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세계 원유 수출 ‘사상 최고치’ 전망, 미국發 에너지 패권 전략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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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공급 확대 전 세계적 움직임
미국 대규모 생산·수출 확대→유가 영향
러시아 에너지 연대 차단 전략 가동

10월 세계 원유 수출량이 일평균 4,100만 배럴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를 새로 쓸 전망이다. 미국의 사상 최대 생산량이 글로벌 공급 확대를 주도하고, 사우디와 이라크 등 주요 산유국의 출하 증가가 여기에 힘을 보태면서다. 미국은 단순한 물가 방어를 넘어 러시아의 석유 수익을 겨냥해 공급 과잉 전략을 밀어붙이는 동시에 인도와 중국을 향한 외교·통상 압박으로 판로 자체를 줄이려 하고 있다. 동시에 자국 내 생산 능력을 키워 에너지 패권국 지위를 굳히려는 장기 전략 또한 병행하는 모양새다.
미국이 주도한 시장 변화
1일(이하 현지시각) 에너지 전문 매체 오일프라이스 보도에 따르면 이달 전 세계 원유 수출량은 일평균 4,100만 배럴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과 글로벌 에너지 컨설팅 업체 FGE 자료를 종합하면,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브라질·가이아나 등 주요 산유국들의 출하량 확대와 더불어 미국 원유 생산 증가가 맞물린 결과다. 특히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지난 6월 일평균 1,358만 배럴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내년 3월 1,434만 배럴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세계 원유 공급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우디의 9월 수출량도 일평균 642만 배럴로 18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이는 전월 대비 60만 배럴 이상 증가한 규모로, 전력 수요가 줄어든 계절적 요인과 맞물리며 수출 여력이 확대된 결과로 풀이된다. 이라크와 브라질 역시 각 12만 배럴씩 생산량을 확대했고, 가이아나도 2만9,000배럴을 늘리며 공급 확대 흐름에 동참했다. 반면 이란은 일평균 생산량이 전월 대비 10만 배럴 감소한 140만 배럴로 수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부 산유국의 감산에도 불구하고 전체 공급은 확대되면서 글로벌 해상 운송 시장도 활황을 띠었다. 대서양 분지의 공급 급증이 아시아행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운임을 급등시킨 것이다. 오일프라이스는 “미국 걸프 연안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VLCC 전세 요금이 하루 7만 달러(약 1억원), 중동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항로는 하루 10만 달러(약 1억4,000만원)에 달해 운송비 부담이 크게 뛰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단기적으로는 화물 시장 활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나, 10월 말~11월 초에는 아시아 시장 과포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도 함께 내놨다.
장기 유가 전망은 엇갈린다. 골드만삭스는 2026년 하루 190만 배럴의 초과 공급이 예상된다며 이 경우 원유 가격이 배럴당 50달러 수준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IA 역시 미국의 일평균 원유 생산량이 현재 1,341만 배럴에서 내년 1,328만 배럴로 감소하고, 브렌트유 가격도 배럴당 51달러 수준으로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스탠다드차타드 등 일부 기관은 견조한 에너지 수요와 미국을 비롯한 다수 주요국의 경기 부양책을 근거로 유가 반등을 점쳤다. 이처럼 원유 시장은 공급 확대에 따른 단기 활황과 장기 불확실성이 교차하는 국면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공급 과잉으로 가격 하락 → 러시아 수익 감소’ 구상
업계는 미국의 원유 수출이 단기간에 급증한 배경에 주목했다. 미국은 표면적으로 인플레이션 방어와 안정적 공급망 유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핵심 목표는 러시아 견제라는 게 업계 전반의 시각이다. 미국이 시장에 대규모 물량을 쏟아냄으로써 국제 유가를 떨어뜨리고, 이를 통해 러시아의 석유 수출 수익을 약화시키려는 전략적 포석을 깔았단 분석이다.
이는 미국의 수출선 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선박 추적업체 케플러(Kpler) 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지난 2월 한 달간 인도에 하루 평균 35만7,000배럴의 원유를 수출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22만1,000배럴)보다 60% 이상 늘어난 수준을 보였다. 인도 정유사들이 러시아산 원유 제재로 인해 대체 공급처를 찾으면서 미국산 원유를 적극 도입한 결과다. 인도 정부 역시 미국산 에너지 구매 규모가 지난해 150억 달러에서 가까운 시일 내 250억 달러 수준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산 원유의 수출 증가세는 한국 시장에서도 두드러졌다. 같은 달 한국으로의 수출은 하루 65만6,000배럴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이 미국산 원유에 10% 관세를 부과하면서 아시아 내 수송 경로가 한국으로 이동한 데 따른 변화로 읽힌다. 실제로 미국산 원유의, 대중국 수출은 일평균 7만6,000배럴까지 줄어들며 최근 5년 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흐름은 미국이 러시아뿐 아니라 주요 수입국의 원유 거래 구조에도 간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러시아는 이러한 제재 속에서도 수출 물량을 늘려가며 버티는 모양새다. 지난 7월 중순 러시아의 해상 원유 수출량은 하루 364만 배럴까지 치솟아 한 주 동안 33척의 유조선이 2,547만 배럴을 실어 나르기도 했다. 4주 평균 수출량도 하루 323만 배럴에 달해 올해 평균치를 웃돌았다. 러시아는 프리모르스크·우스트-루가·노보로시스크 항 등 주요 항구에서의 출하를 늘리면서 단기적으로 제재 효과를 상쇄했다. 다만 이러한 전략은 미국의 공급 과잉 전략이 지속될 경우 임시방편에 그친다는 관측 또한 제기되는 실정이다.

에너지 패권으로 러시아 압박 장기 전략 뒷받침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갈수록 다각도로 전개된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미국은 최근 러시아산 원유의 주요 수입국을 직접 겨냥해 수출 경로를 흔드는 압박에 나섰다. 아직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마치지 못한 인도가 대표적 예다. 미국은 지난 8월 인도에 기존 관세에 25%를 추가해 총 50%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며 러시아산 에너지 구매를 그 이유로 들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산 원유 비중이 3% 미만이었던 인도는 현재 하루 평균 175만 배럴, 전체 수입의 35%를 러시아에서 들여오고 있다. 미국은 이 같은 의존도를 제재로 제한하면서 러시아의 최대 시장을 직접 겨냥했다.
중국 역시 미국의 압박 대상이 됐다. 미국은 중국에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축소하라고 요구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최대 10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기준 러시아는 중국 전체 원유 수입의 약 20%를 차지했으며, 블라디보스토크 항을 통한 동방 루트까지 가동하며 수출 다변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미국은 플래그 변경·선박 추적 회피 등 기존 제재 우회 방식을 무력화하기 위해 중국을 직접 압박하는 강수를 택했다. 중국은 “에너지 안보는 타협 불가”라며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부 조정 가능성은 열어 둔 상태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자국 내 에너지 생산 능력을 확대해 기존 산유국들의 공급력을 장기적으로 대체하는 움직임도 병행하고 있다. EIA 집계에서 지난해 미국의 총 에너지 생산량은 103쿼드 BTU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퍼미언 분지에서 하루 630만 배럴까지 확대된 원유 생산량은 향후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미국이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할 기반이 되고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원유 생산·수출 확대는 자국 내 물가 방어 차원을 넘어 러시아의 국제적 에너지 연대를 근본적으로 약화시키기 위한 장기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