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HPSP 매각 소문 돌자 주가 10.32% 상승·시총 7위까지
"사실무근" 공시에 주가도 하락세, 시장선 "매각은 시간문제일 뿐"
지분 매각 현실화 시 매수자로 '한미반도체' 유력
한국판 ASML로 불리는 반도체 소부장(소재·장비·부품) 업체 HPSP가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시장의 기대가 한껏 달아올랐지만, HPSP는 지분 매각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공시했다. 이에 시장에선 섣부른 보도를 내놓은 언론에 볼멘소리를 내놓는 모양새다. 다만 일각에선 HPSP의 지분 매각이 그리 멀지 않은 이야기일 수 있다는 언급도 나온다. 반도체 호황으로 주가가 오른 지금이 차익 실현을 위한 적기기 때문이다.
HPSP 매각 소문에, 주가도 '상승 기류'
지난 16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근 크레센도에쿼티파트너스(크레센도PE)는 HPSP 매각 작업을 위해 글로벌 주요 IB를 대상으로 주관사 선정에 나섰다. HPSP는 반도체 전 공정에 필요한 열처리 공정(어닐링) 장비를 제조·공급하는 기업이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되면서 반도체 웨이퍼 표면에 계면 결함이 생기는데, HPSP는 이를 비활성화하는 어닐링 장비를 공급한다. 특히 HPSP는 세계 최초로 첨단공정용 고압수소 어닐링(Annealing) 장비를 개발해 현재까지 독점하고 있다.
HPSP의 고압수소 어닐링 장비는 반도체 회로의 미세화로 발생하는 계면 결함을 전기적으로 비활성화해 성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고압에서 가스 농도를 높여 저온공정을 구현한 점이 특징으로, 고압을 활용해 450도 이하 저온에서도 수소 농도를 100%까지 높였다. 특히 미세공정에서 소자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쓰는 하이케이(고유전율) 절연막은 고온 공정에서 누설전류가 발생할 위험이 높은데, HPSP 장비를 활용하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계면전하의 결함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수율(생산품 중 양품 비율)도 개선되는 셈이다. 경쟁사가 존재하지 않고 부가가치가 높은 미세공정에 투입된다는 장비 특성상 HPSP는 현재까지도 어닐링 장비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이로 인해 HPSP의 매출액은 지난 2019년 251억원에서 2023년 1,791억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영업이익 역시 2019년 99억원에서 지난해 952억원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공급이 수년간 이뤄진 만큼 경쟁사의 기술 개발 수준이 점차 높아지고 있어 예스티 등 HPSP의 '대항마' 격 기업이 속속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시장에선 여전히 HPSP가 독점적 지위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렇다 보니 HPSP가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에 시장의 관심도 유례없이 집중되는 모습을 보였다. HPSP의 매각 소식이 나온 16일 HPSP의 주가는 전날 대비 4,500원, 10.32% 오른 4만8,100원으로 올랐고, 시가총액은 4조원에 육박하며 코스닥 시총 순위도 셀트리온 제약을 제치고 7위에 자리하기도 했다.
매각 '사실무근'이라는 HPSP, 일각선 "시간문제" 의견도
그런데 HPSP가 지분 매각 소식에 대해 "관련 보도 내용은 사실무근임을 알린다"고 공시하면서 시장의 기대도 꺾여버렸다. 이후 HPSP 주가는 상승 폭이 급감해 강보합권으로 내려왔고, 시총 순위도 다시 8위로 떨어졌다. 이에 시장에선 성급한 보도를 내놓은 언론에 대한 비판 여론이 쏟아지는 모양새다. 바이오 기업 HLB가 간암 신약과 관련한 루머로 주가 널뛰기를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비슷한 사태가 발생하다 보니 유독 힐난의 목소리가 컸다.
다만 일각에선 HPSP의 지분 매각은 시간문제일 것이라는 언급도 나온다. 사모펀드 지분이 40%가량 되기 때문이다. HPSP 지분을 매각할 것으로 알려졌던 크레센도PE는 지난 2017년 '프레스토 제6호 사모투자합자회사(6호 펀드)'를 통해 100억원대 자금을 들여 HPSP를 인수한 바 있다.
당시 6호 펀드는 HPSP 지분 51%를 확보했는데, 2022년 7월 HPSP가 코스닥에 상장하고 무상증자 등이 이뤄지면서 지분율이 39%로 하락했다. 사모펀드의 최종 목표가 엑시트(투자금회수)임을 고려하면 충분히 매각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반도체 호황으로 주가가 상승 가도를 달리는 지금이 차익을 실현할 적기라는 점도 매각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2대 주주 한미반도체, 매수자로 나설 수도
HPSP 지분 매각이 현실화할 경우 매수자는 한미반도체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 한미반도체는 지난 2017년 HPSP에 전략적투자자(SI)로 참여한 바 있으며, 지난 2021년엔 HPSP의 지분 12.5%(5만1,777주)를 375억원에 매입했다. 곽동신 한미반도체 부회장도 12.4%의 HPSP 지분을 별도로 보유하고 있다.
이들 주식의 평가액은 각각 약 2,000억원, 약 2,565억원인데, 이를 단순 합산하면 약 4,500억원가량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 된다. 현 HPSP의 2대 주주인 한미반도체 입장에서 HPSP에 더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이미 투자금 전액을 회수한 상태이니만큼 추가 투자에 부담이 적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곽 부회장은 지난해 총 25차례에 걸쳐 HPSP 주식을 장내매도했는데, 이렇게 현금화한 금액은 777억6,480만원에 달한다. 차익 실현을 통해 곽 부회장 본인과 한미반도체의 투자금 전액을 회수한 셈이지만, 그럼에도 곽 부회장이 보유한 HPSP 주식은 433만2,371주에 달한다. 사모펀드 지분을 사들일 수 있다는 풍문이 시장에서 돌고 도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