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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정상들, ‘국방 예산 증액’ 선언 목표 달성 위한 ‘특단 조치’ 필요 고통 없이는 ‘자주국방’ 불가능
본 기사는 The Economy의 연구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유럽연합(EU) 주요 정상들이 2035년까지 GDP의 5%를 안보 및 국방 예산에 배정하겠다고 약속했다. 3.5%는 군비 증강에, 1.5%는 국방 인프라 및 혁신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지난 7월 헤이그에서 진행된 정치적 합의는 유럽이 더 이상 미국의 국방 지원에 의존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을 반영한다.

유럽연합, 2035년 국방 예산 ‘GDP의 5%’
하지만 약속을 정책에 반영하는 일은 정확한 계산을 필요로 한다. 5% 목표를 맞추려면 유럽은 연간 3,200억 유로(약 513조원)를 공적 자금으로 추가 조달해야 한다. 친환경 및 디지털 전환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5,100억 유로(약 817조원)로 증가한다. 유로존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이미 88%에 달했고, 총생산의 1/5 가까이가 사회 보장에 쓰이고 있다.
하지만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정치적 이유로 국방비 증액을 연기하는 것은 더 이상 합리화되기 어려워 보인다. 핵심 질문은 ‘예산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에서 ‘부작용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헤이그 합의는 유럽을 둘러싼 전략적 환경 변화를 보여준다. 미국이 유럽 안보의 수호자 역할을 포기하면서 나토(NATO) 동맹국들은 국방비 증액 의지를 표명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고 시장과 유권자들은 그들의 실행력을 주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실행 단계를 정하는 수밖에 없는데 세금으로 공적 자금을 마련하고, 비효율을 개선하며, 민간 자금을 끌어들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원칙과 투명성을 지켜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
부족액 연간 ‘170조 원’
왜 그런지는 숫자를 보면 알 수 있다. 올해부터 2031년까지 유럽이 전략 분야에 매년 투자해야 하는 비용은 1조 2,000억 유로(약 1,923조원)에 이르는데, 이중 절반이 공적 예산으로 해결돼야 한다. EU가 최근 유럽 안보 행동(Security Action for Europe, SAFE)을 통해 1,500억 유로(약 240조원)의 국방 대출을 가능하게 했지만 그럼에도 연간 1,060억 유로(약 170조원)가 부족하다.

주: 친환경, 디지털, 국방(좌측부터) / 민간 자금(청색), EU 자금(노랑), 공적 자금 부족액(주황), *2024년 EU GDP 대비 비중(%)
그런데 2029년이 되면 EU의 부채 한도 예외가 만료되고 국방비 지출 예외도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각국은 재정 건전화(fiscal consolidation)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차이를 좁히기 어렵다는 얘기다.

주: GDP 대비 부채 비율(좌측), 원 규정 준수(청색), NEC 이후 원 규정 준수(노랑), NEC 지속(주황) / 재정 건전화 필요 규모(기본 재정 수지, GDP 대비 비율)(우측), 원 규정 준수(청색), NEC 이후 원 규정 준수(노랑)
‘부가가치세 인상’ 필수
증세는 고통스럽고 정치적 반발을 부르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연간 950억 유로(약 152조원)를 추가로 조성해야 한다. 먼저 세율을 올리기 전에 탈세와 비효율로 새고 있는 890억 유로(약 143조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징수율을 2%P만 개선해도 연간 250~300억(약 40~48조원) 유로가 더 걷힌다.
또 유로존에 걸쳐 0.5%의 부가가치세 추가 부담금을 도입하되 사용처를 군사 목적으로 제한하면 연간 550~600억 유로(약 88~96조원)를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EU 탄소 배출권 경매 수익의 10%를 사이버 및 에너지 안보 등 국방 프로젝트에 배정하면 30~40억 유로(약 5~6조원)를 활용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소득세율이나 법인세율을 올리지 않고도 재원을 마련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저소득 가구에 대한 환급을 통해 역진세 효과를 방지할 수도 있다.
복지 지출 조정 및 저축 채권 발행
유럽의 막대한 복지 비용을 절감하자는 요구는 현실적이지 않다. 연간 3조 3,000억 유로(약 5,291조원)로 GDP의 19%를 차지하는 해당 예산은 유럽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이다. 하지만 재조정은 필요해 보인다.
먼저 화석연료 부문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삭감해 기후 및 안보 정책을 연계시키면서 예산을 확보하는 방법이 있다. 또 독일처럼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연기금은 지급액 인상률을 소폭이나마 조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편 학교 및 병원에 대한 디지털 인프라 확충은 시민과 시스템에 대한 이중 목적 투자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이들을 묶어 EU GDP의 0.2%만 우선순위를 조정해도 연간 400억 유로(약 64조원)가 조성돼 사회적 단합을 깨지 않고 목표에 근접할 수 있다.
17조 유로(약 2경7,259조원)에 이르는 유럽의 가구 및 기업 예금을 국방 자본으로 전환하는 것도 숙제다. 이를 위해 ‘유럽 안보 행동’ 대출과 연계되고 EU가 보증하는 국방 저축 채권(Defence Savings Bond)을 제안한다. 예금의 1%만 옮겨와도 1,700억 유로(약 273조원)를 확보할 수 있다. EU 투자 규정 개정과 유럽 투자 은행 및 유럽 투자 펀드의 국방 관련 대출이 확대된다면 기관 자본(Institutional capital, 연기금, 보험사, 기부금, 국부펀드 등)도 따라올 것이다.
자주국방 위해 ‘재원 마련해야’
가장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이다. 국방 산업 관련 명확한 정부 조달 일정과 수요 보증이 있어야 투자자가 움직인다. 이를 통해 탄약 확보와 에너지 자생력, 첨단 국방 산업을 위한 민간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부가가치세 증액이 역진세 성격을 띤다는 비판이 있지만 이는 저소득 가구 환급과 탈세에 대한 강제조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국방 예산 증액이 기후 및 디지털 예산을 깎아 먹을 것이라는 우려도 이중 목적 프로젝트 투자로 불식시킬 수 있다. GDP의 5%가 예산 낭비로 이어질 만큼 큰 규모인 것도 맞지만 비효율 및 중복 투자 방지로 막아내야 한다. 유럽의 근본적 가치를 훼손하면서 군비를 증강하는 것이 아닌, 지정학적 현실을 감당할 만큼의 안보 태세를 갖추는 것이 정확한 목적이다.
유럽의 국방비 지출은 2021년 2,180억 유로(약 350조원)에서 작년 3,260억 유로(약 523조원)로 증가했음에도 제안된 5% 목표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유럽 안보 행동’은 이미 신청 규모가 대출 가능액을 넘어섰고, 나토 회원국 다수의 국방 예산이 이미 GDP의 2%를 넘었다는 사실도 특단의 조치가 긴급히 필요함을 일깨운다.
국방 문제를 운에 맡길 수는 없다. 전략적이고 투명하며 신뢰성 있는 조치만이 시간과 유럽인들의 믿음을 얻는 방법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urope's Security Bill Has Come Due | The Econom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