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의 ‘성과 주의 기업가 정신’, 이번엔 공무원 겨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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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만 美공무원 재택 근무, 사무실 출근은 60%
트위터도 테슬라도 “주 40시간 이상 근무”
인원 감축 따른 노조와의 충돌 불가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임명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연방정부 몸집 줄이기를 시사했다. 공무원들의 재택근무를 없애 자발적 퇴사를 유도하는 등 관료제를 축소하겠단 계획이다. 미국 내에서는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노조와의 마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고착화된 관료주의 타파”
DOGE의 공동 수장으로 임명된 머스크 CEO와 비벡 라마스와미는 20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정부 개혁을 위한 DOGE의 계획’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발표했다. 해당 기고에서 머스크와 라마스와미는 “연방정부가 대통령 행정명령을 남용해 의회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넘어선 수준의 규제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면 행정명령을 통해 이같은 규제의 이행을 즉각 중단하고, 재검토와 폐지 절차를 개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고착화된 관료주의가 미국에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오는 동안 정치인들은 이를 방조해 왔다”고 짚으며 “우리는 정치인이 아닌 기업가이기 때문에 (기업인의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머스크 CEO와 함께 DOGE 수장에 임명된 라마스와미는 바이오기업 로이반트사이언스를 설립한 기업인으로, 시장 내에서는 ‘제약계의 워런 버핏’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규제 축소를 통해 공무원의 숫자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게 이들 기업인 출신 DOGE 수장의 주장이다. 구체적으로는 각 기관에 필요한 최소한의 직원 수를 파악해 인원을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헌법적으로 허용되고, 법령으로 정해진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최소 인력을 식별하고, 폐기되는 연방 규정의 숫자에 최소한 비례 되는 숫자의 연방 공무원을 해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주 5일 출근을 의무화해 자발적인 퇴사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들은 “연방 직원들이 출근을 원하지 않을 경우, 미국 납세자들은 그들에게 돈을 지불하면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미 연방 인사관리처(OPM)에 따르면 현재 130만 연방 공무원이 원격근무를 승인받은 상태다. 이들은 평균 사무실 근무 시간은 전체 근무 시간의 약 60%다.
머스크와 라마스와미는 “법은 연방 공무원을 정치적 보복 차원에서 해고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명시했을 뿐, 특정 직원을 겨냥하지 않은 인력 감축은 허용한다”며 “대통령에게는 대규모 해고와 연방 기관의 수도 밖 이전 등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연방정부의 인력 감축으로 자리가 없어진 공무원에게는 민간 부문 이직을 돕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 내에서는 공무원들의 재택근무 축소로 인한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블룸버그 통신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워싱턴DC의 사무실 공실률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시내 경제 활동 또한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68% 수준에 머물고 있다”라며 “연방 공무원들의 전면적인 사무실 복귀는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연방 공무원 노조와의 충돌은 백악관이 풀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머스크 ‘재택근무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
머스크 CEO는 2022년에도 소셜미디어 트위터(현 X) 인수 직후 직원들에게 보낸 첫 단체 메일에서 재택근무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당시 머스크 CEO는 “다가오는 어려운 시기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모든 직원이 사무실에 출근해 매주 최소 40시간 이상 근무하라”고 지시했다. 해당 사항은 메일이 발송된 시점부터 곧바로 적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해당 이메일에 ‘새로운 트위터의 일부’가 되고 싶은지 묻는 투표 링크를 첨부했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3개월 분 급여를 퇴직금으로 받고 퇴사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시장에서는 머스크 CEO의 결정을 예상했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가 과거 테슬라 직원들에게도 사무실 근무를 요구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같은 해 6월 테슬라 전 직원에게 보낸 ‘원격근무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제목의 메일을 통해 “일주일에 40시간은 테슬라 사무실로 출근하라”고 말했다. 당시 머스크 CEO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재택근무를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라고 정의하며 “(재택근무는) 집에서 일하면서 자동차를 만드는 다른 모든 사람을 공장으로 출근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일갈했다.
1만9천여 공공기관 일자리 줄인 MB정부와 닮은 꼴
국내에서도 정부 조직의 효율화를 시도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취임한 이명박 전 대통령 정부로, 이 전 대통령과 머스크 CEO는 기업인 출신 정치가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후 6차례에 걸쳐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을 수립하고, 민영화·통폐합 등 하드웨어적 구조조정은 물론 대졸 초임 인하, 기관장 보수 체계 개편, 과도한 복리후생 축소 등 소프트웨어 측면의 개혁작업을 병행했다.
그 결과 2년이 지난 시점에 통합 대상 36개 기관 중 주공, 토공 등 32개 기관이 14개로 통합됐으며, 정리금융공사와 노동교육원 등 5개 기관의 폐지 작업이 완료됐다. 민영화와 기능조정, 출자회사 정리 작업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진행됐다. 민영화 대상 24개 기관 중 5개 기관이 매각 또는 상장됐고, 나머지 19개 기관은 이후 시장 상황을 고려해 매각 절차를 밟았다. 또 공공기관 보수가 과도하다는 지적에 따라 기관장 및 감사의 기본 연봉을 하향 조정했고, 252개 공공기관의 대졸 초임은 평균 15% 낮췄다. 아울러 금융공기업의 기존직원 보수도 5% 이상 삭감했다.
이명박 정부의 이런 노력은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을 차단하고 자율·책임경영의 확산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았다. 다만 기관 통폐합 등 과정에서 인원 축소가 불가피해 공공기관 내부의 반발 또한 극심했다. 이 전 대통령이 집권한 5년 사이 일자리를 잃은 공공기관 직원은 1만9,000여 명에 달했다. 공공기관 경영 혁신을 위한 개혁 시도에 가시밭길이 예상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