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사업 부진에 돈 필요한 ‘LG화학’, LG엔솔 지분 담보 PRS 발행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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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체는 적자 자회사는 둔화, 기초체력 소진 자회사 지분 유동화로 최대 3조 현금 확보 LG에너지솔루션 지분 2.2~3.7%가 대상

LG화학이 배터리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LG엔솔) 지분을 담보로 최대 3조원 규모의 주가수익스와프(PRS) 발행을 추진한다. 주력인 석유화학 업황 침체 속에서 대규모 자금을 확보해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글로벌 최저한세를 피하기 위한 지분율 조정까지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LG화학은 이번 PRS 이후 LG엔솔 주식을 매각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PRS는 회계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계상되는 게 일반적이나 여전히 처리 방식을 놓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기초자산인 LG엔솔 주식을 팔 계획이 있다면 자본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커진다.
역대 최대 주가수익스와프 추진
1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LG엔솔 지분을 기초자산 삼아 PRS를 추진하고 있다. 그간 LG화학은 LG엔솔 지분의 활용 방안으로 교환사채(EB) 발행이나 블록딜(시간 외 매매)을 중점적으로 논의해 왔다. 앞서 LG화학은 지난 5월 LG엔솔 지분 중 412만9,404주(1.76%)를 활용해 EB를 발행, 1조4,000억원을 확보한 뒤 채무 상환에 투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방식들은 LG엔솔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활용에 제약이 있는 상황이라 후속으로 밀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자금 조달 규모는 2조~3조원 정도로, 앞서 SK온이 PRS 방식으로 조달했던 금액과 비슷한 수준이다. PRS 계약 대상은 15일 355,500원인 LG엔솔 종가를 기준으로 전체 주식의 약 2.2~3.7%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투자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등이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으며 그중 일부 증권사는 6,000억원을 투입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다른 증권사들은 3,000억~5,000억원 사이에서 투자액을 조율하고 있다.
PRS는 주식담보대출과 유사하지만 파생계약이 결합된 상품으로, 만기 시 기초자산 가치 변동에 따라 정산이 이뤄진다. LG화학이 LG엔솔 지분 일부를 증권사에 담보로 제공하고 최소 2조원을 조달하는 것이다. 만기에 LG엔솔 주가가 현시점보다 떨어지면 LG화학이 차액을 증권사에 보전해 주고, 반대로 주가가 오르면 증권사들이 LG화학에 차액을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인 구조다.
LG화학은 LG엔솔 주식 1억9,150만 주(82%)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LG화학은 수개월 전부터 복수의 증권사와 PRS 계약 체결을 논의해 왔고, 실무 검토를 대부분 완료했다. 지난 6월 LG엔솔 EB 발행 당시 설정한 90일간의 추가 지분 매도 금지 기간이 끝나는 이달 말 PRS 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증권사당 5,000억원어치씩 LG엔솔 주식을 인수할 예정이며, PRS 연 이자율은 LG화학 회사채 3년 만기 금리인 연 3%보다 1~1.5%포인트 높은 연 4~4.5%대에 책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계약 규모가 최대 3조원에 이르는 대형 계약인 만큼 증권사들이 신디케이션(공동 대출)을 구성해 물량을 받아낼 예정이다.
‘불황 늪’ 빠진 LG화학, 자금 확보해 재무구조 개선 기대
LG화학이 LG엔솔 지분 유동화에 나선 것은 본업인 석유화학 업황 침체로 자금 융통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IB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올해 1월 6,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시작으로 수처리사업부와 에스테틱사업부 매각 등을 진행했다. 최근에는 비스페놀A(BPA) 사업부 매각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몇 년 새 석유화학 업황이 악화된 가운데 자금 조달을 통한 재무 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함이다.
과거 LG화학은 연간 조 단위의 이익을 내며 그룹을 견인해 왔으나 중국발 공급 과잉, 글로벌 수요 위축, 원가 상승 등이 겹치면서 영업이익이 고꾸라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LG화학의 연결기준 매출은 전년 대비 11.5%, 영입이익은 63.8% 감소했다. 이런 가운데 신사업 투자가 지속돼 작년 1분기 35.6%이던 LG화학의 총자본 대비 순차입비율은 올 2분기 52.5%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에틸렌, 폴리에틸렌(PE), 폴리염화비닐(PVC) 등 범용제품 중심의 포트폴리오는 가격 경쟁력에서도 뒤처져 있어 향후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첨단소재나 생명과학 부문의 이익 창출도 초입 단계다. 배터리 소재, 혁신 신약 등 성장성이 유망한 영역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지만 실적기여도 측면에서는 갈 길이 멀다. 사실상 '배터리 단일축 실적 의존'이라는 구조적 취약성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 속 내년부터 미국 첨단세액공제(AMPC) 규모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확산하면서 LG화학 내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장기 성장성의 근거였던 보조금 체계가 흔들리면 LG화학의 조달 전략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LG화학은 올해 1분기 4,47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이는 LG엔솔의 미국 세액공제 확대 효과가 큰 역할을 했다. LG엔솔은 1분기 매출 6조2,650억원에 3,747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는데, 이 중 AMPC로 돌려받은 금액이 4,577억원에 달한다. AMPC를 제외하면 830억원 적자인 셈이다.

최저한세 피하려면 LG엔솔 지분 2%P 처분 불가피
LG화학은 PRS 계약 기간이 끝나면 증권사에 투자금을 상환하는 대신 LG엔솔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글로벌 최저한세 제도에 따르면,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80% 이상 보유할 경우 그 아래 자회사 세율이 낮아 발생하는 톱업택스(Top-up tax·다국적 기업의 특정 사업장이 있는 국가의 실효세율이 15%에 미치지 못할 시 그 차액에 해당하는 세금)를 모회사가 대신 내야 한다.
LG엔솔의 경우 AMPC 등으로 미국 소재 자회사의 실효세율이 15% 밑으로 내려갈 소지가 있어, LG엔솔 지분을 80% 넘게 보유한 LG화학에 추가 세금 부담이 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런 상황에 LG화학이 LG엔솔 주식을 팔아 지분율을 80% 밑으로 낮추면, LG엔솔 단계에서 추가 세금이 먼저 잡히고 LG화학 단계로 올라가기 전 상당 부분 정리되는 구조로 바뀌게 된다. 또한 LG화학이 중장기적으로 LG엔솔 지분을 매각할 계획일 경우, 이번 PRS가 부채 아닌 자본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아직까지 PRS는 자본으로 인식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부채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PRS가 자본으로 인정받으면 투자하는 증권사 입장에서도 부담을 덜 수 있다. 증권사의 경우 보유 자산의 위험도에 따라 자기자본을 얼마나 쌓아둬야 하는지가 정해지는데, 이를 가늠하는 지표가 위험가중자산(RWA)이다. 대출처럼 위험이 크다고 분류되면 자기자본을 더 묶어둬야 하고, 파생상품 투자처럼 구조에 따라 위험이 분산되면 부담이 줄어든다. 때문에 PRS가 단순 대출이 아닌 파생상품으로 인식되면, 증권사는 같은 자본으로 더 많은 거래를 소화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