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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티빙과 메모리 반도체로 본 왓챠 인수자 찾기 어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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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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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의 모회사 CJ ENM이 지난달 8일에 발표한 3분기 실적에 따르면, 피프스 시즌과 티빙의 합계 영업손실액이 1,3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티빙은 지난 2021년에도 영업에서 762억원의 적자를 보고 올 2월에 무려 2,500억원의 유상증자를 진행한 바 있다. 실적 악화에 따른 부채 누적을 감당하기 힘들었던데다, 자체 콘텐츠 제작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구조로 시장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왓챠가 지난 5년간 키워온 OTT 사업이 매력적임에도 불구하고 인수전(戰)에 뛰어들지 않는 이유가 향후 수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영업손실과 장기투자에 대한 불안함 때문으로 해석한다.

양지을(왼쪽), 이명환(오른쪽) 티빙 공동대표 /출처=티빙

OTT 회사들, 작년과 올해, 내년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이어져

티빙의 경우, 시즌과 합병 전 기준으로도 지난해에 762억원의 영업손실, 올해는 시즌과 합병에 따른 추가 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작년까지 국내 업체 중 업계 1위였던 웨이브는 558억원, 토종 스타트업 출신 왓챠는 248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작년에만 돈을 못 번 것이 아니다. 국내 OTT 기업 중 법인 출범 이후 흑자를 낸 곳은 단 하나도 없다.

반면, 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 등의 오리지널 콘텐츠 덕분에 한국법인 기준 2021년 매출액 6,317억원, 영업이익 171억원을 기록했다. 가입자도 2022년 6월 기준 1,117만명으로 웨이브 423만명, 티빙 401만명, 쿠팡플레이 373만명 등에 비해 2배가 넘는다. 매출액 중 대부분인 6,296억원이 유료 가입자들의 구독료로 통신사 VIP가입자 및 네이버, 카카오 등의 국내 IT업체들과 연동된 가입자로 서비스가 유지되는 국내 OTT 업체들과는 가입자 충성도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국내 업체들의 경우, 주요 매출원 중 하나인 가입자들이 이른바 '메뚜기 스타일'로 잠깐 가입 후 보고 싶은 콘텐츠를 본 다음 다시 탈퇴하기를 반복하고, 오리지널 콘텐츠가 성공해야 가입자가 늘어나니 어쩔 수 없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콘텐츠를 제작해야 한다. 거기다 해외 업체인 넷플릭스, 디즈니+ 등이 자금력을 앞세워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추세다. 통신사와 방송3사를 끼고 있는 웨이브, 거대 미디어 기업인 CJ그룹을 끼고 있는 CJ ENM도 힘겨워하는 전투에 평점 서비스를 운영하던 스타트업 출신 왓챠가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비 감당할 수 있나?

한 OTT업계 PD에 따르면 “3~4년 전만 해도 편당 9억~10억원이었던 드라마 제작비가 이젠 20억~30억원대”인데다 통상 1억원 안팎이었던 예능 편당 제작비는 5억~10억원 선으로 뛰었다고 한다. 그간 제작비용이 적게들어 예산부담이 적었던 방송 프로그램마저도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것이다. 영화의 경우 "100억원이 대작영화의 기준이었던 것이 언제인지도 모르겠다"며 최근들어서는 200억원도 대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평균 300억원 이상의 제작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라고 한다.

CJ ENM은 콘텐츠 제작에 2025년까지 5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올해는 티빙과 자체 방송채널 콘텐츠 제작비로 8600억원을 편성했다. 이 중 2,000억원 이상은 티빙에 직접 투입했다. tvN 등 CJ ENM 산하 방송 채널들이 티빙에 콘텐츠를 공급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1조원에 가까운 제작 예산 전부가 결국 티빙의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에 들어간 셈이다.

SK텔레콤과 방송3사의 합작회사인 웨이브는 자체 콘텐츠에만 2025년까지 1조원을 투입한다. CJ ENM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반문이 있지만, SK텔레콤과 방송3사 간의 복잡한 셈법이 있어 쉽게 어느 한 기업이 대규모 투자금을 내놓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이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OTT업계 고위 관계자는 “외부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수록 KT가 시즌을 매각하는 것처럼 OTT사업을 접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라며, 대형 OTT 3~4개로 시장이 정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D램 반도체 예시 / 출처=삼성전자

'치킨 게임' 시작된 OTT 업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과 유사하게 흘러갈 수도

말을 바꾸면, 왓챠, 혹은 왓챠를 인수하는 주체가 2025년까지 연간 1조원의 대규모 콘텐츠 투자를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OTT 업계에서 퇴출 수순을 밟아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기간 대규모 투자를 통해 경쟁사가 더 이상 추격이 불가능할 때까지 경쟁의 끈을 놓지 않는 것으로 대표적인 기업 사례로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이어진 메모리 반도체 분야를 들 수 있다. 메모리 반도체 성장 초기, 삼성전자와 하이닉스(현 SK하이닉스)를 비롯, 해외에는 미국, 독일, 일본, 대만 기업들이 난립해 있었다.

2007년, 후발주자인 대만 D램 업체들이 점유율 향상을 위해 생산량을 늘리면서 극단적인 저가 공세를 펼쳤다. 이 치킨게임에 당시 시장 점유율 2위였던 독일 D램 제조사 키몬다가 파산했다. 치킨게임의 절정이었던 2008년에는 1위 업체인 삼성전자만 흑자를 냈고, 하이닉스, 마이크론이 적자를 기록했고, 치킨게임을 주도했던 대만의 파워칩과 난야는 손실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은 사업을 접게 됐다.

2010년대 들어 또 다시 대만업체들이 치킨게임을 시작했고, 당시 점유율 3위였던 엘피다는 파산 위기에 몰렸으나 일본 은행들이 엘피다에 무려 1조원의 구제금융을 지원해주면서 '일본의 체면'을 살려줬으나, 결국 마이크론에 흡수합병됐다. 반도체 집적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연구·개발(R&D)에 대형 설비 투자(CAPEX)가 계속되고, 집적 혁신을 계속 이뤄내며 경쟁력을 유지했어야 하나, 자금력이 부족해 엄두를 못 냈기 때문이다. 중소형사(社)들이 여전히 영업을 이어가고 있으나, 업계에서는 현재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3강 체제로 정리됐다고 판단한다.

사진=각 사

토종 OTT 통합론 제기되는 판국, 왓챠 혼자서는 무리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를 위해 OTT 업체간 치열한 경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해외업체들과의 경쟁을 위해 토종 OTT 통합론도 제기된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결국 대규모 자금력을 갖춘 소수의 대형 회사들만 살아남았던 것처럼, 덩치를 키워야 효율적인 콘텐츠 투자가 가능하다는 판단인 것이다.

실제로 웨이브의 경우 방송3사와 SK텔레콤이 서로간 강점을 모아서 운영되는 형태다. 이미 티빙-시즌 연합, 방송3사-SK텔레콤 연합이 형성된 만큼, 장기적으로 K-콘텐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국내 단일 업체가 아니면 모두가 힘들어지는 구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시장 전체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 8월 리디와 지분 교환 방식으로 왓챠 매각 안이 나왔을 때, 리디가 보유한 소설책들의 IP(지적재산권)을 활용할 수 있어 자체 콘텐츠 제작 시장에서 큰 우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을 놓친 것이 왓챠에게는 뼈 아픈 상황이라는 지적을 내놓는다. 12월 초에 흘러나왔던 LG유플러스 인수가 사실상 없던 일이 되면서 이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기업군이 많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경쟁사들이 매년 1조원 이상의 공격적인 투자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하고, 해외업체들은 국내 시장에서 압도적인 가입자 확보를 자랑하는 가운데, 최소한 3~4년 이상의 영업손실을 각오해야할 시장에 섣불리 뛰어들 수 있는 업체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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