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미국 달러와 고등교육의 기반은 ‘신뢰’
입력
수정
미국 대학, 환율 및 관세 조치 직접 영향 불확실성 커져 ‘유학생 유치’ 불투명 교육도 ‘수출 서비스 산업’으로 취급해야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올해 미국 교육계를 흔든 숫자는 등록금도 시험 점수도 아닌 환율이었다. 미국 달러가 스위스 프랑 대비 최근 10년간 최저로 내려가는가 하면 올 상반기에는 변동 환율제 도입 이후 가장 낮은 상반기 통화 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로 인한 미국 대학들의 영향은 실제적이고 직접적이다.

상반기 미국 달러 약세 ‘역대급’
그냥 보면 약(弱)달러는 대학교에 유리해 보인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해외 유학생들이 감당해야 할 등록금이 싸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학생들이 미국 경제에 이바지한 규모가 작년에 430억 달러(약 60조원)에 이르고 그들 덕에 380,000개의 일자리가 유지될 수 있었다. 작년 한 해 유학생 수가 110만 명을 넘은 것도 기록이다. 하지만 관세 조치와 들쭉날쭉한 무역 정책, 지정학적 갈등이 모든 장점을 날려버릴 수 있다.

주: VIX 변동성 지수(주황, 좌측 Y축), 달러 지수(녹색, 우측 Y축), 미국 관세 조치 발표일(Liberation Day), *VIX 변동성 지수: S&P 500 옵션의 변동성을 측정하는 시장 지수
관세 및 무역 정책, 미국 대학에 ‘직격탄’
가장 큰 위험은 연구 분야에서 눈에 띈다. 미국 대학들이 현미경에서 질량 분석기까지 대부분의 과학 장비를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첨단 장비에 부과되는 관세가 구매자에게 그대로 전가되는 경우가 많아, 10~15%의 관세 인상이 주문 당 수만 달러의 비용 인상으로 귀결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대학으로서는 신규 교수 임용을 미루고 연구실 사용료를 올리는 것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주: 달러 지수(녹색, 좌측 Y축), 채권 수익률 차이(갈색, 우측 Y축)
미국 정부의 무역 정책도 불확실성을 더한다. 올해에만 전 세계 대상 15~20%의 관세 인상을 시행한 후 의약품과 화물차, 가구 등에 신규 관세를 매겼다. 미국 유학을 고민하는 해외 가구들로서는 변동성 자체가 위험일 수밖에 없다. 달러 가치 하락으로 등록금이 낮아졌지만 불확실성 때문에 장기적인 계획이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 유학의 어려움에 대한 중국 정부의 경고도 중국인들에게 미국 대학에 대한 매력도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하다.
대학도 ‘환위험 회피’ 필요
그나마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는 것은 대학들에 숨 쉴 구멍을 만들어 주고 있다. 배럴당 70달러(약 10만원) 근처까지 내려간 원유 가격 덕분에 기숙형 대학들은 수백만 달러의 공과금을 아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5천만 달러(약 700억원) 규모의 연구 기기에 부과된 관세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원유 가격 하락은 난방비는 아낄 수 있어도 미국 정책에 대한 신뢰를 되살리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대학과 교육 당국은 환율과 관세를 남의 일로 볼 것이 아니라 ‘기회’와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취급할 필요가 있다. 변동성으로부터 학생과 연구개발을 보호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든다면 해외 유학생이 입학 확정 시점의 환율로 입학금을 내게 하는 ‘환율 고정 제도’(currency lock)를 생각할 수 있다. 이는 기부금(endowments) 운용에서도 장학금 재원을 보호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미국 정부의 이민 정책도 대학에 영향을 주는 직접적 요인으로 남아 있다. 해외의 교육 수요가 넘치는 상황에서 비자 수속에 걸리는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 직업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일이다. 교육을 항공기나 반도체와 같은 전략적 수출 산업으로 생각한다면, 환율 변동에 상관없이 해외 유학생을 일정하게 유치할 방안들이 더 많이 떠오를 것이다.
미국 의회는 연구 분야 지원을 위해 미국 내 제품으로 대체가 불가한 장비 및 기구들에 대한 관세 면제 조치를 고민해야 한다. 특정 제품들에만 명확하게 예외 조치를 부여한다면 관세 조치 전반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대학의 연구를 보호할 수 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보조금 한도를 장비 가격 인상과 연동해 실질 가치 하락을 보전해 주는 것도 이로울 것이다.
미국 고등교육은 강력한 ‘수출 서비스 산업’
올해 미국 달러의 하락은 시장 불안 요소 이상의 역할을 했다. 안전자산으로서 달러의 가치는 물론 미국의 국가적 신뢰성에까지 의심을 드리운 것이다. 미국이 자랑하는 강력한 수출 서비스 산업인 교육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미국이 전통적으로 전 세계의 인정을 받아온 분야를 꼽는다면 금융과 연구개발, 고등교육일 것이다. 하지만 해당 분야의 강점은 규칙과 신뢰성을 바탕으로 한다. 예측 불가능한 관세와 정책 변화가 이어진다면 기초는 허물어지고, 미국은 해외 유학생들은 물론, 그들로 인한 소프트 파워(soft power)상의 혜택까지 잃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약(弱)달러는 단기적으로 미국 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일관된 정책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는 비용이 혜택을 앞지를 것이다. 미국 대학은 학생 유치 전략을 다듬고, 환율을 감안한 예산을 수립하며, 연구 분야에 한해 관세 면제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 정책 당국도 이민 및 무역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 미국 교육이 특유의 강점과 매력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교육과 달러 가치는 모두 신뢰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학생이 미국 대학을 선택하거나 투자자가 달러를 고르는 이유는 모두 미국 자체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 신뢰를 잃는 일만은 다시 없어야 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ducation and Dollar Dominance: What a Weaker USD Means for Universities and Students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