등 국가에서 생산된 수입품 때문에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기존 10%의 세금에 더해 중국산 전기자동차에 최대 35% 관세를 부과하기로 확정했다. 아울러 수소 보조금을 신청하는 회사에 엄격한 요건을 도입해 수소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전해조 부품의 25%만 중국에서 조달할 수 있도록 제한한 바 있다.
최근에는 중국 기업에 지급하는 보조금을 대가로 지식재산권을 유럽 기업으로 이전토록 강요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EU가 배터리 개발을 위한 10억 유로(약 1조5,000억원) 상당의 보조금 입찰에 참여하는 중국 기업에 대해 유럽에 공장을 두고 기술 노하우를 공유하도록 요구하는 기준을 12월 추가로 도입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규제는 시범사업으로 시행한 뒤 다른 EU의 보조금 제도로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유럽 기업도 中 정부의 엄격한 규제에 어려움
기술 이전을 강제하는 EU의 조치에 대해 FT는 "그동안 중국이 자국 시장에 접근하는 대가로 외국 기업에 지식재산을 공유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과 유사한 제도"라며 "EU가 대중국 정책과 관련해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자국 시장에 진출한 외국 기업에 지식재산권 이전을 요구하는 '시장과 기술의 교환' 정책을 시행해 왔다. 현지 기업과의 합작투자(Joint Venture, JV)를 강제하거나 보조금 지급, 정부 조달 참여 등을 조건으로 기술 이전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양국이 서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유럽 기업 또한 중국에서의 기업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 중국 주재 EU상공회의소는 장문의 보고서를 통해 '불확실성과 엄격한 규제로 인해 중국 내 외국 기업에 대한 위험이 급격히 증가했다"며 "중국 시장은 예측하기 어렵고 신뢰성이 낮으며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 이유 중 하나는 사업 환경이 더욱 정치화했기 때문"이라며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이 점점 정치화하는 상황에서 중국 시장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혹은 계속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EU상의는 중국 지도자들을 향해 "최근 몇 년 동안 이러한 우려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보고서를 통해 "그동안 중국 정부가 외국 기업과 투자에 대한 개방성을 강조해 왔지만, 실제 조처들은 그러한 개방 의지에 어긋나고 있다"며 "외국 기업에 대한 단속과 감시, 국가기밀과 관련한 불명확한 법령, 강화된 데이터 처리 규정 등은 중국 내 많은 외국 기업인에게 불안감을 야기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