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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한 이후에도 미취업 상태인 ‘청년 백수’가 126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였다. 주요 원인으로 대기업을 선호하는 청년층의 눈높이가 거론되지만, 최근 대기업마저 채용문을 좁히고 있어 채용 시장 한파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졸업자 452만 명 가운데 126만 명이 ‘미취업 상태’
27일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조사 청년층 부가 조사’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15∼29세 청년층 인구 841만6,000명 가운데 재학·휴학생을 제외한 최종학교 졸업자(수료·중퇴 포함)는 452만1,000명이며, 이 중 126만1,000명이 미취업 상태였다.
미취업 졸업자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4년제(45만1,000명)와 3년제 이하(21만5,000명) 대학 졸업자가 66만6,000명, 대학원 졸업 이상자가 1만2,000명으로 대졸 이상자가 전체의 53.8%를 차지했다. 고졸(52만4,000명), 중졸(4만8,000명), 초졸 이하(1만 명) 등 고졸 이하의 비중은 46.2%였다.
미취업자들은 주로 직업훈련(4.7%)을 받거나 취업 관련 시험 준비를 위해 학원·도서관 등에 다녔다(36.2%)고 응답했다. 집 등에서 그냥 시간을 보냈다(25.4%)는 응답도 4명 중 1명꼴로 나왔다. 취업 시험 준비를 위해 학원·도서관에 다녔다는 비율은 61.2%로, 4년제 대학 졸업자에게서 특히 높게 나타났다. 오랜 시간과 자원을 들여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위해 추가로 더 공부할 필요가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선호하는 취업처는 여전히 ‘대기업’
청년 실업의 주요 원인으로 자주 거론되는 것 중 하나는 ‘청년들의 눈높이’ 문제다. 불안정한 고용 경기에도, 여전히 대기업 위주의 일자리 선호 분위기가 팽배하다. 22일 구인구직 플랫폼 '잡코리아·알바몬'에 따르면 대기업 취업을 준비 중인 남녀 대학생·신입직 구직자 1,278명을 대상으로 '취업 선호 기업'을 조사한 결과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출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취업처 1위는 삼성전자(43.9%)로 파악됐다.
삼성전자를 1위로 뽑은 이유(복수응답)는 '연봉 수준이 높을 것 같아서'(48.8%), '복지제도·근무환경이 좋을 것 같아서'(47.1%), '우수한 직원들이 많아 보고 배울 점이 많을 것 같아서'(19.6%) 등이 꼽혔다. 이어 2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29.7%)가 차지했다. 이유는 '높은 연봉에 대한 기대감'(53.9%), '향후 성장 가능성'(52.9%) 등으로 나타났다.
이왕이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보장이 가능한 수준의 복지와 연봉에 구직 눈높이가 맞춰지면서 일자리 미스매치가 여전한 상황이다. 실제로 청년 백수가 126만 명에 달하는 와중에도 정작 중소기업은 심각한 인력난 심화에 시달리고 있다. 대기업·공기업 아니면 취업을 아예 포기하는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한 전문가는 청년들을 탓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라고 씁씁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에 비해 급여, 퇴직 이후의 보상은 물론 근로조건까지 열악하다. 지난 3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기준 ‘대기업 근로자의 평균 소득’은 563만원으로 전년 대비 6.6% 오른 반면, 중소기업 근로자는 266만원으로 2.9% 상승하는 데 그쳤다. 우리나라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근로자의 소득은 47%로, 일본과 유럽연합(EU)이 60~70%대에 달하는 것과 크게 대조된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 간 소득 격차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20대 대기업 근로자의 평균소득이 321만원일 때 같은 연령대 중소기업 근로자는 201만원에 그쳤다. 30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 평균소득이 각각 531만원과 282만원, 40대는 698만원과 311만원으로 점점 격차가 벌어지다가 50대에 이르러선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 임금은 각각 729만원과 291만원으로, 무려 2.5배나 차이가 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40~50대 월급이 대기업 20대 신입 사원 수준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실적 악화 영향으로 신규 채용 축소하는 기업들
오는 9월부터 국내 주요 대기업의 하반기 채용문이 열리지만, 구직 청년들의 갈증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23일 취업플랫폼 잡코리아에 따르면 하반기 채용을 계획하고 있는 기업의 1곳당 평균 채용 규모는 12.7명으로 집계됐다. 올 상반기 19.3명에 비해 35% 줄어든 수치다. 같은 날 발표된 HR테크 기업 인크루트 조사에서도 비슷한 전망이 나왔다. 인크루트가 국내 기업 727곳을 조사한 결과 하반기 채용 계획이 있는 중견기업, 중소기업은 각각 54.4%, 58%였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9.6%포인트, 9.1%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대기업의 경우 78.8%로 전년 동기 대비 1.6%포인트 하락했다.
중국발 위기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는 데다 경기 침체로 인한 실적 악화의 영향으로 기업들의 채용 심리가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신입 사원을 채용해 교육 시키는 대신 경력직 수시 채용을 선호하고 있고, 공기업은 정부의 재정 긴축 기조로 신규 채용문을 좁혔다. 스타트업의 경우 풍부했던 유동성이 줄며 자금난에 시달리다 고강도 구조조정에 들어간 실정이다.
문제는 이같은 고용 한파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경제가 성장해야 양질의 일자리도 생기는데 국내 성장 전망은 날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전망(WEO) 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로 제시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2%대를 웃돌았지만 4연속 낮아지며 올해는 1%대 중반까지 떨어졌다. IMF는 이에 대한 근거로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인한 한국의 반도체 수출 부진을 꼽으며 긴축 재정을 권고했다. 즉 앞으로 일자리 사정이 더욱 나빠질 공산이 크다는 의미다. 통계청도 고용 동향을 발표할 당시 일자리 전망에 대해 "불확실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양질의 일자리가 감소하면 취업 준비 기간이 늘어나게 되고, 종국에는 구직을 단념하는 청년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청년들은 미취업의 고통뿐만 아니라 경제가 회복된 이후 기존 취업자와의 사회적 격차로 인해 이중고를 겪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청년층 일자리는 곧 혼인과 출산율 문제에서 나아가 인구 유출로 직결될 뿐만 아니라, 청년층이 취업을 못하면 소비가 위축되는 만큼 경제 침체도 깊어진다.
고용 충격에 노출된 청년층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지만 고용 확대를 위해서는 국가 주도의 공공 일자리보다는 민간 시장에서 일자리가 활성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에 겨눠진 각종 규제 혁파는 물론, 국내 산업 구조에 맞춰 관련 기술 교육을 지원·강화할 필요가 있다. 청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일회성 재정 지원이 아니다. 최고의 청년 대책은 단연코 양질의 일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