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최근 상장 기술주 투자와 비상장 주식 투자를 함께 진행하는 크로스오버 투자자(자산운용사, 뮤추얼펀드, 헤지펀드 등)가 프리 IPO(상장 전 자금유치)를 통해 벤처기업 투자에 나서고 있다. 투자 전문 싱크탱크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해 경기 침체로 인해 벤처기업 투자에서 철수했던 크로스오버 투자자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크로스오버 투자자들은 데이터 분석 및 AI 전문 기업 데이터브릭스(DataBricks)와 같은 기업에 주목, 투자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연이은 기술주 IPO로 프리 IPO 투자 증가 조짐
피치북은 지난해 경기 침체가 시작되자 벤처기업 투자를 중단했던 공공기관과 민간 투자자로 구성된 크로스오버 투자자 그룹이 다시 벤처기업 투자를 재개했다고 밝혔다. 크로스오버 투자자는 주로 프리 IPO 세컨더리 투자로 벤처 투자에 나서는 것으로 확인됐다. 프리 IPO란 IPO(기업공개) 전에 투자를 진행하는 것으로, 상장 준비 시간이 더 필요하거나 상장 전 자금 유치가 시급한 기업에서 주로 활용한다.
투자 전문가들에 따르면 기술주 호황기에 벤처 투자를 활발히 진행했던 크로스오버 투자자들의 활동이 지난해부터 급격히 감소했다. 성장형 펀드 운용사 엑티벤트캐피탈(Activant Capital) 설립자 스티브 사라치노(Steve Sarracino)는 “2020년부터 2021년까진 약 40개의 크로스오버 투자자와 미팅을 했는데 작년부턴 단 한 건의 미팅도 하지 못했다”며 크로스오버 투자 침체를 설명했다. 피치북이 제공한 데이터를 살펴보면 크로스오버 투자자들은 2021년 약 2,500건의 벤처 투자 라운드에 참여했지만, 올해는 700건 미만에 그쳤다.
최근 영국의 ARM, 미국의 인스타카트, 클라비요 등 기술주 IPO가 재개된 사실도 투자 시장에서 철수했던 크로스오버 투자자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데 한몫했다. 기술 전문 로펌 퍼킨스코이(Perkins Coie) VC의 실무 공동 의장 트로이 포스터(Troy Foster)는 크로스오버 투자자들의 투자 활동 재개에 대해 “다시 시장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라 밝혔다.
데이터브릭스, 크로스오버 투자자들에게 주목받아
투자 전문가들은 크로스오버 투자자들의 벤처 투자를 주도하는 기업으로 데이터브릭스를 지목했다. 데이터브릭스는 지난달 14일 크로스오버 투자 기업 티로우프라이스(T. Rowe Price)가 주도한 투자 라운드에서 430억 달러(약 58조4,800억원)의 기업 가치를 평가받아 약 5억 달러(약 6,800억원)의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피치북에 따르면 데이터브릭스의 이번 투자 라운드는 올해 1분기 이후 크로스오버가 주도한 첫 번째 벤처 투자로, 다수의 크로스오버 투자자가 참여했다.
이를 두고 투자 전문가들은 다수의 기관 투자자들로 구성된 크로스오버 투자자가 IPO를 앞둔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좋은 징조라고 분석한다. 기업의 발전 가능성을 평가해 향후 IPO 청약 투자자로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라치노는 “크로스오버 투자자들이 프리 IPO를 통해 벤처 투자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프리 IPO 세컨더리 투자는 사실상 공개 시장에서 주식 투자에 임하는 것과 유사하며, 기업 상장에 수반되는 주가 상승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데이터브릭스는 예외’ 투자 자제 지적도
크로스오버 투자자들이 데이터브릭스에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투자 전문 매체 더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은 데이터브릭스가 지난해 자금 조달 침체에도 불구하고 현금 지출을 두 배를 증가시킬 정도로 현금 보유량이 풍부하고 2025년까지 안정적인 현금 흐름이 예상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아울러 AI 관련 개발 기업에 판매하는 개발 소프트웨어 매출을 기반으로 매출성장률이 향후 3년간 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데이터브릭스 세컨더리 투자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컨더리 투자 플랫폼 잔바토(Zanbato)에 따르면 지난 3개월간 데이터브릭스에 대한 구매자와 판매자의 관심도가 약 40%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잔바토는 데이터브릭스의 관심도 증가가 기관 투자자에 기반했다고 해석했다. 세컨더리 투자 자문기업 세터캐피탈(Setter Capital)이 발표한 세컨더리 투자 활성화 지표에 따르면 데이터브릭스는 글로벌 결제 기업 스트라이프(Stripe)와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항공우주기업 스페이스X에 이어 3위를 기록하는 등 투자 활동도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전문가들은 올해 기대주였던 ARM의 상장과 연이은 인스타카트, 클라비요의 IPO로 인해 세컨더리 투자 활동이 증가한 데 따른 고무적인 지표라고 분석했다. 한편 데이터브릭스는 투자자의 관심 예외적으로 집중된 사례라며 벤처기업에 대한 섣부른 프리 IPO 투자를 경계하는 의견도 있다. 사라치노는 “IPO가 근접하지 않은 기업이라면 아무리 할인된 가격이라도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