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신규 주택 7만 가구 '물량 폭탄', 일산 재건축 앞두고 사업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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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곡·창릉·장항·탄현 등 공공주택지구 지정 고양시 신규 주택 6만9,000가구 공급 예정 2만7,000가구 '재건축' 앞두고 사업성 논란
정부가 경기 고양 대곡역세권을 신규 택지 후보지로 선정하면서 1기 신도시인 일산 주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고양 대곡 외에도 창릉·장항·탄현 지구에 7만 가구 규모의 주택 공급 폭탄으로 1기 신도시 특별법에 따른 재건축 동력이 약해질 것을 걱정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가 분당·평촌 등 다른 1기 신도시보다 기준용적률을 낮게 책정함에 따라 재건축의 사업성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고양 대곡역세권, 그린벨트 해제하고 공공주택지구 지정
12일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에 따르면 공공주택지구 지정이나 재건축 추진 등으로 오는 2031년까지 고양시에 7만 가구 이상의 신규 주택이 공급될 예정이다. 지난 5일 국토부는 고양시 덕양구 내곡동·대장동·화정동·토당동·주교동 일대, 이른바 '대곡역세권' 199만㎡ 용지에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 9,4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8월 8일 발표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의 후속 조치로 2026년 상반기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하고 2029년 첫 분양, 2031년 첫 입주를 목표로 한다.
내년 상반기에는 3기 신도시 중 하나인 고양 창릉 지구에서 첫 번째 본청약이 이뤄진다. 창릉 지구는 고양시 덕양구 일대 789만㎡ 용지에 3만8,073가구 규모로 조성된다. 3기 신도시 중 남양주 왕숙 다음으로 큰 규모로 계획인구만 9만1,372명에 이른다. 내년 상반기 1,800가구가량이 우선 풀리고 2029년까지 나머지 물량도 순차적으로 공급될 예정이다. 최근 고양시는 창릉의 본격적인 부지 공급에 나서며 사업 속도를 높이고 있다.
고양 장항과 탄현 지구도 한창 조성 중이다. 고양 장항 지구는 일산동구 장항동과 일산서구 대화동 일대 약 156만㎡ 용지에 1만1,857가구를 짓는 사업으로 지난 3월 2개 블록이 최초로 완공돼 2,325가구가 입주를 완료했다. 2028년까지 나머지 블록도 공사를 끝낼 계획이다. 2020년 지정된 고양 탄현 지구는 약 42만㎡ 용지에 2,620가구를 짓는다. 고양 대곡·창릉·장항·탄현 지구 4곳에 새로 짓는 주택만 6만1,950가구 규모로 1990년대 일산이 최초로 조성될 때 계획된 가구 수가 6만9,000가구임을 고려하면 상당히 많은 물량이 공급되는 셈이다.
일산 아파트 재건축, 다른 1기 신도시에 비해 낮은 용적률
이와 함께 재건축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25일 국토부는 '일산 신도시 노후계획도시정비 기본계획'을 공개하고 고양 일산 아파트 재건축을 통해 2만7,0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성남 분당·안양 평촌·군포 산본·부천 중동에 이어 고양 일산까지 1기 신도시 5곳의 정비계획 밑그림이 모두 공개됐다. 현재 강촌마을과 백마마을을 비롯한 총 22곳(3만 가구)이 재건축을 가장 먼저 시작하는 선도지구 공모에 참여했는데 이 중 최소 6,000가구에서 최대 9,000가구를 선도지구로 선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일산 주민들은 기준용적률 등에 반발하며 재건축의 사업성을 놓고 지자체와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기본계획에 따르면 해당 정비사업을 통해 아파트 기준용적률은 300%, 주상복합 기존용적률은 360%로 상향된다. 기준용적률은 목표치로 잡은 인구를 수용하면서 쾌적한 주거 환경 유지가 가능한 적정 개발 밀도로, 재건축을 통해 일산 신도시의 인구수는 현재 24만 명에서 향후 30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일산의 기준용적률이 분당(326%), 평촌·산본(330%), 중동(350%) 등 다른 1기 신도시에 비해 낮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지금 기준용적률로 재건축을 진행하면 가구당 3억원 이상의 추가 분담금이 발생한다"며 "최소한 분당 수준까지는 용적률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산 내 10여 개 구역 재건축추진준비위원장들은 집단행동까지 계획 중이다. 빌라 등 연립주택 쪽은 기준용적률이 분당(250%)보다 훨씬 낮은 170%로 책정돼 지난달 '일산 빌라단지 재건축 비상대책위원회가는 일산동구청 앞에서 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재건축 전에 신규 주택 물량이 공급돼 사업성 악화 가능성
재건축 물량의 첫 분양 시기를 두고도 논란이 거세다. 고양 대곡지구 9,400여 가구의 첫 분양 시기는 오는 2029년이다. 1기 신도시 선도지구의 착공·분양 목표가 2027년인 만큼 후속 지구 재건축 사업 분양과 시기가 맞물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선도지구 물량이 먼저 나오면 수요가 분산될 수밖에 없는 데다 일반적으로 7~8년이 소요되는 재건축의 특성상 일반 수요자로서는 재건축 단지의 새 아파트보다 입지가 우수한 창릉·대곡지구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낮은 용적률에 신규 주택 공급이 맞물리면서 재건축의 사업성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일산은 분당 등 다른 지역에 비해 집값이 낮아 분양가를 높게 받을 수 없는 데다 용적률까지 낮다 보니 선도지구로 지정돼도 높은 분담금으로 인해 재건축이 쉽지 않을 전망"이라며 "여기에 일산보다 서울과 가까운 지역에 신규 주택 공급이 이뤄지면 일산에 대한 수요가 줄어 사업성이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도 있다. 최근 일산 집값은 약보합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고양시 일산서구 아파트값은 한 달째 하락하고 있다. 11월 첫째 주(4일 기준)에는 전주 대비 0.03% 떨어졌다. 일산동구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01% 오르는 데 그쳤다. 올여름 늘어나던 고양시 아파트 거래량도 9월 들어 다시 주춤한 상황이다. 고양시 9월 아파트 거래량은 2,008건으로 전달(2,405건)에 비해 줄었다. 거래량이 줄어든 건 올해 5월 이후 4개월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