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아시아태평양의 경제 안보와 교육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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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내 진영 논리’ 갈수록 심화 경제 안보와 교육 개방성 ‘동시 유지’ ‘지정학적 상황’ 반영한 교육 정책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시아태평양의 경제 안보는 지역의 교육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됐다. 비자 문제와 연구실은 물론 학생들의 진로까지 관련된다. 각국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안보 영역에서의 이해를 보호하는 가운데, 교육 부분의 개방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경제 성장을 도모하면서 필요한 부문에 한해 엄격한 안보 기준을 적용하는 방식을 ‘제3의 길’(third path)이라고 부른다.

아시아태평양, 성장과 안보 ‘동시에’
아시아 태평양의 경제 안보 질서는 2023년 일본이 미국, 네덜란드를 따라 반도체 생산 장비 수출 규제에 동참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제 일본의 기업과 대학은 글로벌 조달 및 협력, 인재 육성 등의 영역에서 안보를 우선순위에 넣어 판단하고 있다.
다자간 협력도 경제 성장과 국방의 영역을 허물고 있다. 작년 4월 미국과 일본, 필리핀은 루손 경제 회랑(Luzon Economic Corridor)을 통해 항구와 철도 시스템, 디지털 네트워크는 물론 교육 훈련 프로그램까지 해양 및 전쟁 억지 전략에 연결한 바 있다. 미국과 필리핀 간 방위 협력 강화 협정(Enhanced Defense Cooperation Agreement)도 필리핀 내 기지에 대한 미국 측의 접근 권한을 확대해 안보 협정과 경제, 교육 현안이 밀접하게 엮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자본 흐름이든 교육 프로그램이든 국방 문제를 떠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 됐다.
심화하는 ‘파편화’
중국도 이에 상응한 접근으로 대처하고 있다. 2023년 10월에 도입한 특정 광물에 대한 수출 허가제는 배터리 공급망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고, 일대일로(Belt and Road)를 통한 투자금은 작년 에너지와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1,218억 달러(약 172조원)에 달해 중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의 투자 및 교육 우선순위를 바꾸고 있다. 대학들은 전반적인 경제적, 산업적 영향을 고려해 수업 시간표를 짜고 있다.
아시아태평양의 경제 안보는 ‘파편화’(fragmented)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일본과 대만, 필리핀은 기술과 국방 분야에서 미국과의 연결성을 강화했다.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칩스법(CHIPS Act)이 지원하는 66억 달러(약 9조원)로 건설한 신규 제조 시설을 통해 연구개발 및 수습생 제도, 공급망 관련 협력 범위를 확대했다. 인공지능(AI) 하드웨어 및 재료 과학, 첨단 제조 분야 기술 수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과 베트남은 보다 신중한 접근을 취하는 중이다. 한국은 2023년 무역 다각화를 통한 리스크 축소를 위해 중국에 대한 수출 비중을 20% 아래로 줄이는 한편 미국과의 무역 확대에 나섰다. 한편 베트남은 미국과의 ‘포괄적 전략 파트너십’을 통해 반도체 생태계 조성과 인력 육성에 힘쓰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에너지, 광물, 물류 등의 영역에서 중국과 긴밀히 연결돼 있고, 북한은 중국, 러시아 편에 서 있다. 네트워크를 해치지 않으면서 리스크 경감에 집중하는 ‘제3의 길’이 필연적인 이유다.

주: 미국(상단), 중국(하단)
‘교육 개방성’ 유지도 관건
교육은 아시아태평양 경제 질서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다. 혁신과 투자를 통한 기술 인력 양성을 통해 장기간 유지될 기준을 정립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지정학적 긴장 고조에도 유학생 숫자는 높게 유지되고 있다. 올해 7월 호주에서 공부하는 유학생 수는 925,905명을 기록했고, 일본은 작년 5월 336,708명의 유학생을 유치해 전년 대비 21%의 증가율을 보였다.

주: 2023년(좌측), 2024년 5월 1일(우측)
하지만 신규로 도입된 수출 규제는 대학의 연구개발에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일본과 네덜란드의 장비 규제와 중국의 광물 수출 제한이 반도체와 배터리 관련 교육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친다. 협력이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관리와 규제 준수가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명확한 규칙이 정립되지 않으면 기업들이 훈련 프로그램을 기피해 지역 인적 자원 개발을 약화할 수 있다.
‘리스크 세분화’로 관리해야
‘제3의 길’을 통해 지식 네트워크에 대한 개방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핵심 분야 안보를 확보하려면 리스크 세분화가 필수적이다. 민군 겸용(dual-use) 기술 및 첨단 소재는 고위험 분야로 분류해 엄격한 관리 감독을 적용하지만 저위험 분야는 인재 육성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적정한 협력 구조를 고민한다면 ‘루손 경제 회랑’을 참고하는 것도 좋다. 데이터 보안과 수출 규제 준수, 연구 분야 협업 등에 관한 기준 조항을 정하면 승인 과정을 단축할 수 있고, 비자 발급 및 취업, 교육 투자 등은 제조업, 에너지, 의료 기술 등 수요가 높은 분야와 연계시켜야 한다.
자금 지원도 변화한 지정학적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 미국과 TSMC 간 반도체 협력이 제조업과 교육 훈련, 공급망을 연결했다면, 베트남은 인재 개발과 자본 투자가 같은 목적을 향하는 대표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공동 투자를 통한 장학금 및 산업 연수생 비자, 공동 과정의 확대는 현장을 연계해 기술 수준을 높이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이제 향후 5년간의 의사결정이 아시아태평양의 인재 개발 및 혁신에 영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Third Path in Asia-Pacific Security Economics: Keep Classrooms Open while States Harden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