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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은행권을 대상으로 연이은 현장 점검을 나서고 있다. 최근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은행권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공격적인 마케팅이 해당 현상의 주원인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행권은 사실상 당초 정부가 먼저 초장기 주담대를 장려했다며 뒤늦은 태세 전환에 불만을 토로하는 분위기다.
금융 당국, 가계대출 실태 점검 착수
5일 금융감독원은 지난 8월 24일 하나은행을 필두로 급증하는 가계대출 실태 점검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은행감독국 가계신용분석팀을 중심으로 오는 10월까지 인터넷전문은행을 포함한 시중은행 전반을 점검할 방침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 A씨는 "가계부채 급증의 원인으로 꼽히는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취급실태를 시작으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여신심사의 적정성, 가계대출 영업전략, 대출규제 준수여부 등 은행권의 가계대출 취급 실태를 살피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은행권은 금융 당국의 이중적인 조처에 다소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금융 당국의 초장기 정책금융상품 출시에 발맞춰 50년 만기 상품을 선보였는데, 이젠 태세를 전환하고 애꿎은 은행들을 쥐잡듯 잡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금리 인상 시기였던 2021년 2월 금융 당국은 취약 차주의 금융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40년 만기 보금자리론을 출시했고, 올해 1월엔 50년 만기 특례보금자리론까지 출시했다. 사실상 당국이 50년 주담대를 먼저 꺼내 들었던 셈이다.
또한 은행들은 금감원의 검사 중복으로 담당 부서원들의 업무 과다를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감원 직원이 고객으로 가장해 은행의 가계대출 취급 실태를 살피는 미스터리쇼핑을 진행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통상 미스터리쇼핑 조사원이 지점에서 소요하는 시간이 평균 60분에 이르는 만큼 담당 직원은 물론 고객에게도 불편이 전이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50년 만기 대출 취급하는 금융권 다수 '칼질' 당해
금융당국이 이렇듯 현장 점검에 나선 것은 올해 들어 가계대출이 과도하게 증가하는 과정에서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의 주담대 취급 실적이 커진 영향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8월 발표한 '7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7월 말 기준으로 1,068조1,430억원으로 한은이 통계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대 규모를 달성했다. 특히 월별 증가액의 경우 6조4,000억원을 기록한 2021년 9월 이후 가장 큰 폭을 기록했다. 이중 인터넷은행의 주담대가 대부분의 가계 대출 확대를 견인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금융 불균형 리스크에 대한 금융 당국의 위기감을 키웠다는 설명이다.
케이뱅크의 주담대 잔액은 6월 말 3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61.4%(1조4,070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카카오뱅크의 주담대 잔액은 6월 말 17조3,220억원으로 30.3%(4조260억원) 늘어났다. 반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동 기간 1조7,408억원 감소했다. 이와 관련해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16일 "특정 금융 기관이 상환 능력이 부족한 분들에게 과잉 대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중하게 살펴봐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취급 실태를 면밀히 조사하는 것은 물론, 은행권이 가입 연령대를 제한하거나, 관련 대출 상품에 대한 판매를 중단하거나, 한도를 축소하게 하는 등 전방위적인 압박을 넣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달 NH농협은행과 BNK경남은행은 50년 주담대 상품 판매 중단을 결정했고, BNK부산은행은 아예 출시 일정 자체를 전면 재검토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카카오뱅크와 대구은행은 50년 만기 주담대에 연령 제한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한편 보험계도 금융당국의 칼질을 피해 갈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보험업계 최초로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을 출시했던 한화생명은 이달 초 취급을 중단키로 결정했다. 이로써 보험사 중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을 판매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게 됐다.
정부의 본래 취지와 달리 '레버리지 투자' 성격 가지게 된 50년 만기 주담대
전문가들은 당초 50년 만기 주담대를 장려했던 정부의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가계 대출 비대화를 초래하게 된 만큼, 현재 다소 과격한 금융 당국의 은행권 규제 행보가 가계 대출 급증을 막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움직임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한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물꼬를 텄던 50년 만기 주담대는 미국 모기지 제도처럼 실수요자 위주로 내 집 마련을 도와주는 창구 역할을 하는 게 목표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가계는 주담대를 신청할 경우 차주의 연 소득을 연간 갚아야 할 대출 원금과 이자의 합으로 나눈 값이 40%가 넘지 않는 한도에서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른바 'DSR 40% 규제'다. 그런데 수도권과 서울의 경우 높은 주택 가격으로 인해 기존 주담대의 DSR 한도 하에서 주택을 구매하기 쉽지 않다는 서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게 됐고, 이를 해결해 주기 위해 정부가 초장기 주담대를 선보였던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수도권 아파트 평균매매가격은 6월5,297만원, 서울의 경우 10억3,302만원이다. 그런데 지난해 우리나라 4인 가구의 중위소득은 512만원 기준 30년 만기(연 5%기준) 주담대로 빌릴 수 있는 대출 총액은 2억4,000만원이 최대한도인데, 해당 대출로 매매가를 채울 수 있는 비율이 수도권은 36.7%, 서울은 23.2%에 불과하다. 반면 만기를 50년으로 늘리면 같은 월 상환액으로 4억5,000만원까지 빌릴 수 있게 된다. 이는 DSR 규제의 성격상 만기를 늘려 연간 갚아나가야 하는 원리금 상환 규모를 줄여 받을 수 있는 대출의 총액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만큼 총 상환 부담은 늘어나게 되기 때문에 실수요자들만 부동산 시장에 진입하게끔 하는 것이 정부의 의도였다.
그러나 정부의 예상과 달리 금융기관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50년 만기 주담대가 가계부채 증가를 극도로 부채질하면서 금융 당국의 기조가 바뀌게 됐다는 분석이다. 경제 규모 대비 가계 빚이 너무 과도한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은행을 비롯한 금융 기관들이 3년 이후 중도상환수수료 폐지하는 혜택을 내세우면서 투자 용도로 주택을 매매하는 사람들이 늘게 됐다는 우려가 뒤따르고 있다. 또한 연 상환 부담이 줄어든다지만 대부분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이 시장금리 변동 상황에 따라 상환금이 바뀌는 변동금리형으로 출시되는 만큼 잠재 리스크를 키우게 되는 것도 금융 당국이 50년 만기 주담대를 손질하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