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인공지능이 ‘직업의 종말’을 가져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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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영향 감원, ‘미미한 수준’ 신입사원 업무 대체가 ‘가장 큰 위험’ 고용 시장 영향 본격화 전 ‘준비해야’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Researh Memo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작년에 미국의 노동 생산성은 2.3% 증가해 상당한 개선을 보였다. 소매업 분야에서 4.6%의 높은 향상을 기록했고 도매업이 뒤를 따랐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의 급격한 확산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우려하는 ‘AI로 인한 직업의 종말’은 오지 않았다. 즉 2022년 챗GPT의 등장 이후 세계적인 실업 사태의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AI로 인한 직업의 종말, ‘아직’
물론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AI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이전 컴퓨터의 도입과 같은 패턴이지만 산업과 기업에 따라 각각 다르다. 당황하지 말고 차분히 준비할 일로 판단된다.
AI는 빠르게 도입되고 있지만 일부 분야에 한한다. 작년 유럽 평균을 보면 13.5%의 기업이 AI를 활용했는데, 정보통신 분야가 44%로 훨씬 높았고 북유럽의 해당 업종은 2/3를 넘었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보다 빠르고 브뤼셀과 비엔나의 혁신 허브가 다른 지역을 한참 앞선다.
분명히 실직하는 근로자들이 눈에 띔에도 국가 규모의 실업률에 큰 변화가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작년의 경우 AI와 직접 관련된 실직은 17,000명으로 당초 기업들이 밝힌 1백만 명의 인원 감축 계획에는 극히 일부에 그친다. 신입사원 모집 규모가 줄고 기술 개선을 통해 고용을 동결하는 사례가 늘고 있을 뿐이다.
지식 기반 산업 및 대기업 ‘먼저 영향’
따라서 고용 시장에 대한 AI의 영향은 한꺼번에 몰아치기보다 점진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지식 기반 산업 및 디지털 기반이 탄탄한 대기업이 먼저 영향을 받고, 중소기업은 전면적인 변화 이전 조심스러운 실험을 거치는 것으로 느껴진다.
한편 AI는 고용 시장을 흔들기보다 일부 근로자들의 생산성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는 초심자에 해당하는 직원들의 성과 향상에 도움이 된다. 서비스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AI로 인한 생산성은 평균 14% 향상됐고 신입사원급은 30%를 기록했다. 챗GPT를 활용한 글쓰기 업무는 속도가 40% 빨라지고 품질도 향상됐다. 그러니까 AI는 생산성을 높이는 한편 직원들의 수요를 없애는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하는 셈이다. 초심자들의 업무를 자동화하는 바로 그 기술이 신입 직원들의 생산성을 급속히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주: 노출 정도 중간, 노출 정도 낮음, 노출 정도 높음(위부터)
‘단순 반복 업무’ 줄고 ‘판단력과 의사소통’ 중요
그렇다면 학교는 더 적극적으로 AI를 교육에 통합하면서 사용법만이 아니라 비판적인 사고력을 길러 줄 필요가 있다.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컴퓨터 혁명도 단순 반복적인 업무를 대체하면서 판단력과 소통 능력을 요하는 역할을 늘린 바 있다. 생성형 AI도 속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는 40%, 선진국은 60%의 일자리가 AI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영향을 받는 것이 곧 대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챗봇은 요약하고 번역하고 초안을 만드는 일을 할 수 있지만, 환자를 위로하고 기계를 고치며 아이들을 지도하는 역할은 할 수 없다. 전체적인 일자리 감소보다는 급속한 자동화가 재교육에 필요한 시간을 허용하지 않아 직업 불평등을 심화하는 것이 더 큰 우려 사항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실업률에 집착하지 말고 산업 및 기업 규모별 AI 도입 양상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가장 큰 위험에 놓인 진입 단계 일자리 통계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장 먼저 보조금과 수습생 제도는 인간의 기술에 AI 훈련을 결합해 기업이 원하는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주: 2015~2025년(15~’25), 2022~2025년(22~’25)
‘직업의 종말’ 아닌 ‘성공적인 적응’으로
공공 기관들이라면 AI를 비용 절감의 차원에서만 보지 말고 작업 성과를 개선하고 근로자들의 피로를 줄이는 도구가 되고 있는지 평가해야 한다. 학교와 병원을 포함한 기관들도 AI 활용의 결과를 임상 실험과 같이 모범 사례가 확산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특히 교육 기관들은 AI가 무엇을 잘하는지, 어느 부분에서 부족한지, 어떻게 하면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는지를 포함한 ‘AI 이해력’을 가르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학생들은 AI 이용 과정에서의 지시문과 중단 단계 결과물, 최종 결과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 AI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력을 기르는 것이 관건이다. 교사들은 AI로 인한 여유 시간을 대면 지도에 활용하고, 단기 인턴 과정과 AI 지시문 수업(prompt design labs)을 통해 교실과 직업 현장을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AI의 영향 아래 있는 직업군에 대한 지원도 빠뜨리면 안 된다.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편집자, 성우 등에 대해서는 재교육 보조금과 저작권 보호, 성과물의 질적 저하를 막기 위한 대책 등이 제공돼야 한다.
AI가 본격적으로 고용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전인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로 보인다. 신입사원의 직업 경로를 재정의하고, AI를 학교 교육에 통합하며, AI 도입이 불평등 심화가 아닌 역할 강화로 이어지도록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지금 움직인다면 AI로 인한 직업의 종말은 안정적인 적응으로 바뀔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AI Labor Displacement and Productivity: Why the Jobs Apocalypse Isn't Here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