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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혼잡 완화, 대기오염 개선을 위해 혼잡통행료 도입 통행료로 10억 달러 재원 확보해 대중교통 시스템 정비 세계에서 교통 체증 가장 심각한 맨해튼 남쪽 지역 적용
뉴욕시가 이르면 내년 봄부터 핵심 상업지구인 맨해튼 중심가에 진입하는 차량에 혼잡통행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는 도심의 교통량을 줄여 대기질을 개선하고 교통 혼잡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뉴욕시는 통행료 징수를 통해 연간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의 재원을 확보할 것으로 보고, 해당 재원을 대중교통 시스템 확장·보수 등에 사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뉴욕 MTA 이사회 최종 승인, 美 최초 혼잡통행료 도입
지난 6일(현지시간) 뉴욕시와 인근 지역의 교통사업을 총괄하는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etropolitan Transportation Authority, MAT)는 이사회를 열어 혼잡통행료의 징수방법, 할인·면제 대상 등을 포함한 세부 실행안을 심의·의결했다. 앞서 지난 6월 27일 미국 연방도로청(FHA)은 뉴욕시가 제출한 혼잡통행료 징수 계획을 승인한 바 있다. 맨해튼의 일부 도로는 건설·유지보수를 위해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자금을 지원받기 때문에 두 곳에서 모두 승인을 받아야 한다. 뉴욕시는 도시 전역에 혼잡통행료 제도에 대한 안내 광고를 게시하고 4개월간의 의견수렴 기간을 가지기로 했다. 혼잡통행료 제도는 의견수렴 절차를 마치고 이르면 5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뉴욕시의 혼잡통행료는 미 전역에서 최초로 시행되는 제도로 징수 대상 지역은 맨해튼 중심부의 센트럴파크 남쪽으로 타임스퀘어, 월스트리트, 소호 등 주요 지역과 60번가 이하의 맨해튼 지역을 포함한다. 징수시간은 주중 오전 5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다. 뉴욕시는 해당 시간에 맨해튼 중심부로 진입하는 길목마다 톨게이트를 설치하고 60번가를 가로지르는 모든 교량, 터널, 도로에 차량번호와 하이패스 트랜스폰더(E-ZPass transponders)를 스캔할 수 있는 전자감지시스템과 카메라, 조명, 안테나를 달아 진입 시 차량의 크기와 탑승인원 등에 따라 요금을 차등 부과하기로 했다.
MTA에 따르면 도시 중심지에 진입하는 차량은 하루에 1번 15달러(약 1만9,300원)의 표준요금 지불해야 한다. 상업용 트럭은 크기에 따라 24달러(약 3만원) 또는 36달러(약 4만6,000원), 오토바이는 7.5달러(약 9,600원)의 통행료가 부과되며 택시는 요금에 1.25달러(약 1600원), 승차공유 차량은 2.50달러(약 3,200원)가 부과된다. 단, 대중교통 버스와 경찰·구급차 등 공공사업용 차량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2007년 블룸버그 시장 주도로 도입을 추진했지만 무산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교통 체증이 심한 지역으로 이전에도 자동차 운행을 제한하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뉴욕시에서 혼잡통행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시기는 지난 2007년이다. 당시 뉴욕시의회는 맨해튼 지역에 진입하는 차량에 8달러의 통행료를 부과하는 안을 통과시켰지만 이듬해 뉴욕주의회에서는 뉴욕 외곽 자치구와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반대로 상정조차 하지 못하고 무산됐다. 혼잡통행료 도입을 주도해 온 마이클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 당시 뉴욕시장은 그해 4월 22일 지구의 날(Earth Day)을 맞아 교통체계 개선 등 127개의 '뉴욕시 환경개선 프로젝트'를 발표해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고자 했지만 이 또한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2019년 뉴욕시의 100년 된 지하철 시스템이 5억1,000만 달러(약 6,620억원)의 적자에 직면하면서 대중교통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뉴욕시가 혼잡통행료를 부과해 잦은 고장과 지연으로 악명 높은 뉴욕 지하철을 보수하는 예산으로 확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혼잡통행료 징수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2019년 2월 앤드류 쿠오모(Andrew Cuomo) 당시 뉴욕 주지사와 빌 드블라지오(Bill de Blasio) 당시 뉴욕시장은 노후된 신호등과 전동차 등 교통시스템을 정비하기 위해 뉴욕의 중심부인 맨해튼 남쪽 지역으로 진입하는 운전자에게 통행료를 부과하는 데 합의했다. 혼잡통행료 제도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좌파 성향의 젊은 민주당 의원들의 지지를 얻었고, 뉴욕주의회는 한 달 만에 혼잡통행료 예산을 승인했다.
뉴욕시 교통국(Department Of Transportation, DOT)에 따르면 혼잡통행료가 부과되는 맨해튼 중심부는 일 평균 100만 대의 차량이 진입하고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 주말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에는 차량 평균 속도도 하락한다. 실제 지난 10년간 버스 속도가 28% 느려지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큰 불편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DOT는 이번 조치를 통해 맨해튼 중심부에 진입하는 차량의 수가 17%가량 감소함으로써 평균 시속 7마일에 불과한 맨해튼의 교통 흐름과 연평균 117시간의 교통체증 시간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싱가포르·런던·스톡홀름, 도입 후 교통 혼잡 개선 효과
혼잡통행료 도입은 미국이 처음은 아니다. ‘교통지옥’으로 유명한 영국 런던, 스웨덴 스톡홀름, 싱가포르 등에서 이미 도입해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가장 먼저 혼잡통행료를 도입한 국가는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1975년 세계 최초로 혼잡통행료를 도입했다. 이와 함께 교통 혼잡을 통제하는 자동차 정책으로 차량 보유를 제한하는 자동차 쿼터제와 차량취득권리증 제도를 병행하고 있다. 현재는 혼잡통행료만으로는 교통 체증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어 통행료 인상 등을 검토하고 있다.
2003년 혼잡통행료를 도입한 런던은 시행 초기 교통량 감소는 물론 교통체증이 완화하고 대기오염도 개선하는 효과가 있음을 입증했다. 런던 교통국에 따르면 시행 후 1년간 교통량이 18% 감소했고 교통체증도 30% 줄었다. 하지만 이후 우버 등 차량공유서비스와 배달 트럭이 증가하면서 결국 교통 체증이 다시 심화한 상황이다. 도입 당시에 6.32달러(약 8,200원)였던 혼잡통행료는 현재 최대 18.95달러(약 24,600원)까지 치솟아 국민들의 지지도 다소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스톡홀름은 지난 2006년 혼잡통행료를 도입하면서 시민, 기업, 소상공인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지만 시행 1년 후 교통량이 전년 대비 22% 감소하는 효과를 봤다. 이후 스톡홀름은 이듬해인 2007년 국민투표를 통해 혼잡통행료를 영구 제도화했다. 이 외에도 노르웨이 베르겐시, 프랑스 파리 등이 교통혼잡 지역으로 진입하는 차량에 통행료를 부과하고 있다.
한편 전문가들은 뉴욕의 사례가 미국 내 다른 도시들이 혼잡통행료를 도입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의 선임연구원으로 메트로폴리탄 정책 프로그램 연구하는 에이디 토머(Adie Tomer)는 "미국의 도시들은 성공사례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동안 시도하지 못했던 정책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며 "뉴욕시의 혼잡통행료가 미국 전역의 도시들을 위한 테스트베드(testbed)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이후 로스앤젤레스(LA),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에서 혼잡통행료 도입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