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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D램 설비 투자, SK하이닉스만 공격적 생산 물량 확대, 삼성은 기존 물량 유지
모건스탠리, '반도체 겨울론' 주장하며 감산 외에 현실적인 대안 없다 분석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저가 D램 시장 대규모 진입 탓이라는 설명도
내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반도체 설비투자 증설 계획에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램 물량 확대 규모가 관심사다. 당초 삼성전자가 HBM 추격을 위해 대규모로 HBM 설비를 증설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고객사 인증 지연으로 신규 설비투자가 주춤할 것으로 예측되는 반면, SK하이닉스는 물량 확보를 위해 설비를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D램 설비 투자, SK하이닉스 7.5만 장·삼성전자 2만 장
14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올해 연말 기준 월별 D램 생산량 기준치는 웨이퍼 기준 월 46만5,000장 수준이다. 지난해 연말 38만 장 규모에서 약 1/4 증가한 수치로, 올해 집중적으로 D램 설비투자가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내년 말 기준으로는 올해보다 7만5,000장 더 증가한 54만 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68만 장, 내년 70만 장으로, 설비 투자에 더 힘을 쏟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됐다. 이에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사실상 반도체 겨울을 대비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투자 집행 규모도 상반된 모습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설비 투자에 약 18조원, 내년에는 25조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할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내년에 주력 판매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는 5세대 10나노급 D램의 경우, 작년 말 기준 2만 장에서 올해 말 기준 8만 장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트렌드포스는 내년 말 기준으로 12만 장으로 규모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반해 삼성전자는 올해보다 축소된 30조원 규모의 설비투자를 내년에 집행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HBM3E(5세대 HBM) 제품을 사실상 독점으로 납품하면서 설비 투자에 집중한 반면, 삼성전자는 매출처 확보에 실패하면서 공급 물량을 확대할 이유가 줄었기 때문이다.
이는 모건스탠리의 전망과도 일정 부분 일치한다. 모건스탠리 숀 킴(Shawn Kim) 연구원은 지난 9월부터 반도체 겨울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15일에 발표한 ‘메모리-겨울은 항상 마지막에 웃는다(Memory-Winter Always Laughs Last)’ 보고서와 ‘겨울이 곧 닥친다(Winter looms)’ 보고서에 이어 이달 9일에 발표한 ‘메모리 반도체 투자의견 하향 관련 질의응답(FAQ on Memory Downgrade)’에서도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상황을 감안할 때, 지금은 감산하고 가격을 유지시켜야 하는 시점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킴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HBM3E 시장 진입 여부가 향후 전망에 일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가 계속 신뢰성 평가(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2025년 1분기에 퀄 테스트를 통과하더라도 당분간은 수율 문제 등의 이유로 경쟁력 유지를 위해 가격을 높이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도 내놨다. 삼성전자가 대규모로 D램 공급 물량을 늘릴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킴 연구원은 “선제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줄여야 업황에 대한 시각이 달라질 것”이라며 감산 이외에 현시점에 다른 대응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 그러면서 “수요 측면에서는 2025년 (HBM을 활용하는) 그래픽카드(GPU) 수요가 점점 더 커지면 반도체 업황 분석이 달라질 수 있지만, (전망이 바뀌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HBM 용량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겨울론은 D램 시장, HBM 등의 고(高) 기술력 D램 시장만 활황세 예상
시장 전문가들도 HBM 외에는 D램 공급량을 늘리기 위한 추가 설비 투자에 부정적인 분위기다. 특히 중국 업체들이 D램 생산 물량을 확대하고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10% 이상 끌어올리면서 D램 설비가 자칫 고비용 저효율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공격적으로 설비투자에 나서면서 메모리 반도체 3위 마이크론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실제 올해 들어 CXMT의 설비 확장은 무서운 수준이다. 미국이 중국에 반도체 수출 규제를 시행하며 적용했던 대상이 D램의 경우 18나노미터(nm) 이하인데, CXMT는 이 규제 리스트에 오르지 않은 18나노 D램 장비를 빠르게 확보하면서 설비 규모를 키울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올해 하반기 들어 DDR더블데이터레이트(DDR)4 가격이 예상보다 상승세가 둔화된 것도 CXMT의 영향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당초 D램 업계 관계자들은 HBM과 DDR5 등의 고성능 제품으로 생산 물량이 옮겨가면서 DDR4 등의 구세대 제품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했으나 CXMT가 공급 물량을 확대하자 가격 상승세가 둔화됐다. D램 기업들에 반도체 겨울론이 드리워진 것도 같은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중국 업체들의 D램 업계 침투, 반도체 겨울 길어질 수도
이 때문에 D램 설비 투자에 집중하기보다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 더 적절한 시장 대응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D램 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 삼성전자가 D램 생산 물량을 더 늘리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중국 시장의 수요를 CXMT가 대부분 흡수할 경우 향후 D램 업계에 반도체 겨울이 길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노무라증권은 이에 대해 "미국 정부의 영향력 있는 추가 제재가 없다면 D램 3강(삼성,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비트 기준)은 감소할 것"이라며 "삼성전자 30% 후반, SK하이닉스 20% 후반, 마이크론 10% 후반대에 이어 CXMT가 10%를 차지하는 구도로 나눠질 것"으로 전망했다. 사실상 저가 D램 시장을 중국 업체들이 나눠 가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장과 같은 구도로 흘러갈 것이라는 설명이다.
노무라증권은 또 "미국 제재가 강화된다면 CXMT의 캐파 확장과 기술 발전이 제한될 수 있겠지만 제제가 시행되기 전까지 단기적으로는 CXMT로 인한 시장 파괴가 일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향후 D램 설비 투자가 사실상 미국의 중국 제재와 직접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내 업계 관계자들도 중국 메모리 반도체들의 수율, 성능, 발열 등에서 과거 국내 업체들의 D램 수준의 상품이 시장에 공급될 경우 D램 가격이 추가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