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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초·중학교 정보교육, 수학엔 '행렬' 부활 "충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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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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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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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다만 우리 눈에 그 이야기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서 함께 공유하겠습니다.

수정

2025년부터 초·중학교에서 정보교육이 의무화되고 수학 교과에는 다시 행렬이 포함된다는 교육부 발표가 났다. 교육부가 9일 발표한 2022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개정안에 따르면 2025학년도부터 초등학교는 34시간 이상, 중학교는 68시간 이상 코딩과 소프트웨어, 인공지능과 같은 정보교육을 받게 된다. 또 수학은 학습량이 많다는 의견을 반영해 범위를 일부 축소하는 대신 디지털 교육을 위해 행렬은 부활하게 됐다. 문제는 이런 개정이 국민참여소통채널 수렴 의견을 바탕으로 공청회를 거친 최종 수정안이라는 것이다.

모든 정책이 국민 눈높이에서 결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 눈높이에 맞추다 보니 결국 수학 학습량이 너무 많다는 의견이 나왔고 기껏해야 행렬을 추가하는데서 끝난 상황이다. 정보교육을 한다고 주장하면서 단순히 수업 시수만 코딩, 소프트웨어, 인공지능에 추가한다는 이른바 '생색내기', '면피'만 했을 뿐이다.

대치동 일대의 교육 전문가들은 한국 수학 교육 수준이 지난 20년간 매우 심하게 추락했다고 입을 모은다. 첨단 4차산업 시대를 맞아 수학적, 논리적 추론 능력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현장 교육은 평균 학생들에 초점이 맞춰진 탓에 최상위권이 도전할 수 있는 정보는 부족한 상황이다. 90년대에 최상위권 명문대 본고사 입시를 치른 학생들이 풀었던 수학 문제집을 놓고 이런 문제를 풀 수 있는 학생이 전무할 것이라는 한 대치동 10년 경력의 수학 강사는 "대치, 압구정, 잠실 쪽에서 자사고, 특목고 학생들을 많이 대했지만 (이 정도 수준의 책은) 처음 봤다. 현재 고등학교에서는 거의 활용되지 않는 내용이다."고 답변했다.

즉 '국민 눈높이'에 맞추다 보니 평균 수준의 학생의 실력에 맞는 교육과정이 채택되고 나라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는 최상위권 학생들에게는 매우 쉬운 수학 수업이 계속되는 것이다. 70년대나 90년대 본고사 수학 실력을 갖춰도 글로벌 경쟁 시대에 앞서가기 힘든 상황인데 정작 교육 일선에서는 '국민 눈높이'에 맞춰 좀 더 '쉽게', '편하게' 교육을 운영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공지능 교육은 코딩 교육이 아니라 수학 교육이다

한국 정보교육 시장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는 지나친 코딩 교육 일변도로 초점이 잘못 맞춰진 것에 대한 지적도 있다. 스위스에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 대학원 교육과정을 설립해 한국 시장에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는 스위스AI대학(Swiss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 SIAI)의 한국인 운영자에 따르면 영미권과 서유럽의 최상위권 대학에서 이뤄지는 AI교육은 대부분 수학적 개념을 이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코딩'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비판을 내놓는다.

'코딩' 교육도 컴퓨터 프로그램의 핵심 설계에 도움이 되는 과제가 주어지기보다 단순히 다른 사람이 작성한 코드를 베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일선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이하 개발자)들이 대부분 코드를 베끼기만 하면 직업 능력이 뛰어나다고 인정받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일선 대학들에서도 반복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문제지만 교육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교육부의 정보교육 담당자는 "코딩 교육에 인공지능 코딩 교육을 하면 되지 않나요?"라고 대답할 정도로 인공지능이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무지한 상태로 정부 예산을 편성, 기획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학 교육보다 더 필요한 것은 논리적 사고 능력 교육, 전시 행정은 이제 그만해야

경력 15년의 한 스타트업 개발자는 "2000년대 초반부터 해왔던 코딩 직업 교육을 이제 초등학생들한테 하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며 "그렇게 양산된 노-베이스(전공 기초 없는 개발자)들이 개발 단가를 낮추고 퀄리티를 엉망으로 만들었는데 그걸 이젠 초등학교부터 하겠다는데 애들 학교 보내기 싫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어 개발자에게 필요한 능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결국 실력 있는 개발자는 논리적으로 코드를 짤 수 있는 논리 훈련이 되어있어야 한다. 지식은 둘째 문제고 코딩 경험은 셋째 문제도 안 된다"고 답을 내놓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교육부가 내놓는 정책이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정보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서 시행해왔던 정책 사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만큼 개발자를 길러내거나 유사한 훈련을 시키는 교육이 아니라 단순한 전시행정에 불과할 것이라는 강도 높은 표현을 쏟아내기도 했다.

데이터 과학 공부를 위해 스위스AI대학을 선택한 한 학생은 "그런 거 말고 진짜 유학 안 가도 되도록 해 주는 교육은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며 "스위스에 비싼 수수료를 내면서 대학을 운영해야 하는 상황도 말이 안 되고 대학부터 초등학교까지 교육 수준이 이 모양인 것도 나라 체급에 비해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는 지적과 함께, 교육부의 전시행정이 실제 국가 역량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질타를 쏟아내기도 했다.

결국 피해는 인력 못 뽑는 기업들에 돌아가, 인구감소 시대에 충격은 두 배로

대치동 수학 교육 10년 경력의 강사는 "이렇게 조잡한 교육만 하면 10년, 20년 후에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바닥을 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저희가 대학에 들어가던 2000년대 초반에도 90년대 학번 선배들이 수학이 쉬워졌다는 놀림을 하면서 걱정했고 실제로 대학에서 문과 최상위권이 이과 수업을 들어가서 경쟁력이 있던 상황이 사라지게 됐었다"며 "지금 상황은 이과 최상위권이 당시 문과 최상위권보다 수학 실력이 모자란 것 같다"는 비교 분석을 제시했다. "당시 문과 최상위권 수학 실력이 부족해 80년대보다 경제학 등의 고도의 수리 능력을 요구하는 학문에서 영미권 박사 유학생의 숫자가 크게 줄었다는 평가도 있는 상태"라는 지적과 함께, 이렇게 질 낮은 교육이 계속될 경우 조기 유학을 선택하지 않은 한국 대학 졸업자들이 석·박사 과정으로 해외 유학을 선택하려고 할 때 선택지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실제로 2010년대에 유학을 다녀온 문과 출신 박사생들 대부분이 윗 세대 선배들에 비해 학교의 명성이 많이 낮은 경우가 많고 이는 대부분 조기유학파들로 채워졌다는 것이다. 채용 시장에서 우수 인재를 찾기 힘들어하는 기업들이 인력 감소에 대응하고자 M세대 때의 고압적인 태도와 달리 Z세대의 업무 스타일에 맞게 유연한 인사 문화를 채택하고 있는 트렌드가 심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만큼 인력 자체의 역량이 더더욱 떨어지게 되는 시대가 오면 한국에서 인재가 없어 '탈(脫) 한국'을 선택할 기업들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이미 많은 스타트업들이 한국에서 인재 수급이 어려워 해외 진출을 명목으로 미국으로 이전한 경우도 늘어나고 있고 대표적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쿠팡의 경우 아예 창업자가 한국인 인재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노골적인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국민 눈높이'에 맞춰 한국 교육과 인재 역량을 추락시키지 않고, 글로벌 경쟁 격화 시대에 맞춰 조금이라도 더 고급 인력을 길러낼 수 있는 방식으로 교육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한 대치동 수학 강사의 예언대로 10년, 20년 후 한국이 팔 수 있는 상품은 아이돌 스타들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1900년대 초반 선진국 진입을 눈 앞에 뒀던 남미 국가들의 현재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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