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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테크] 유럽 생산성 정체, 투자 규모보다 활용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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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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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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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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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와 조직자본의 불균형이 만든 유럽의 생산성 격차
투자 규모보다 기술·관리·의사결정의 조합이 생산성 좌우
제도 개선과 디지털 역량 강화가 격차 해소의 핵심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럽의 생산성 격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이유는 ‘무형자본’의 불균형에 있다. 특히 기술 활용을 결정짓는 소프트웨어와 기업 운영의 질을 좌우하는 조직자본의 조화가 국가별로 크게 다르다는 점이 드러났다.

2023년 기준 프랑스는 국내총생산(GDP)의 2.4%를 소프트웨어에 투자했지만, 독일은 0.7%에 그쳤다. 반대로 독일의 조직자본은 프랑스의 두 배 이상으로 평가됐다. 두 나라의 산업 구조와 경제 규모가 유사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차이는 단순한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자본은 기업 내부의 지식·절차·관리 역량 등 생산성을 높이는 무형의 자산이다. 소프트웨어가 설비를 움직이는 엔진이라면, 조직자본은 그 엔진을 최대 성능으로 운용하는 기술에 가깝다. 두 자산이 균형을 이뤄야 생산성 향상이 가능하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성장의 속도는 제한된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핵심을 투자 규모가 아니라 운용의 방식에서 찾는다. 소프트웨어 투자가 성과로 이어지려면 숙련된 인력과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가 필수다. 유럽이 근로 시간 단축과 건강권 보호라는 사회적 기반을 유지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려면, 무형자본의 구조를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

사진=ChatGPT

무형자산 인식의 차이와 성장의 편차

프랑스와 독일의 연구는 무형자산을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성장률 평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두 나라의 경제 규모는 비슷하지만, 통계상 소프트웨어와 조직자본의 비중은 큰 차이를 보인다. 프랑스는 소프트웨어 투자 비율이 독일보다 세 배 높지만, 독일은 조직자본을 더 크게 평가한다.

1995–2021년 독일 vs 프랑스: 부가가치 대비 무형자본 투자 비중(단위: %)
주: 무형자본 유형-소프트웨어, 연구개발, 기타 지식재산권 제품, 조직자본, 브랜드, 디자인, 직무훈련, 총합계(X축), 무형자본 투자 비중(Y축)/독일(진한 회색), 프랑스(연한 회색)

조직자본은 관측이 어려워 주로 특정 직군의 임금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이 방식은 관리 부문을 과대평가하고, 실제 생산성을 높이는 소프트웨어의 기여도를 과소평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문제는 조직자본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내부 개발 형태를 포함한 소프트웨어 자산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데 있다. 소프트웨어 투자가 실제보다 낮게 평가되면 생산성 구조가 왜곡되고, 이는 성장률뿐 아니라 정책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확한 측정은 경제정책의 신뢰를 유지하는 전제다.

2019년 독일 vs 프랑스: 기업 매출 대비 무형자본 투자 비중(단위: %)
주: 무형자본 유형-소프트웨어, 연구개발, 조직자본, 브랜드, 디자인, 직무훈련, 총합계(X축), 무형자본 투자 비중(Y축)/독일(진한 회색), 프랑스(연한 회색)

유럽이 놓친 무형자본의 연결 구조

유럽이 미국보다 뒤처지는 이유로는 흔히 ‘무형자산 투자 부족’이 꼽힌다. 소프트웨어, 데이터, 기술 역량 같은 무형의 기반이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결정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생산성의 격차를 가르는 요인은 투자 규모가 아니라, 이러한 자산이 관리 체계와 기술, 시간 운영 방식 속에서 얼마나 유기적으로 작동하느냐에 있다.

2021년 미국의 연구개발 투자는 EU보다 77% 많았고,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정보통신기술(ICT) 장비 투자에서도 미국이 크게 앞섰다. 미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무형자산 투자 비율은 약 23%로, 유로존 핵심국의 17%보다 높게 나타났다.

문제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확산의 속도다. 미국은 무형자산이 시장 전반으로 빠르게 전파되는 구조로 되어 있지만, 유럽은 제도적 절차와 느린 의사결정이 투자의 효과를 지연시킨다. 유럽이 생산성을 회복하려면 예산 확대보다 투자 효율을 높이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노동 모델을 바꿀 필요는 없지만, 소프트웨어가 도입·활용·개선의 순환을 빠르게 돌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한다.

생산성을 가르는 요인, 투자보다 활용

유럽의 무형자산은 늘고 있지만, 실제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낮다. 성장 요인 분석 결과, 유럽에서는 무형자산 증가분의 약 20%만이 총요소생산성(TFP)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기준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의 부가가치 기여도는 미국이 유로존을 크게 앞섰다. 또한 미국은 민간 고정 투자 중 지식재산권 제품이 31%, GDP의 5.5%를 차지하며, 그중 상당 부분이 자체 개발형 소프트웨어였다. 이 구조는 외부 구매에 그치지 않고, 관리 체계 개선과 인력 재교육을 통해 내재적 효율을 높였다.

결국 생산성을 결정하는 것은 투자액이 아니라 활용의 질이다. 소프트웨어가 시간을 단축하고, 오류를 줄이며, 서비스를 신속히 제공할 때 비로소 생산성 향상이 실현된다. 유럽이 따라잡아야 할 것은 투자 규모가 아니라, 투자를 성과로 전환하는 속도다.

노동문화와 생산성의 제도적 차이

같은 시스템이라도 의사결정 구조와 시간 관리 방식이 다르면 결과는 달라진다. 유럽의 근로 시간지침은 주당 48시간 이하 근무와 최소 4주의 유급휴가를 보장하지만, 미국에는 연방 차원의 유급휴가 법이 없다. 이런 제도적 차이는 업무 응답 속도, 부서 간 협업, 디지털 프로젝트의 진행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

근로 시간을 늘리는 것이 해법은 아니다. 근로 시간과 산출량의 상관관계는 불확실하며, 핵심은 ‘시간당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다. 이를 위해 의사결정 단계를 단순화하고, 행정 절차를 줄이며, 관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세계경영조사(WMS)는 미국·영국·스웨덴·캐나다를 관리 수준이 높은 국가로, 독일을 그다음으로 평가했다. 관리 체계가 잘 갖춰진 조직일수록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고 디지털 도구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결국 생산성을 좌우하는 것은 근로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관리·기술·소프트웨어가 얼마나 긴밀히 작동하느냐다. 같은 한 시간이라도 이 세 요소가 조화를 이룰 때 그 결과는 달라진다.

교육과 제도의 역할

유럽이 생산성 격차를 좁히기 위해 가장 먼저 집중해야 할 분야는 교육이다. 학교와 정부는 기술·데이터·관리 역량을 길러내는 핵심 기관이자,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실제 성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다. 2023년 기준 EU 시민 중 기본적인 디지털 기술을 갖춘 사람은 56%에 그친다. 공공서비스와 중소기업의 효율을 높이려면 성인 대상의 문제해결 중심 디지털 교육이 확대돼야 한다. 이 역량이 높은 나라일수록 디지털 도구 활용도와 조직 생산성도 함께 높게 나타난다.

학교와 공공기관의 관리 역량 강화도 필요하다. 교장은 목표 설정과 데이터 활용, 팀 운영 능력을 갖춘 전문 인력으로 양성해야 하며, 공공기관에서도 IT·조달·데이터 관리 책임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이런 구조가 갖춰지면 시범 사업이 빠르게 확산되고 기술이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조달 체계 역시 성과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 시스템 가동률과 행정 시간 단축을 지표로 삼는 계약 구조는 소프트웨어를 단순히 ‘도입’에서 ‘운영과 개선’의 단계로 발전시킨다.

근로 시간의 활용 방식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문서 공유, 버전 관리, 의사결정 기록 등 협업 절차를 표준화하면 행정과 연구의 지연을 줄일 수 있다. 이런 방식은 사람 중심의 가치와 충돌하지 않으며, 오히려 효율을 높인다.

생산성을 결정하는 것은 활용의 속도

프랑스와 독일의 투자 구조는 다르지만, 논점은 단순한 규모의 차이가 아니다. 소프트웨어와 생산성은 기술·관리·의사결정이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느냐에 따라 함께 높아진다. 유럽의 복잡한 절차와 느린 행정이 투자의 효과를 늦추고 있다.

해법은 명확하다. 측정 가능한 소프트웨어에 집중 투자하고, 관리 역량을 체계적으로 강화하며, 기초 디지털 기술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켜야 한다. 또한 근로 시간을 늘리지 않고도 보호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업무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실현된다면 유럽은 사람 중심의 가치를 지키면서 경제적 기반을 강화할 수 있다. 생산성의 격차는 근로 시간이 아니라 시간 활용의 효율성에서 줄어들 것이며, 그 성과는 교육기관과 연구 현장, 산업 전반에서 확인될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urope’s Missed Multiplier: how software investment and productivity rise together, and why work culture still matter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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