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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5일부터 14일까지 부산 일대에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BIFF)가 펼쳐졌다. 3년 만에 정상 개최된 이번 영화제에서는 OTT(동영상온라인서비스) 콘텐츠가 단연 주목받았다. 지난해 신설된 온 스크린 섹션에 OTT 작품 9편이 초청됐고, OTT 플랫폼 오리지널 영화 또한 새로운 섹션을 통해 월드 프리미어 공개를 진행했다. 과거 영화제에서 외면받던 OTT 콘텐츠의 달라진 위상. BIFF에 활기를 불어넣은 한국 OTT 작품 여덟 편의 이야기를 전한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글리치 Glitch>는 지난 7일 전 세계 공개에 앞서 6일 부산국제영화제 온 스크린 섹션을 통해 10부작 중 4부를 공개하며 한발 먼저 극장 관객과 만났다. 배우 전여빈, 류경수 그리고 노덕 감독은 6일 오픈 토크와 관객과의 대화(GV)를 통해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진한새 작가는 GV에만 참여했고, 나나는 촬영스케줄로 인해 불참했다.
<글리치>는 외계인이 보이는 지효(전여빈 분)와 외계인을 추적해온 보라(나나 분)가 흔적 없이 사라진 지효 남자친구의 행방을 쫓으며 미확인 미스터리의 실체에 다가서게 되는 이야기다. 외계인이라는 소재로 미스터리 SF 장르를 구축한 이 작품은 사이비 종교를 등장 시켜 흥미진진하면서도 마니악한 전개를 펼친다.
영화 <연애의 온도>(2013)의 연출 노덕 감독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인간수업>(2020)의 진한새 작가가 의기투합하며 공개 전부터 관심을 모았던 <글리치>. 이들 출연, 제작진은 오픈토크와 GV를 통해 관객들의 궁금증에 직접 답하며 한층 더 깊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했다.
진한새 작가는 <글리치> 기획 배경을 공개했다. <인간수업> 작업 후 차기작을 준비하던 2019년 초부터 생각한 작품이라고 밝힌 진 작가는 "보조작가인 아내가 어렸을 때부터 (외게인을) 봤다고 하더라. 그 말을 안 믿는 저와 아내가 옥신각신하다가 나온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글리치> 제목에 대해서는 "컴퓨터 쪽 용어다. 흔히 버그 생기고 오류 나는 걸 '글리치'라 한다. 극 중 지효가 수없이 겪는, 핸드폰 화면 깨지거나 이상한 영상이 송출되는 현상이 글리치라 주요 상징으로 생각했다"면서 "지효 인생도 잘 만들어진 컴퓨터처럼 돌아가다가 한순간의 오류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고, 어감이 생소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글리치>로 결정했다"고 이야기했다.
노덕 감독은 영화 <연애의 온도>를 끝낸 후 SF 코믹 일상물을 기획했지만, 스스로 역부족이라 판단하고 접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글리치>의 기획안을 보고 SF 코미디, 미스터리 장르 등 다양하게 엮을 수 있다는 점에 흥미를 갖게 됐다는 노 감독은 이후 작가가 전한 <글리치> 뜻에 "재미있는 키워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작품은 과거나 여정에서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도 모르는 지효가 굉장히 다른 인물들을 만나면서 자기가 삶을 이룬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섞이면서 자기 자신을 찾는 이야기다. 지효가 사람들과 섞이며 달라지는 모습 자체도 글리치로 포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양하게 응용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작업 단계부터 진한새 작가가 찜한 배우 전여빈은 '지효'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가장 평범한 외피로 쌓여있는 사람이다. 그 안에 뭐가 있는지 가늠이 안 된다. 그래서 이 친구가 떠나갈 될 모험이 궁금했다"면서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풍덩 빠져서 모험해보고 싶었다. 그것이 지효를 연기하고 싶었던 이유이자 동력"이라고 전했다.
외계인을 보는 지효처럼 미지의 존재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전여빈은 "'설마 광활한 우주에 사람만 존재할까?'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지효의 여정에서 외계인 자체가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내가 가진 신념을 가지고 달려가고 친구와 함께 지나가는 시간, 그곳에서 부딪히는 사람들과의 여정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졌다"고 작품의 근본적 메시지를 강조했다.
"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일어나는 순간처럼 끊임없이 믿으려 노력하고, 진실에 다가가려 계속 노력하는 과정"을 중요시 생각했다는 전여빈은 지효를 연기하며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즐겨 입었다. 노덕 감독은 '스트라이프 티셔츠'가 지효의 내면 균열과 글리치를 표현한 의도적 장치였음을 밝혀 작품의 이해도를 높였다.
첫 리딩 때부터 '허보라' 그 자체로 등장해 모두를 놀라게 했던 나나. 전여빈은 "나나가 현장에서 내가 갖지 못한 장점과 능력을 갖췄다. 성격적 부분이나 연기 기술까지 매 순간 의지를 많이 했다"면서 류경수까지 함께 똘똘 뭉쳐 즐겁게 촬영했다고 전했다.
그런 분위기가 가능했던 건 노덕 감독 덕분이라고. 지효와 보라가 트럭에 함께 타는 대본에 없던 장면을 촬영하던 중 전율을 느꼈다는 전여빈은 "우리 둘 다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촬영 끝나고 보니 노 감독님도 모니터링 앞에서 눈물을 흘리더라"며 촬영장에서 마음이 통한 기적 같은 순간을 이야기했다. 당시를 떠올린 노덕 감독은 "나나와 전여빈이 처음 만나 바라보는 눈빛을 봤을 때 먼저 촬영한 아역과 이어지는 부분을 느꼈다. 캐릭터에 혼연일체 된 친구들과 작업하고 있구나. 믿음이 생긴 순간"이라고 덧붙였다.
지효와 보라의 첫 만남을 워맨스풍으로 그려낸 노덕 감독은 "역사적 순간을 기억할 때 기록물로 남는 게 아니라 이미지로 기억하는 것 같다. 두 친구 중 누구는 잊고, 누구는 기억할 수 있지만 마음속에 품고 있는 아련함, 눈빛, 감정 등에 집중하며 표현하고 싶었다"는 말로 우정을 넘어선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를 섬세하게 표현했다고 밝혔다.
지난 7일 전 세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글리치>는 OTT 통합 랭킹 1위, 넷플릭스 한국 시리즈 부문 2위를 기록했다. 더불어 일본, 인도네시아, 태국 등 해외에서도 TOP10에 진입하며 K-콘텐츠의 저력을 입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