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불황에 갇힌 프레시지, 자금 확보 ‘깜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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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주주 앵커PE도 자금 여력 부족
공격적 M&A, 수익성엔 도움 안 돼
시장 성장 둔화에 ‘독’ 된 볼트온 전략
국내 최대 밀키트 업체 프레시지가 유동성 확보에 난항을 겪는 모습이다. 무리한 인수합병(M&A)로 몸집을 불린 게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최대주주인 사모펀드 앵커PE도 추가 자금 지원 여력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팬데믹 특수에 승승장구했지만, 5년 연속 적자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프레시지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2021년에 528억원이던 연결 기준 영업손실은 앵커PE에 인수 이후인 2022년에 1,106억원으로 증가했고, 지난해에도 비슷한 수준인 1,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37.7% 감소한 3,306억원, 순손실은 2,239억원으로 집계됐다.
2016년 설립된 프레시지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국내 가정간편식(HMR)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창사 5년 만에 연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홍콩계 사모펀드 앵커PE는 앞서 2021년 밀키트 시장의 성장을 눈여겨보고 프레시지에 투자를 단행했다. 앵커PE가 프레시지의 최대주주 (지분율 64.43%)로 올라서는 데 투입한 금액은 약 3,000억원이다.
하지만 엔데믹을 기점으로 시장 성장세가 꺾이자, 프레시지의 성장도 멈췄다. 밀키트 시장 규모는 2021년 3,003억원, 2022년 3,408억원에 머물렀고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다. 현재 프레시지는 앵커PE의 추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공시에 따르면 프레시지가 지난해 말 기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576억원인데, 한 해 동안 영업활동에 쓴 현금은 408억원에 달했다. 이는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영업활동을 한다면 현금이 바닥난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앵커PE는 지난 9월 프레시지에 대한 추가 자금 투입을 추진하기도 했다. 2021년 결성한 4호 펀드(펀드Ⅳ)를 활용한다는 계획으로, 500억원 내외의 추가 자금 확보를 위해 출자자 협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출자자 동의를 얻지 못하며 자금 투입이 요원해졌다. 프레시지의 실적 개선 가능성이 크지 않은 상황에 추가 투자를 단행하는 것은 부담이라는 게 출자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또 한편으론 앵커PE가 프레시지를 지원해 줄 여력이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앵커PE는 2022년 투썸플레이스 투자금 회수(엑시트)에 성공한 이후 자금 회수가 중단된 상태다. 앵커PE의 주요 투자처는 큐텐·큐익스프레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라인게임즈, 카카오픽코마, 컬리 등으로 총 투자 금액은 1조5,950억원에 달한다. 이들 기업 대부분이 경영시스템 부실화, 사법 문제 등 각종 리스크로 몸살을 앓으며 기업공개(IPO) 등 엑시트를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2023년 프레시지 영업권 ‘0원’ 계상
프레시지의 재무 상황이 급격히 악화한 배경으로는 무리한 인수합병(M&A)을 꼽을 수 있다. 시장에 안착한 프레시지는 2021년부터 M&A를 통해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외형 성장과 함께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시장 진출을 통해 매출처를 다각화하려는 취지에서다. 나아가 매출의 상당 부분이 기업 간 거래(B2B)에서 발생하는 사업구조를 개선해 수익성을 제고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2021년 라인물류시스템(지분율 72.48%)을 시작으로 2022년 ▲닥터키친(100%) ▲허닭(100%) ▲테이스티나인(100%)를 연이어 사들였다. 이들 회사 매입에 들인 돈만 2,471억원(현금+자사주식)에 달했다.
문제는 이들 회사가 프레시지의 수익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M&A 직후인 2022년 프레시지는 1,10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21년 영업손실이 529억원이었전 점을 고려하면 1년 사이 109% 적자가 확대됐다. 인수 회사의 영업손실 규모는 ▲라인물류시스템 92억원 ▲닥터키친 50억원 ▲허닭 42억원 ▲테이스티나인 131억원이었다.
결국 프레시지는 2022년 711억원의 영업권을 손상차손으로 처리하고, 305억원의 영업권을 상각 처리했다. 상각비용은 회계상 영업비용인 인수가격배분(PPA) 상각으로 추정된다. PPA는 영업권 가운데 일부를 무형자산으로 전환한 뒤 감가기간에 맞춰 상각하는 것으로 영업이익에서 차감된다. 이후 2023년에도 잔여 영업권 1,072억원을 손상차손 820억원, PPA 상각 252억원으로 모두 처리했다. 그 결과 지난해 말 프레시지의 영업권은 ‘0원’으로 계상됐다. 통상 인수한 기업이 적자를 기록해 향후 현금흐름이 악화할 것으로 예상되면 그만큼 영업권에 손상차손을 반영한다. 프레시지 또한 자회사들의 사업 경쟁력이 낮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볼트온 전략, 시장 상황 따라 ‘대박 아니면 쪽박’
시장이 우호적으로 흘러갔다면 이같은 볼트온(Bolt-on) 전략이 성공을 거뒀을 수 있다. 특히 프레시지의 최대주주 앵커PE는 과거 시장 활황기 때 볼트온 전략으로 여러 번의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볼트온은 기업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연관 기업을 인수해 시장지배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을 말한다. 신규 업종에 투자하는 것보다 리스크 관리가 쉽고, 인수를 위한 탐색비용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앵커PE 볼트온 전략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는 헬스케어 업체 지오영을 꼽을 수 있다. 앵커PE는 2013년 말 지오영을 인수한 후 추가 M&A 및 전국 유통망 구축 등 회사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2014년 6월에는 삼성물산으로부터 의료용품 공급업체 케어캠프 지분 53%가량을 30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동시에 물류센터와 차세대시스템 등을 적극적으로 늘렸다.
인수 6년 차인 2018년에는 지분 매각에 나섰다. 인수자 블랙스톤이 책정한 지오영 지분 100%의 가치는 1조900억원에 달했다. 매각 대상이었던 앵커PE 지분 46%는 5,000억원 정도다. 단순 매각 차익으로만 3,500억원 정도를 남긴 셈이다. 여기에 매년 주당 350원~500원 수준의 배당까지 챙겼다. 1,500억원가량의 초기 투자규모를 감안하면 2배를 넘는 회수 성과다.
한 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는 “결국 기업 입장에서 볼트온 전략은 시장 지배력을 확대한 뒤 팔아야 의미가 있다”고 짚으며 “그러나 시장 성장이 둔화한 상황에서 군소 기업들의 합병을 통한 시장 지배력 확대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지금처럼 시장이 침체했을 때는 마땅한 매각처를 찾는 데도 시간이 걸려 그 사이 기업가치가 추가 하락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