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미중 ‘인공지능 체계’ 분리에 대처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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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인공지능 기술도 ‘분리’ 양쪽 기술 만족시키는 ‘교육 시스템’ 필요 위기, ‘기회’로 전환해야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포괄적 관세는 경제적인 영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히 아시아를 포함한 각국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분열된 기술 체계를 만족시키는 교육 시스템 구축의 과제를 맡게 됐다.

미중 인공지능 개발도 ‘양극화’
한때는 실험실 장비와 클라우드 사용 한도가 걱정이던 대학과 교육 당국이 훨씬 큰 고민에 빠진 셈이다. 관세와 수출 통제가 가격표만 바꾸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안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술적 스택(stack, 인공지능(AI) 애플리케이션 구축, 훈련, 배포 및 관리에 필요한 도구, 기술 및 인프라의 계층적 조합)의 양상까지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관세 전쟁이 아니라 커리큘럼 전쟁이 된 것이다.
그동안 교육 당국의 입장에서 관세는 해결 가능한 잡음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10~15%의 관세율이 일상이 된 지금은 변동성을 일시적 변수로만 볼 수가 없다. 현재 구매하는 장비가 5년 정도 기간에 안정적인 재구매가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다면 교과과정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출 통제도 불확실성을 크게 더한다. 올해 초 미국은 첨단 AI에 대한 규제를 꺼내 들었다가 부분인 철회를 결정한 바 있다. 인공지능 모델에 특별 사용 허가를 적용할지 모른다는 사실만으로도 대학은 특정 기술 하나에만 의존할 수 없게 됐다. 기술 표준과 접근 마저 정책 변수가 됐기 때문에 공급망 다각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중국, 미국에 맞먹는 ‘AI 개발 예산’
미국이 AI 산업 성장을 위해 작년에 투입한 1,090억 달러(약 151조원)는 대부분 민간 투자에 의한 것이지만 중국은 공공 투자에 의존한다. 중국의 올해 투자 규모는 최대 980억 달러(약 136조원)에 이르는데, 여기에 초기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한 82억 달러(약 11조원)는 별도다.

주: 중국 공공 투자, 미국 민간 투자, 중국 민간 투자(좌측부터)
이는 동남아에 기회로 작용한다. 우선 알리바바와 화웨이가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에 클라우드 시설을 지으면서, 미국 빅테크들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역 대학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 속도도 처지지 않는 클라우드 사용량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또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데이터 센터를 위한 에너지 수요는 2030년까지 두 배의 증가가 예상되며 말레이시아의 전력 사용량은 같은 기간 7배로 늘어날 것이다. 이러한 수요 성장은 대학에 클라우드 비용을 위한 협상력까지 제공해 줄 수 있다.

주: 2024년(갈색), 2030년(회색) /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좌측부터)
물론 서구 기업들도 아예 없지는 않다. 아마존 웹 서비스가 싱가포르에 90억 달러(약 12조5천억원) 규모를 투자했고 지역 GPU 서비스 제공업체들도 첨단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다. 아세안 정부로서는 중국 및 동맹국 클라우드를 묶어 저렴한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다각화의 길이 열린 것이다.
동남아시아 교육 부문, ‘기회와 위기’
한국과 일본도 새로운 차원을 더한다. 한국이 10,000개의 고성능 GPU 구매를 통해 국립 인공지능 센터를 구축하기로 하는 동안 일본은 AI 진흥법을 통해 산학협력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양국 모두 인구 문제를 겪고 있지만 연구개발 역량으로 볼 때 아세안에는 귀중한 파트너임이 분명하다. 한국과 일본은 연구진 교환 및 공동 실습, 자격증 인증까지 첨단 교육 훈련을 제공하고, 아세안은 필요한 규모를 공급할 수 있다.
앞으로의 기술 인력은 미국 및 동맹국과 중국의 기술 사양을 모두 이해하는 전문가가 돼야 한다. 이는 대학의 교육 과정이 첫해에 수학, 최적화, 프로그래밍 등의 과목을 완료한 후 양쪽의 ‘스택’과 동일한 프로젝트를 모두 운영할 수 있도록 구성돼야 함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아세안 국가들은 각자의 컴퓨팅 수요를 모아 공동 자산화할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 ‘GPU 은행’(GPU bank)을 구축하면 대학이 예측 가능하고 저렴하게 클라우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기술 표준까지 통일할 수 있어 갑작스러운 수출 통제에도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가 가능하다.
정책 당국으로서는 미국 관세 소송과 수출 통제가 완료되는 시점까지 기다리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교육은 학사 일정이 아닌 졸업생 배출 일정에 따라 움직인다. 내년에 학위 과정을 시작한 학생이 졸업할 때가 되면 이미 이중 스택 시스템이 일상화된 시점일 것이다. 지금 대비해야 양쪽 기술 사양에 모두 익숙한 졸업생을 공급할 수 있고, 움직이지 않으면 클라우드 공급업체와 단기 계약에 골몰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관세와 중국의 산업 정책은 아시아의 교육 시스템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승자는 학생들에게 양쪽 모두를 가르치고, 공동 컴퓨팅 용량을 확보하며, 정책 변화를 견딜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는 쪽이 될 것이다. 파편화된 세계에서는 ‘선택의 자유’가 자주권인 셈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ariffs, Talent, and the Stack We Teach: How U.S. Protectionism Is Rewiring Asian Education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