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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미국 중앙은행이 지방은행들 대출 규제를 강화하자 사채업자들이 대출 시장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17일(현지 시간) 미국 기업금융 전문 분석 기관 피치북의 보도에 따르면 부동산, 주택, 자동차, 소상공인 등에 대한 지방은행들의 대출에 미국 중앙은행의 규제가 심해지면서 대출액이 빠르게 줄고 있다. 지난 3월 말에 발발한 SVB 파산과 연이어 터진 시그니쳐 은행(Signature Bank),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First Republic Bank) 등의 파산 탓에 미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가 대출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지방은행들이 발 빼는 대출처에 진입 중인 사채업자들
이에 지방은행들이 발을 빼면서 사채업자들이 대출 시장에 침투하고 있다. 개인 대출 특화 서비스를 해 왔던 마라톤 자산 운용(Marathon Asset Management)이 대표적인 예다. 마라톤 자산 운용의 에드 콩(Ed Cong) 파트너는 "SVB, 시그니쳐 은행,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 파산 이후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은 상황"이라며 "은행들이 그나마 제값을 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자산을 먼저 매각할 확률이 높은 만큼, 적당한 가격에 매수하는 것이 최근 투자 방향"이라고 밝혔다.
콩 파트너는 지방은행들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대출 포트폴리오를 매각하고 있는 중이며, 핀테크 업체들의 경우도 과거 지방은행들이 받아줬던 대출 상품들의 구매처를 찾다가 사채업자들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 연준이 은행들의 자본 요건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지방은행들이 더 적극적으로 대출 포트폴리오들을 매물로 내놓을 것으로 예상했다. 과거에는 직접 대출 방식으로 자금을 운용했던 사체업자들의 자금이 시장 상황이 바뀌면서 은행들이 갖고 있는 자산 담보 대출(Asset-Backed Lending, ABL) 구매에 쓰이는 방식으로 시장 구조가 바뀌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은행에서 대출을 확보하지 못한 개인, 기업 등이 사채시장을 찾아 사채업자들과 직접 거래를 했던 것이 과거 통례였으나, ABL을 사채업자들이 인수할 수 있게 되면서 시장 상황이 달라졌다. ABL은 부동산, 장비, 매출채권, 지적재산권 등의 다양한 자산에 대해 발행될 수 있는 만큼, 사채업자들의 자산 운용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지난 3월 미국 시장조사기관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Allied Market Research)는 2021년 5,615억 달러(약 718조7,200억원) 규모의 ABL 시장이 2031년에는 1조7천억 달러(약 2,176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방은행들, 위험 부담에 ABL 자산 매각 원해
미국 지방은행들은 미 연준의 규제와 더불어 ABL 자산의 위험 부담이 커지는 것에 부담을 갖는 모습이다. 금리 인상에 따라 채무자 파산이 이어지면서 유동성 확보와 준비금 마련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것이다. 심지어 핵심 자산을 매각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LA 지역의 대형 지방은행 중 하나인 퍼시픽 웨스턴 은행(Pacific Western Bank)도 올해 들어 35억 달러(약 4조4,800억원)에 달하는 ABL을 사채업체인 아레스 운용(Ares Management)에 매각했고, 26억 달러(약 3조3,288억원) 상당의 건설 중인 자산 대출을 케네디-윌슨 홀딩스(Kennedy-Wilson Holdings)에 넘겼다.
규제 당국은 은행 시스템 내에 확산되는 위험 자산을 덜어내기 위해 소규모 지방은행들의 자본 요건을 더 강화할 방침이다. 관계자들은 규제 당국의 압박으로 지방은행들이 더더욱 ABL을 매각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방은행들의 수익성도 악화되는 상황이다. 스테이트 스트리트(State Street)는 올 2분기 들어 지난해 2분기 당기순이익이 10%나 감소했다. 금리 상승에 따라 고액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상황인 데다 예금자들이 더 고액 이자를 제공하는 금융기관으로 예금을 돌렸기 때문이다. 3분기에는 12%에서 최대 18%까지 순이익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콩 파트너는 지방은행들이 수익성 악화까지 겹쳐 더 ABL을 시장에 내놓을 것으로 내다봤다.
핀테크 기업들, LP들도 사채시장에 발 들여
지방은행들이 위험 자산을 털어내면서 핀테크 기업들의 ABL도 사채시장으로 넘어가게 됐다. 대출자와 지방은행들을 연계하는 서비스 업체인 업스타트(Upstart)도 개인 대출 및 자동차 대출, 소상공인 대출에 주력해 왔으나, ABL을 지방은행들이 인수하지 않으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자율 상승 및 코로나 지원금 감소 탓에 개인 대출 수요가 줄었던 것이 주원인이다. ABL들의 안전성이 추락하면서 구매자를 찾기 힘들어졌고, 올 1분기에는 1억2,900만 달러(약 1,652억원)의 손실을 봤다. 지난해 4분기 5,530만 달러 손실의 2배가 넘는 수치다.
업스타트는 계속된 손실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 5월에 사채 전문 금융기관인 캐슬레이크(Castlelake)와 엘투라 캐피털 운용(Eltura Captial Management)에 개인 대출 40억 달러(약 5조1,216억원)를 매각했다.
콩 파트너는 ABL 시장 팽창 덕분에 LP(펀드 투자자)들도 사채시장에까지 포트폴리오 다양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 펀드 위주로만 투자를 진행했으나, 최근 들어 ABL 시장이 크게 확대되면서 펀드보다 수익성이 높은 금융 상품에 대한 수요가 생긴 것이다.
마라톤 자산 운용은 이달 들어 17억 달러(약 2조1,770억원) 규모의 ABL 인수 펀드를 설립했다. 출자한 LP 중에는 미네소타주 투자청(Minnesota State Board of Investment, MSBI)도 있을 정도로 ABL 투자에 대한 LP들의 반응이 뜨거웠다는 평이다. 주 정부 자금을 운용하는 MSBI는 이번 ABL 펀드에 1억 달러(약 1,280억원)의 자금을 출자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