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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레고랜드 사태가 불거지며 부동산PF 부실화로 인한 금융위기가 손해보험사, 증권사 및 건설사들을 강타할 것이라는 말이 돈지 채 2달이 지나지 않아 중형 증권사가 알짜 자산을 매물로 내놨다.
7일 기준 시가총액 약3,075억원인 다올투자증권은 알짜 자산 중 하나인 다올인베스트먼트를 인수·합병 시장에 매물로 내놨다. 매각 대상 지분은 52%로, 약 2,000억원대에서 거래 가격이 책정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알짜 벤처캐피털(VC)을 매물로 내놓을만큼 증권사들이 부동산PF에 타격을 입었다는 말이 여의도 증권가에 돌고 있다.
부동산PF, 구조적 문제로 캐피털, 증권사들에 위험 부담 가중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PF(Project Financing)란 투자대상이 되는 사업으로부터 발생하는 미래 현금흐름을 상환재원으로 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으로, 투자대상에서 현금흐름이 발생하지 않을 경우 부도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가계나 기업이 대출을 받을 경우 신용도나 담보 등을 토대로 하는 것과 달리, 해당 프로젝트의 미래 현금흐름에 기반해 자금 조달이 이뤄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고위험 자산군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부동산PF의 경우, 프로젝트의 대상인 부동산이 담보자산의 역할을 하고, 프로젝트 참여자인 건설사가 보증을 제공한다.
그러나, 지난 2008년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부동산PF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던 많은 건설사들이 지난 5년간의 부동산PF 활황시장에서 보증 제공을 꺼려했다. 수익성을 낮추더라도 자금조달처인 증권사와 캐피털 회사에서 보증을 제공할 것을 요구했고, 높은 수익성을 반대급부로 얻을 수 있어 일부 증권사와 대부분의 캐피털 회사들이 적극적으로 시장에 뛰어 들었다.
'선분양' 탓에 건설사보다 제2금융권에 위험 쏠리는 구조
부동산PF 추진절차는 토지매입과 인허가 완료까지의 ‘착공 전 단계’, 개발과 분양이 시작되는 ‘공사 단계’, 공사가 완료된 이후인 ‘준공 이후 단계’로 구분된다. PF자금 마련을 위해 일반적으로 1단계에서는 토지매입 잔금 및 초기사업비 조달을 위한 ‘브릿지론’이 실행되고, 2단계에서는 인허가와 시공사 선정이 이뤄진 뒤 건축비용 일부를 조달하기 위해 이뤄지는 ‘본PF’가 실행된다. 특히 국내 부동산 개발 특성상 '선분양 후건축'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2~3단계 사이에 일명 ‘집단대출’(중도금대출과 잔금대출)이 실행 사업비 조달 목적으로 진행되고, 이 때 1단계의 '브릿지론'이 상환되는 구조를 갖는다.
2~3단계 이후의 중도금 대출은 제1금융권인 대형은행에서 참여하는 경우가 많지만, 1단계인 브릿지론 단계에서는 제2금융권으로 요약되는 저축은행, 증권사, 손해보험사, 캐피털, P2P 대출 등의 기관이 참여한다. 현재 건설이 조기 중단된 대부분의 PF의 경우, 집단대출 이전 단계에서 브릿지론 상환에 문제가 생긴 경우다.
7일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국내 손보사의 부동산PF 대출 잔액은 2020년말 13조2천억원에서 21년말 16조6천원으로 25.8% 급증했다. 이는 2017년(9조1천억원)과 비교하면 82.41% 급증한 수치다.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는 “손보사의 부동산 PF대출은 대부분 시공사 책임준공 및 선순위 수익권을 담보로 확보하고 있어 손실 위험은 제한적”이나, “다만, 수도권보다는 지방 소재 사업장에 대한 PF대출이 더 크게 증가했고, 미분양 리스크에 노출된 사업장과 연계된 PF대출 현황 점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PF가 부실화되기 쉬운 이유
국내에서 부동산PF가 이러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주된 이유는 사업시행주체들의 영세한 자본력, 부동산PF사업 자체가 가진 고수익·고위험성, 소요자금의 대규모성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부지매입 단계부터 설계, 시공, 사무관리 등의 일련의 개발사업 전체를 총괄하는 '시행사'의 국내법상 요건은 부실업체가 생길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부동산개발업의 관리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하 「부동산개발업법」)과 「주택법」 상의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등록 후 시행업 영위가 가능한데, 등록에 필요한 자본 및 인력요건이 매우 단순해 실제 전국에 등록된 부동산개발업자 수만 2020년 기준 6만 3천개에 이르는 상황이다.
부동산개발사업은 인허가와 부동산경기변동 등으로 인해 수익성이 크게 달라지는 고수익·고위험 사업인데다, 개발과정에서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대의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명목상의 허가제, 사실상의 등록제로 운영되고 있어 대형 부동산PF의 경우, 거시경제 움직임에 크게 유동적인 수익성 구조를 갖게 된다.
최소한 브릿지론 단계에서 시행 주체의 원리금 미상환시 지급보증이 탄탄하게 갖춰져야 하나, 시공사인 건설사가 선뜻 나서지 않으면서 결국 증권사, 손해보험사, 캐피털 등의 제2금융권들이 수익성에 끌려 무거운 짐을 짊어진 것이다.
건설업체도 공사 중단으로 '물린' 상황에 처한 곳 많아
지난달 6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간한 '부동산PF 위기 원인 진단과 정책적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월 40개 건설업체의 사업장 233곳 중 31곳(13.3%)의 공사가 지연되거나 중단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단된 사업장은 9곳이었다. 공사가 지연 혹은 중단된 주된 이유로는 'PF 미실행'이 꼽혔다. 이에 따라 건설사들은 PF 진행 과정에서 책임준공이나 연대보증, 채무인수 등과 같은 형태의 신용보강을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부동산개발사업 인·허가 단계에서 필요한 자금을 빌려주는 브릿지론의 경우 건설업체 40곳이 운영하는 233개 사업장 가운데 28곳(12.0%)이 신용보강을 받고 있었다. 건설공사가 시작되면 일으키는 본 PF의 경우 233개 사업장 가운데 절반 이상인 144곳(61.8%)에서 건설업체의 신용보증을 담보로 했다.
부동산 PF가 건설업체 신용을 기초로 실행되는 일종의 '담보대출'에 가까운 형태인 셈이다. 지난해까지 금리가 낮다 보니 증권사와 보험사, 저축은행과 같은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PF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연말까지 약 34조원 규모의 만기가 돌아오는데, 이를 막지 못하면 건설사와 금융회사들이 줄도산 위기에 처할 수 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시장에선 이미 여러 건설사들의 부도설이 파다하다"면서 "연말에 돌아오는 어음을 막지 못한 건설사들이 연쇄 부도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늦기 전에 정부 개입 필요하다는 주장도
캠코는 2008년부터 3년간 저축은행의 부실 부동산 PF 채권을 인수하는 업무를 맡았다. 캠코가 인수한 저축은행들의 부실 부동산 PF채권 규모는 484개 사업장, 7조3800억원에 이른다.
업계 한 전문가는 "연말에 금리가 추가 인상되면 부동산시장이 더욱 얼어붙게 되고 금융권에서 PF 대출을 더 조이면서 일부 사업장의 부도 위험성이 커질 것"이라며 "캠코가 2008년 부동산 PF 채권을 대량 인수한 것처럼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김정주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현 부동산PF 위기는 과도한 부동산 규제, 예측하지 못한 금리 및 원자재 가격의 상승, 부동산PF 구조적 문제점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이라며, 부동산PF위기가 현실화할 경우,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가계부채 부실 문제가 촉발되어 거시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으므로, 신속한 대응책의 마련·실행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간 누적된 과도한 부동산 규제의 과감한 완화, 본PF부실에 대한 사전억제책 보강과 시공사들에 대한 유동성 공급장치 마련, 부실사업장을 조기 정리할 수 있는 공적 채무조정 프로그램 가동, 최근 정부가 발표한 주택공급정책과 연계한 PF사업의 공급물량 흡수 등 다각적 대응방안의 모색 및 실행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