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계열사 간 합병시 가격 자율 결정, 외부평가 의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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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 통과 비계열사 간 합병할 때 '자율적 교섭권' 확보 향후 계열사 간 합병가액 산식도 개선 추진
앞으로 비계열사 간 합병 시 법이 정한 합병가액 산정 공식이 아닌, 당사자 간 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가격을 결정할 수 있게 됐다. 대신 외부평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이는 기업의 실질 가치를 반영하는 데 제약이 된단 지적을 반영한 조치로, 향후 금융 당국은 계열사 간 합병에 대해서도 추가 제도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금융위, 합병가액 외부평가·합병공시 강화
19일 금융위원회는 '인수·합병(M&A) 제도 개선을 위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오는 26일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구체적 합병가액 산식을 직접적으로 규율해 기업 간 자율적 교섭에 따른 구조 개선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반영한 것으로, 개정안에 따르면 비계열사 간 합병은 합병가액 산식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현행 자본시장법 시행령에서는 주권상장법인 합병가액의 경우 기준시가를 이사회 결의일과 합병계약일 중 앞선 날의 전일을 기준으로 최근 1개월간 평균 종가, 최근 1주일간 평균 종가, 최근일 종가를 거래량으로 가중평균한 후 산술평균을 내도록 하고 있다. 계열사 간 합병의 경우에는 기준시가의 ±10%, 비계열사 간 합병에서는 기준시가의 ±30% 범위에서 합병가액을 할인·할증할 수 있다. 비상장법인은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1 대 1.5로 가중 평균해 정해야 한다.
하지만 개정안은 합병가액 산식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비계열사 간 합병은 외부평가를 의무화하고, 계열사 간 합병의 경우 외부평가기관 선정 시 감사의 동의를 거치도록 했다. 외부평가기관은 합병관련 업무 수행 시 독립성·공정성·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규정을 마련하고, 점검 결과를 공시하도록 했으며, 또 합병가액 산정 과정에 관여한 경우 해당 합병의 외부 평가기관으로 선정될 수 없게 했다.
합병과 관련한 공시도 강화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해당 기업의 이사회는 합병의 목적과 기대효과, 합병가액·합병비율 등 거래조건의 적정성, 합병에 반대하는 이사가 있는 경우 합병 반대 사유 등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해 공시해야 한다. 금융위는 "미국·일본·유럽 등 주요국은 합병가액을 직접 규제하는 대신 공시와 외부평가를 통해 타당성을 확보하고 있다"며 "향후 계열사 간 합병가액 산정 규제 개선 등 합병·물적 분할시 일반주주 보호 강화를 위한 추가 제도 개선을 적극 검토·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향후 계열사 간 합병도 외부평가 확대 방침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를 계기로 계열사 간 합병가액 산정에도 외부평가를 적용하는 방향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최근 논란이 된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합병과 무관하지 않다. 두산 측은 양사의 주가 수준을 토대로 합병 비율을 정하는 현행법을 따랐다는 입장이었지만 적자기업이어도 주가가 높은 두산로보틱스와, 그룹 내 캐시카우임에도 저평가된 두산밥캣을 두고 주가에 따라 합병비율을 결정한 것은 불합리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두산밥캣 주주들의 반발과 금융감독원의 압박 등으로 합병안은 철회됐다.
이와 관련해 지난 9월 12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월례 간담회에 참석해 "특정 회사를 말씀드리지는 않겠지만 그동안 합병가액 산정 방식이 현재와 같이 기준 가격으로 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면서 "실제로 합병가액을 일률적인 산식으로 산정하는 것이 기업의 실질 가치를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국제적인 기준이나 시장 상황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김 위원장은 외부평가 의무화를 비계열사 합병부터 먼저 적용한 것을 두고 "계열사 간 합병은 기준이 되는 가격이 없으면 대주주가 자의적으로 정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어 비계열사부터 합병가액 산정 공식 개선을 먼저 시작하기로 했다"며 "그런데 최근 상황을 지켜보면서 기준이 되는 가격을 하나로 정해 놓는 것이 오히려 공정한 가격을 찾는데 제약 요인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대형 회계법인들, 논란 많은 '외부평가' 꺼려
다만 이번 개정안의 핵심 중 하나인 '제3자의 외부평가'를 두고 평가를 담당하게 될 대형 회계법인들은 난처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합병 당사자 간 의사결정을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담당해야 하는데 수익 대비 위험 부담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합병비율이 논란이 될 경우 회계사는 물론 법인까지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벌써 '참여 불가' 방침을 정하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 M&A 시장에서는 인수(Acquisition) 형태의 거래는 많지만 합병(Merger)은 드물다. 대부분의 합병이 대기업집단 안에서 이뤄지고 소액 주주는 논의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법에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해 규제하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는 비계열사 간 합병 시 법 대신 회계법인이 최종 판단을 내려야 하므로 회계법인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 대형 회계법인 파트너는 "합병가액은 조금만 달라져도 주주들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보니 트집 잡힐 일이 많고 회계사나 회계법인이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회계법인이 합병 관련 일을 맡았다가 난처해진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합병비율은 조금만 달라져도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큰 데다 법정까지 가서 결국 전문가로서 양심과 판단을 인정받더라도 그 과정은 고될 수밖에 없다. 계열사 간 일이긴 하지만 앞서 삼성물산-제일모직, 동원산업-동원엔터프라이즈, 삼광글라스-이테크건설-군장에너지 등 합병에서도 합병비율이 문제가 되면서 회계사와 회계법인이 고초를 겪었다. 교보생명과 재무적투자자(FI) 간 풋옵션 평가를 둔 갈등도 회계법인들이 '평가 업무'를 꺼리게 된 계기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