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친환경 금융에는 ‘말’ 말고 ‘규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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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보조금’이 친환경 전환 지연 친환경 금융 도입 위한 ‘규제’ 필수 정책 실행할 ‘인력 육성’도 절실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3년 각국 정부가 치솟은 에너지 가격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한 비용이 9,000억 달러(약 1,277조원)에 이른다. 대부분 화석 연료 산업을 지원하는 데 쓰였다. 반대로 개발도상국(이하 개도국)의 친환경 채권 발행 규모는 1,350억 달러(약 192조원)에 머물고 있다. 탄소 가격이 저렴하고 ESG(환경, 사회, 지배 구조 지표) 보고가 선택 사항이라면 자본은 화석 연료를 향한다. 하지만 유럽과 같이 집행 가능한 규제를 도입하면 자본 흐름을 바꿀 수 있다.

개발도상국 친환경 채권 발행 ‘저조’
유럽의 친환경 전환은 구호가 아닌 개념 정의로 시작했다. 유럽연합 분류 체계(EU taxonomy)가 ‘지속 가능’ 영역을 명확히 정의하는 가운데, ‘기업 지속 가능성 보고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 CSRD)은 주요 기업들에 ESG 데이터와 재무제표를 함께 공시하도록 했다. 은행 감독 당국도 ‘기후 위험 규칙’으로 움직임에 동참했다.
해당 조치들이 모든 기업을 하룻밤 사이에 친환경적으로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기후 성과를 비교하고 확인하며 재무성과와 연계시키는 것은 가능하다. 유럽연합 정부는 중소기업에 대한 요구사항을 간소화했지만, 기후 위험이 재무적 위험이라는 원칙은 그대로 유지했다. 그 결과 기업과 은행의 주목도가 높아졌다.
교육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분류 체계 데이터와 탄소 지표를 이해하는 졸업생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ESG 준수를 떠받치는 동시에 자본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주체가 될 것이다.
자본 조달 비용 및 정부 보조금 영향
이론상으로는 친환경 에너지가 더 싸야 하지만 개도국에서는 자본 조달 비용과 보조금의 영향으로 화석 연료가 우세한 경우가 많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에는 막대한 초기 투자가 필요하지만 석탄 및 가스 발전은 투자금 회수가 용이하고 국가 지원을 받기도 쉽다.
여기에 보조금을 더하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2023년 전력 및 연료 공급을 위해 사용된 9,000억 달러(약 1,277조원)의 정부 지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보조금이 없다면 친환경 에너지도 경쟁이 가능하지만 현재 상태에서는 입찰 및 융자 단계에서 프로젝트가 엎어지기 쉽다. 지역별로 친환경 산업에 대한 정의를 달리한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이 역시 엄격히 관리하지 않으면 허점이 많다. 양허성 자본(concessional capital)이 개도국을 떠나는 이유도 관리 부족이다.
개도국들이 글로벌 기준에 맞는 친환경 전환을 이루려면 2030년까지 1~2조 달러(약 1,419~2,838조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보조금으로는 어림도 없고, 예측 가능한 정책과 공공 및 민간 자본의 결합을 통한 자금 조달이 가능해야 한다.
규제 도입과 집행만이 ‘문제 해결’
은행들도 자발적인 친환경 금융을 서약하지만 보여주기에 그치고 실제 자산 변동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성과는 감독 당국이 정보 공개와 기후 위험 관리를 의무화할 때 얻어진다. 실제로 브라질 중앙은행이 해당 조치를 통해 보여주기식 관행을 실행 기준으로 바꾼 사례가 있다.

주: 친환경 금융 서약 여부, 비서약(청색), 서약(분홍) / 은행 소유주, 국내 자본(청색), 해외 자본(분홍) / 은행 규모, 소규모(청색), 대규모(분홍) / 은행 문화, 효율 및 수익성 위주(청색), 개발 및 혁신 위주(분홍) / 대출 관행, 데이터 위주(청색), 관계 위주(분홍)(좌→우→상→하)
친환경 채권도 성장하고 있지만 글로벌 채권 수익률과 추가 비용에 민감하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먼저 기업 대출을 탄소 배출 기준 및 공개 여부와 연계하는 명확하고 강력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 공공 자본 투입과 더불어 다자간 은행 채권을 IMF가 보증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낮추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는 기술 인력을 키워내는 학교의 역할도 필요하다.
남미 국가들은 강력한 규제와 산업정책을 통해 친환경 채권 발행 비율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에너지 가격이 왜곡되고 규제가 약한 지역은 ESG 도입 자체가 어렵다.
친환경 금융 전환은 ‘교실에서’
효과적인 ESG 정책 집행을 위해 최종적으로 필요한 것은 교육받은 인력이다. 은행은 홍수 위험과 부채 비율을 묶어서 생각할 수 있는 직원이 있어야 하고, 정부는 에너지 전환 모델을 돌릴 수 있는 분석가가 필요하다. 자치단체도 특정 프로젝트가 분류 체계에 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조달 책임자가 필수적이다. 해당 인력이 없다면 규제는 명분 차원에 머물고 만다.
따라서 기후 금융은 선택이 아닌 필수 과목이 돼야 한다. 회계 전공 학생은 환경과 재무에 미치는 영향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 재무 과목은 실제 데이터를 사용해 친환경 금융상품을 설계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공립대학이라면 태양광 및 전기화(electrification, 화석 연료를 전기로 대체하는 기술) 시설 입찰을 투명하게 운용해 모범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주: 친환경 금융 서약 여부, 비서약(청색), 서약(분홍) / 은행 소유주, 국내 자본(청색), 해외 자본(분홍) / 은행 규모, 소규모(청색), 대규모(분홍) / 은행 문화, 효율 및 수익성 위주(청색), 개발 및 혁신 위주(분홍) / 대출 관행, 데이터 위주(청색), 관계 위주(분홍)(좌→우→상→하)
다시 강조하지만 자본은 규제를 따르고, 규제는 전문 지식을 갖춘 인력들에 의해 현실화된다. 글로벌 금융의 친환경 전환이 기업이나 정부가 아닌 학교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SG Finance in Emerging Markets: How Binding Rules Move Capital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