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SK엔무브 흡수 나선 SK온, 재무 구조 개선될까 SK이노, CPS 매입·유상증자 등 SK온 지원 착수 먹구름 낀 배터리 업황, 업계 '적자 행진'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자회사 SK온이 윤활유 회사 SK엔무브를 흡수 합병한다. 알짜 자회사인 SK엔무브와의 합병을 통해 사업 시너지를 창출하고, 누적 적자로 인해 크게 악화한 재무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구상이다. SK이노베이션은 SK온이 발행한 CPS(전환우선주)를 대거 매입하고, 유상증자에 우회 참여하는 등 SK온의 재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SK온, SK엔무브 품는다
30일 SK이노베이션과 SK온, SK엔무브는 각각 이사회를 열고 SK온과 SK엔무브의 합병 안건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SK온이 SK엔무브를 흡수 합병하는 형태이며, 합병 비율은 SK온과 SK엔무브 1 대 1.6616742이다. 합병법인은 오는 11월 1일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은 미래 핵심 성장동력인 전기화(Electrification) 사업의 경쟁력 확보 및 성장 가속화를 위해 SK온과 SK엔무브의 합병을 추진한다고 전했다. 이번 합병으로 양 사 고객 및 사업이 결합되며 추가 수익이 창출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구체적으로 SK이노베이션은 SK온의 전기차(EV) 배터리, ESS(에너지저장장치) 배터리 사업과 SK엔무브의 기유 및 윤활유, 액침냉각, EV 공조용 냉매 사업 등이 시너지를 낼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SK이노베이션은 이번 합병을 통해 SK온이 올해 자본 1조7,000억원, 상각전영업이익(EBITDA) 8,000억원 규모의 즉각적인 재무 구조 개선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업 시너지는 오는 2030년에 2,000억원 이상의 EBITDA 추가 창출로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SK온은 이 같은 수익성을 발판 삼아 기업가치를 제고함으로써 오는 2030년 EBITDA를 10조원 이상 창출하고, 부채비율을 100% 미만으로 낮춘다는 전략 목표를 잡았다.
SK이노베이션의 '지원사격'
SK이노베이션의 대규모 자금 지원도 계획돼 있다. SK이노베이션은 SK온이 FI(재무적 투자자)를 대상으로 발행했던 CPS 전량을 3조5,880억원에 매입할 예정이다. 앞서 SK온은 지난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약 2조 원 이상의 투자금을 확보하면서 2026년 중 기업공개(IPO)를 조건으로 내건 바 있다. 기한 내 IPO가 무산되면 FI들이 보유 주식을 매도할 수 있는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SK이노베이션이 FI 지분을 선제적으로 매입하면서 SK온은 의무 상장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CPS 매입 자금은 2조원 규모의 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해 마련한다. 1조6,000억원은 키움증권 등 여러 개 증권사가 인수하고, 나머지 4,000억원은 모회사 SK가 인수한다. 이 과정에서 SK는 이노베이션 증자에 참여하는 증권사들과 3년 만기 PRS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PRS는 주식 대상 파생 상품으로, 만기 때 주식 가치가 계약 때보다 높을 경우 투자자가 차액을 가져가고 낮으면 기업이 손실을 메워야 한다.
이에 더해 SK이노베이션은 SK온의 유상증자에도 우회 참여한다. SK온이 금융사를 대상으로 2조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하면 해당 신주에 대해 SK이노베이션과 금융사가 PRS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향후 SK온의 신주 가치가 계약 당시보다 낮아지면 SK이노베이션이 금융사에 돈을 지불하게 되는 셈이다.

배터리 업계 성장 동력 잃어
SK온이 이처럼 지원사격에 힘을 싣는 것은 SK온의 배터리 실적이 '적자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2분기 SK온의 영업이익은 609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엔텀 등 흡수 합병한 기업들의 이익이 SK온의 실적으로 집계되면서 수익성이 개선된 듯한 '착시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실제 같은 기간 SK온 배터리 사업의 영업손실은 664억원에 육박했다. 이는 전 분기 대비 2,330억원 개선된 수준이지만, 부진에서 빠져나왔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수치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실적 부진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배터리 업체가 SK온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삼성SDI 역시 수익성 문제로 인해 궁지에 몰린 상태다. 삼성SDI는 수년 전부터 설비투자 규모를 공격적으로 늘려 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22년 2조5,181억원, 2023년 4조3,447억원, 2024년 6조6,205억원 등이다. 지난해에는 연구개발(R&D) 분야에도 역대 최대 규모인 1조2,975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전방 수요 부진으로 인해 생산 시설 가동률이 하락하며 투자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고, 수익성 역시 급격히 악화했다. 지난해 4분기에는 매출액 3조7,545억원, 영업손실 2,567억원을 기록하며 7년 만에 적자 전환하기도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급성장한 중국 배터리 업계에도 먹구름이 꼈다. CATL과 BYD를 제외한 중소형 업체 간의 가격 경쟁이 한계에 도달하며 대규모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마 규모가 있는 EVE에너지, 선워다(Sunwoda) 등 2선 업체들만이 상용차, 하이브리드(HEV) 등으로 방향을 틀어 겨우 성장 기반을 마련한 상태이며, 여타 업체들은 줄줄이 생존 위기에 내몰렸다. 올해 초에는 중국 리튬 배터리 소재 업체 샨샨(Shanshan)그룹이 업황 악화, 경영권 분쟁 등 악재를 견디지 못하고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착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