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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교과서 현장 확산 동력 상실
업계 ‘1년 유예·시범 확대’ 요구
현장은 낮은 실효성에 회의론 우세

AI 디지털교과서가 관련 법 개정으로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되며 학교 현장에서 사실상 퇴출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에 발행사들은 대규모 투자 손실과 공교육 플랫폼 공백을 우려하며 정책 유예와 제도 재논의를 요구하고 나섰다. 반면 교사나 학부모 등 교육 현장에선 AI교과서의 실효성 부족과 현장 혼선에 대한 비판이 여전히 우세하다. 일부 긍정 사례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보완 없이는 확산 동력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잦은 오류와 낮은 신뢰도 극복 못 해”
5일 교육부에 따르면 AI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분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해당 개정안은 교과서의 정의를 법률에 직접 명시하고, 그 범위를 도서 및 전자책으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개정안 의결에 따라 AI교과서를 비롯한 지능정보 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는 향후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분류된다.
AI교과서는 지난 윤석열 정부가 AI 기능을 활용해 학생 개개인의 수준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올 1학기부터 초 3·4학년(영어·수학), 중 1·고 1(영어·수학·정보) 학생들이 사용 중이며, 여기에는 업체 12곳이 참여했다. 애초 교육부는 전면 의무 도입을 추진했으나, 민주당 반대로 원하는 학교만 자율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지난해 AI교과서 도입에 투입된 예산은 약 5,300억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AI 교과서를 교육 자료로 격하하는 방안을 공약했다. AI교과서의 도입이 본격화된 직후 이를 둘러싼 교육계 내부 갈등이 이어지는 만큼 AI교과서가 아닌 학습 플랫폼에 무게를 싣겠다는 게 이 대통령의 구상이다. 당시 그는 “AI교과서를 교육자료로 활용하되, 학교 자율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다양한 학습 콘텐츠 활용을 위한 공공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설명했다.
개정안 통과에 앞장선 민주당은 AI교과서의 실제 사용률이 채택률보다 훨씬 낮다는 점을 그 근거로 삼았다. 민주당 백승아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전국 일선 학교의 AI교과서 채택률은 32%지만, 실제 접속하는 학생은 전체 가입자의 14.5%에 불과했다. 충분한 준비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도입돼 전반적인 오류가 잦고, 지난 정부에서 AI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충분한 신뢰도를 구축하지 못했다는 게 여당 의원들의 주장이다.
‘유예·재논의·데이터 주권’ 앞세운 폐지 반대론
AI교과서의 법적 지위가 교육자료로 격하되면서 발행사들엔 비상이 걸렸다. 교과서 지위가 박탈되면 교과용도 인정 예산이 끊기고, 활용률 또한 더 낮아질 것이란 위기감에서다. 현재 채택률이 30% 수준을 간신히 넘긴 상황에서 향후 교육자료로 분류되면 학생 1인당 월 5,000원 수준의 구독료 지원조차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기업들은 약 8,000억원 규모의 누적 투자금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발행사들은 국회 입법 과정에 강력히 반발하며 조직적인 대응에 나섰다. 14개 AI 교과서 발행사는 여당인 민주당에 직접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국회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지난달 말에는 교사와 학부모, AI교과서 발행사 관계자 300여 명이 참여한 정책 토론회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발행사 관계자들은 AI교과서 도입 정책이 이미 시행 중인 만큼 최소 1년의 유예 기간을 부여해 시범 운영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현장에서 충분한 실사용 경험 없이 제도를 폐기하는 것은 졸속이라는 문제 제기다.
기술적 관점에서도 우려는 이어진다. 정보 교과에 집중적으로 쓰이는 AI교과서는 코딩 교육과 직결되는 영역인데, 종이 교과서 위주의 현장 평가 방식과 괴리가 크다는 점에서 공교육 시스템의 정합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비상교육·미래엔과 함께 AI 교과서를 개발한 엘리스그룹의 김재원 대표는 “10년 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코딩 시험을 종이로 치르는 걸 보고 AI교과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여전히 그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하며 “급변하는 코딩 교육 환경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나아가 국내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가 해외 플랫폼으로 이전되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제기된다. 이미 챗GPT, 제미나이 등 AI 기반 서비스가 빠르게 안착 중인 만큼 공교육 플랫폼의 약화는 데이터 주권과 공공성을 더 크게 악화시킬 것이란 관측이다. 금성출판사와 고교 정보 AI 교과서를 만든 팀모노리스의 엄은상 대표는 “AI 교과서 지위가 참고서 수준으로 낮아질 경우, 그 공백을 글로벌 AI 서비스가 빠르게 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인프라·평가 기준 동반 정비 없인 확산에 한계
반면 학교 현장에서는 AI교과서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우세하다. 기기 불안정성과 인터넷 환경에 대한 의존도, 자료의 수준 차이 등 기술적·실무적 문제가 반복되면서 현장 안착은커녕 교사들의 업무 부담만 가중하고 있단 비판이다. 한 중학교 교사는 “콘텐츠를 교과 과정과 일일이 맞춰야 하고, AI 추천 내용이 엉뚱한 경우도 있어 되레 시간이 더 걸린다”면서 “정규 수업 시간 내에 이를 소화하려면, 교사 혼자서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라고 토로했다.
교사의 역할 변화에 대한 제도적 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 또한 제기된다. 기존 교과서 중심의 수업은 콘텐츠 품질이 표준화돼 교사의 수업 설계가 가능했지만, AI 교과서는 ‘개별 추천’이라는 명분 아래 자료의 편차가 심하고 교사 간 숙련도 차이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이 같은 환경에서는 ‘누구에게는 좋은 교과서, 누구에게는 불편한 플랫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긍정적인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수업 경험이 풍부한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의 학습 패턴에 맞춘 개별 피드백, 오답 분석 기반 추천 과제, AI 튜터 챗봇을 활용한 실시간 질의응답 등에서 만족도가 높았다는 평가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대면 수업에 익숙해진 세대에서는 오히려 AI 플랫폼 활용이 자연스럽다는 반응도 있었다. 다만 이러한 긍정적 사례들은 주로 디지털 인프라가 우수한 도시 지역에 국한된 탓에 전국적 확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다수 의견이다.
결과적으로 교육 현장의 반응은 “아이디어는 좋지만, 시기상조였다”는 인식으로 수렴된다. 시험 평가 시스템은 여전히 종이 시험 중심이고, AI 활용 수업에 대한 표준화된 교원 연수나 관리 체계도 부재한 상황에서 AI 교과서가 보조 자료 이상으로 기능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단순히 법적 지위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현장 활용도를 높일 수 없으며, 예산, 인프라, 교육과정, 평가 기준의 종합 정비가 없다면 실효성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게 교육계 전반의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