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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회사는 간판이 아니라 내실이다" 간판론 ⓛ 일그러진 보상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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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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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진실을 알릴 의무를 가진 언론의 일원으로서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를 통해 독자님의 올바른 판단과 의사소통을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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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간판이 아니라 내실이다" 유명 일본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에서 나오는 대사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떨까? 실리콘밸리의 카페에서 청년들이 새로운 알고리즘이나 특허를 궁리할 때, 서울의 카페에서는 ‘취준생’들이 실체 없는 스펙과 자격증, 적성검사를 준비하고 있다. S.K.Y. 명문대를 나온 학생이라고 그 처지가 다를까? 큰(大) 배움(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대학은 학위 자판기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런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회사를 가서 취직하게 되면 바로 창의적 인재가 될 수 있을까. 이들에게 어떤 ‘역량’이 있을까.

회사는 결국 인력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상황은 마찬가지다. 밖에 알리는 것, 남에게 보이는 걸 신경 쓰는 회사는 내실(內實)이 불안하다. 한정된 역량을 회사 홍보에 쓰면 정작 내실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기업들은 다들 속으로는 내실 다지기에 집착할 수 밖에 없다. '영업이익'을 만들어내야 유지, 존속, 성장이 가능한데, 겉멋만 들어서는 결국 자금 다 잃고 망하는 사례가 역사적으로 너무나 많다. 역사로부터의 교훈은 다 어디 갔는지, 대한상공회의소의 분석은 현재 한국 기업의 암울한 실태를 보여준다. 외형은 성장했지만 실속은 없다. 풍선 부풀리기다.

한자문화권 국가 중에 과거제를 도입한 중국, 한국, 베트남은 근대화에 뒤처져 외세에 시달리고, 그렇지 않았던 일본은 승승장구한 역사를 우연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사회는 내부적 보상 체계를 통해 능력과 재능을 길러낸다. 과거제를 통해 '인재' 마크를 찍어준 인재들은 과연 어떤 능력이 우수했을까. 최고의 축구 실력을 가진 사람은 지금의 시대에선 엄청난 부와 명예를 쌓을 수 있다. 하지만 프로축구와 월드컵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라면? 그저 달리기가 빠른 사람으로 소소한 삶을 보냈을 것이다. 만약 현대에 살았더라도 그가 축구 실력을 꽃피울 수 있는 스포츠 체계가 없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역시 빛을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 과연 축구 선수가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일까?

실속 없는 풍선 근육

작년 12월 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평가데이터와 함께 1,612개 상장사의 3분기 재무 상황을 △성장성 △수익성 △안전성 △활동성 등 4개 부문별로 분석한 결과 기업매출·총자산 등 성장성은 개선됐지만, 매출액 증가 속도가 둔화되고 영업이익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수익성과 안정성, 활동성은 일제히 나빠졌다. 분석 대상 기업의 누적 매출액은 전년 대비 19% 증가했지만, 매출 증가세가 둔화되고 영업이익이 감소하는 등 성장성 악화가 확실하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영업이익 증가율이 21년도 3분기 58.3%에서 22년도 -12.5%로 크게 하락했다.

또한 기업들이 더 많이 팔고 더 많이 손해를 보면서 수익성을 나타내는 매출액영업이익률(=영업이익/매출액)은 하락했고,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인해 기업이 부담한 이자 비용은 전년 동기 대비 22.3% 증가했다. 기업 안정성의 척도인 부채 비율도 팬데믹 발발 이후 최고 수준으로 증가해 기업들의 부채 상환 능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고자산도 크게 증가해 총자산 대비 재고자산 비율이 2020년 6.1%, 2021년 6.6%에서 작년 8.0%로 급격히 상승했다. 재고가 매출로 전환되는 속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재고회전율도 둔화돼 재고 소진 속도 둔화가 뚜렷하다. 제품이 팔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 보고서는 한국 기업들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 강력한 내부 역량을 구축하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혁신 문화 조성, 직원 교육 및 개발에 대한 투자, 외부 차입에 대한 의존도 감소 등을 제시했다. 또 기업에 부담을 준 공급망 붕괴, 고금리, 고유가 등 고비용 복합위기가 23년도에는 더욱 심각해져 한국 기업의 재무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겉모습으로 무언가를 판단하지 말라는 격언을 모두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무려 20년 전인 2003년에 발간된 경영 서적에도 패션 경영에 집착하지 말라고 나와 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없을 때 주술과 같은 비현실적인 힘에 의존한다고 한다. 불안감을 쫓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회사 성장을 위해서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는 언뜻 당연해 보이는 생각도 의심해볼 수 있다. 언제나 불확실한 상황에 직면한 경영자들이 실체 없는 경영 기법에 의존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20년이 지나도록 허상에 눈이 팔려있을까.

인재 확보를 위한 2가지 방법

미국의 협업 도구 회사 노션은 팬데믹 이후 전례 없는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 노션은 협업 및 프로젝트 관리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팬데믹 이전에는 입소문과 제품력을 바탕으로 조용히 질적 성장을 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재택근무가 보편화되고 협업 도구의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전례 없는 빠른 성장을 경험했다.

이 모멘텀을 활용하기 위해 이 회사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투자 동결로 비용을 절감하는 다른 스타트업과 달리, 노션은 주주 매입과 M&A를 통해 인재 유출을 적극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노션의 활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호황기 때의 '성장우선주의' 전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션은 유명하고 고평가된 기업에 집중하는 대신 투자자들의 관심에 벗어난 기업에 집중해 왔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통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인재와 기술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다. 

스타트업이 어느 정도 성장 단계에 접어들면 직원들은 상장을 통해 성과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최근 주식 시장의 조정으로 인해 고성장 스타트업의 상장이 어려워지면서 직원들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다. 이에 노션은 기존 투자사인 세쿼이아 캐피탈, 인덱스 벤처스와 함께 직원들이 보유한 주식 일부를 최근 기업가치 13조원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인수하는 거래를 체결했다. 직원들에게 보유 주식을 현금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함으로써 불황기에도 인재를 유지하고 외부 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과연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사주에 청약한 카카오뱅크 직원들은 주식에 물려 퇴사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회사를 그만둘 경우 주식 대출금을 토해내야 하기 때문. 카카오뱅크는 공모주 3만4,000원에 6억5,000만원까지 우리사주 대출을 내줬지만, 현재 주가는 26,000원대다. 한때는 16,000원을 하회하기도 했다. 재작년 8월 상장 당시 인당 평균 4억9,014만원을 청약했던 직원들은 평균 1억2천만원에 달하는 손실을 보고 있다.

이에 복지처럼 통 큰 대출을 허용해줬지만, 사실은 개발자들을 묶어두려는 카카오뱅크의 책략이 아니냐는 한 글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카카오뱅크 경영진 입장에서는 큰 노력 없이 우수한 개발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사보다 앞서 있는 셈. 이 회사 저 회사 옮겨 다니며 연봉을 올리는 개발자 입장에서는 커리어가 단절된 상태다. 일각에서는 카카오뱅크 직원들이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가져간 우리사주 물량이 4,970억원에 달하는데 이 금액이 고스란히 회사 금고로 들어갔기 때문에 사실상 직원들이 공짜로 일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일그러진 보상체계

꾸준한 성장과 수익 창출을 목표로 기초부터 탄탄한 비즈니스를 구축한 기업은 불황기에도 강하다. 노션은 내부 역량 강화 전략을 통해 변화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적응하고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었다. 원격 근무가 보편화되는 절호의 시기를 놓치지 않은 노션은 광고 캠페인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 집중했고 이것이 결실을 맺었다. 인재 확보를 통한 역량 강화와 회복력을 구축해 자금난을 극복하고 업계에서 강력한 플레이어로 부상할 수 있는 입지를 다졌다. 혹자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상황에서 준비한 덕분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션은 2012년에 설립된 기업이다. 자그마치 8년을 버텨오며 내공을 다져온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우리는 노션처럼 할 수 없을까? 다시 말하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 알기 쉬운 간판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너무나 후한 보상을 베풀어주고 있다. 진정한 능력을 감별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예쁜 독버섯을 맛있어 보인다고 먹는 꼴이다. 한국 기업이 '외형'에 집착하는 이유는 사회 자체에 무능한 리더십, 보고서 의존적 커뮤니케이션, 내부 역량 부족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실질을 효과적으로 평가하고 정보에 입각한 의사결정을 내릴 역량이 없는 결정권자는 매출이나 시장 점유율 증가와 같은 표면적인 성공 지표에 집중한다. 이는 '겉모습'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장기적인 성공을 저해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소홀히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많은 한국 기업에서 보고서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느리고 번거로운 과정이다. 이로 인해 경영진과 직원들 간에 시의적절하고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으며, 결국 본질보다는 '겉모습'에만 치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외국계 컨설팅 회사의 의견에 따라 스마트폰 사업을 포기했다가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뛰어들어 시장 진입에 실패한 LG의 사례에서 그 실례를 찾아볼 수 있다.

결국 '간판'에 대한 집착은 내부 역량 부족이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의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 내부적 역량을 개발하고 활용하지 못하는 기업은 인재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외형적 성장'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수 있지만, 무리한 성장은 지속 불가한 만큼 기업의 장기적인 잠재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기업들은 혁신 문화를 조성하고 직원 교육 및 개발에 투자하는 등 강력한 내부 역량을 구축하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이를 통해 기업은 단기적인 '실적'과 '외형 성장'에만 집중하지 않고 장기적인 성공을 위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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