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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반도체, 이차전지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해외로의 기술 유출과 온라인 기술 탈취가 증가함에 따라 각국에선 기업의 기술 및 경영상 정보 유출 방지를 위해 관련 제도 정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회도서관은 20일 ‘주요국의 산업기술 해외 유출 방지 입법례’를 발간하고 주요국의 입법례를 통해 우리나라 관련 법령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규정을 찾아 제언했다.
미국의 경제스파이법, 영업비밀 해외 유출 가장 엄중히 처벌
미국은 연방 차원에서 영업비밀 절취행위를 막기 위해 ‘경제스파이법(Economic Espionage Act, 이하 스파이법)’을 제정했다. 우리나라가 ‘산업기술보호법’으로 산업기술을 보호하고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방지법)’로 영업비밀을 보호하는 것과 달리 미국은 스파이법 하나로 산업기술과 영업비밀을 모두 보호한다. 스파이법은 법문에 별도로 산업기술의 개념을 두지 않고 영업비밀의 개념만 두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부정방지법보다 영업비밀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정의해, 사실상 산업기술 및 영업비밀 보호 범위에 양국 간 차이는 없다.
스파이법은 크게 △외국에서 사용하려는 의도의 영업비밀 절취 △외국에서 사용하려는 의도가 없는 일반적인 영업비밀 절취 △영업비밀 부정사용 등 세 가지 유형의 행위를 금한다. 특히 외국 사용 목적의 영업비밀 절취의 위법성을 가장 높게 평가해 위반 시 최대 1천만 달러(약 135억원)의 벌금과 1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고 있다. 외국 사용 목적이 없는 일반적인 영업 비밀 절취행위에 대해서는 이보다 낮은 최대 5백만 달러(약 67억원)의 벌금과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개인이 아닌 단체가 영업비밀을 침해하면 외국 사용 목적과 상관없이 최대 1천만 달러 또는 기업이 얻은 영업비밀 가액의 3배 중 큰 금액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영업비밀을 부정하게 사용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 없이 민사적 구제 조치만 규정하고 있다.
이때 영업비밀 절취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행위의 '고의성'이 입증돼야 한다. 외국에서 사용하려는 의도가 있는 절취죄의 경우 외국 정부, 기관, 대리인의 이익을 위해 이를 알면서도 고의로 영업 비밀을 절취했다는 사실이 입증돼야 성립이 가능한 것이다. 이어 외국 사용 의도가 없는 절취는 소유자가 아닌 제3자에게 경제적 이익을 주기 위해서 피해 발생 가능성을 알면서도 고의로 절취했을 때 성립한다.
내부고발자 면책제도, 사전 구제 제도 통해 실효성 제고
스파이법은 내부고발자 면책제도를 통해 법의 실효성을 높였다. 예컨대 스파이법은 다른 의도 없이 오로지 기업 등의 법령 위반 혐의를 제보하거나 조사하려는 목적으로 영업비밀을 공개한 경우 또는 소송 등의 절차에 따라 법원에 영업비밀을 공개한 경우만 내부고발 면책 대상자로 인정한다. 이 경우 형사적 책임 또는 주법에 따른 민사적 책임에서 면책된다. 한편 고용주는 고용계약 등 체결 시 내부고발자 면책사항을 미리 근로자에게 알려야 하며 이를 위반할 시에는 추후 해당 근로자가 영업비밀 부정사용 행위를 하더라도 징벌적 손해배상 및 변호사비용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스파이법이 금지하는 세 가지 행위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민사적 구제 방법도 정하고 있다. 특히 영업비밀 소유자는 민사소송 과정에서 법원에 영업비밀의 유포 중단을 신청할 수 있다. 법원이 이를 인정하면 영업비밀 절취자(피고)의 동의 없이도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된 재산의 압류를 명할 수 있다. 이같이 원고의 단독 신청에 따라 피고가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법원이 민사상 압류를 명할 수 있는 구제 방법은 개별 주법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철저한 입법 목적 달성 위해 법률 역외 적용 및 사후관리 실시
스파이법은 영업비밀 침해행위가 발생한 장소와 상관없이 미국인 또는 미국기업에만 적용된다. 또한 침해자가 미국인이나 미국기업이 아니더라도 미국 내에서 영업비밀 행위가 발생할 경우 모두 스파이법의 적용 대상이 된다.
아울러 스파이법은 해외에서 발생한 영업비밀 절취행위 현황을 연방 의회에 정기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법무부 장관은 매년 2차례 지적재산 집행조정관, 지적재산 담당 상무부 차관, 미국특허청장 및 기타 관계부처의 장과 협의해 해외에서 발생한 영업비밀 절취에 관한 보고서를 상원 및 하원 법사위원회(Judiciary Committee)에 제출해야 한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보고서에는 해외에서 발생한 미국기업 영업비밀 절취의 규모와 빈도, 해외에서 발생한 영업비밀 절취사례 중 외국의 정부·기관·대리인이 지원한 사례가 차지하는 비중 등을 비롯해 영업비밀 절취로 인해 발생한 미국기업의 경제적 피해를 감축하는 방안 등이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