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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업황 회복되며 대중국 수출도 '급성장'
美 규제 피해 저성능 AI 칩 판매하는 엔비디아, 우리나라도?
추가 대중국 규제 강화 검토하는 美, 한국 기업 영향은 제한적
7월 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21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업황 회복기를 맞이한 반도체 부문이 전반적인 수출 성장세를 견인한 결과다. 우리나라의 대중 반도체 수출 회복세를 확인한 중국이 미국발 반도체 수출 규제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해당 통계만으로 미국의 수출 규제 성패를 단정 짓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韓 대중 수출 회복, 中 "美 반도체 규제 한계"
6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의 수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7월 대중 수출 규모는 전년 대비 14.9% 증가한 114억 달러(약 15조7,000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2022년 10월(122억 달러) 이후 21개월 만에 최고치다. 수출 성장세를 견인한 것은 메모리 반도체, 무선 통신 기기 부품 등 한국산 IT 중간재였다. 특히 반도체는 한국의 대중 수출에서 약 20%에 달하는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회복세를 기록하자, 중국은 미국발 반도체 수출 규제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나섰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 같은 수출 통계를 인용해 “올 7개월간 한국의 최대 수출국은 중국이었으며, 이는 반도체 수요 덕분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 정부는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에 대중 반도체 및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을 중단하도록 끊임없이 압박해 왔으나,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 발전을 막지 못했고 앞으로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 이번 통계에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통신산업 전문가 마지화(馬繼華)도 “미국은 반도체 측면에서 중국을 단속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왔다”며 “심지어 기업에 중국 투자를 중단하라고 요구했고 규제를 계속 확대하고 있으나, 이 모든 움직임은 미국이 의도한 바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일갈했다. 이어 “미국 정부가 제재를 더 확대하면 미국과 그 동맹국의 기업만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며 “대중 반도체 규제는 반도체 시장을 쪼그라들게 해 반도체 기업들에 큰 압박을 가하고 있는데, 결국 미국도 스스로를 해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美 규제 피해 '저성능 반도체' 수출?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대중 반도체 수출이 증가했다는 사실만으로 미국 수출 규제의 성패를 속단할 수는 없다는 분석도 흘러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IT업계 관계자는 "결국 미국의 목적은 중국의 손에 첨단 반도체 기술이 들어가지 않도록 막는 것인데, 중요한 부분은 (통계 기간) 한국에서 중국으로 수출된 반도체가 '첨단 반도체'일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점"이라며 "국내 기업들이 엔비디아와 같이 비교적 기술 수준이 낮은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해 수익을 올렸을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짚었다.
실제 엔비디아는 대중국 수출이 가능한 수준의 저성능 인공지능(AI) 칩을 양산·판매하며 매출 성장 효과를 누리고 있다. 앞서 엔비디아는 미국이 2022년 10월 발표한 수출 통제 조치로 최고 성능인 A100과 H100 칩의 중국 수출이 금지되자, 사양을 하향 조정한 중국 시장 수출용 칩 A800과 H800을 출시한 바 있다. 이후 미국이 수출 통제를 추가로 강화하면서 A800과 H800의 중국 수출로가 막혔고, 엔비디아는 그보다 컴퓨팅 파워가 낮은 H20 등을 선보이며 재차 활로를 찾았다. H20은 엔비디아 주력 AI 칩 ‘H100’ 대비 연산 능력이 20% 수준에 그치는 저성능 칩이다.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향후 수개월간 새로운 H20 칩을 100만 개 이상 출시할 예정이다. H20 칩 한 개의 가격대가 1만2,000달러~1만3,000달러 선에 형성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H20 판매에서 발생하는 연 매출은 약 120억 달러(약 16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엔비디아가 올해 1월 마무리된 회계연도에 중국 사업 전체에서 올린 매출(103억 달러)을 훌쩍 웃도는 규모다.
미국의 규제 강화 움직임
미국 및 동맹국의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규제의 '빈틈'을 이용해 대중국 수출을 이어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가 조만간 대중국 반도체 규제를 추가적으로 강화하며 중국의 숨통을 옥죌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지난달 31일 로이터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 조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기술이 사용된 반도체 장비를 중국으로 수출하지 못하도록 미국 정부의 규제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의 새로운 규정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는 미국산 소프트웨어·장비·기술이 사용된 해외 생산 제품 수출 시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한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확장한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첨단 반도체 제조의 핵심으로 꼽히는 약 6개 팹(생산공장)으로의 장비 수출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다만 해당 규제가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새 규정에서 한국, 네덜란드, 일본 등 핵심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미국의 동맹국들은 예외로 분류됐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국내 반도체 생산 기업은 물론 ASML, 도쿄일렉트론 등 주요 반도체 장비 업체는 규제의 압박을 피해 갈 수 있게 됐다. 매체는 “현재 초안 형태인 새 규정은 미국 정부가 동맹국들을 적대시하지 않으면서도 중국의 급성장하는 반도체 산업에 계속 압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중국은 미국의 추가 규제 움직임에 즉각 반발했다. 린젠(林劍)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억제와 탄압은 중국의 발전을 막을 수 없고, 중국의 과학·기술 자립자강 결심과 능력을 키울 뿐”이라고 지적하며 “관련 국가들이 (미국의) 위협에 단호히 저항해 공평하고 개방적인 국제 무역 질서를 함께 지키고 자신의 장기적 이익을 진정으로 수호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