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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플랫폼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의 창업자인 유정범 이사회 의장과 채권단인 OK캐피탈의 갈등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지난 25일 유 의장은 법무법인 대륙아주를 통해 서울회생법원에 메쉬코리아 회생 신청과 ARS(회생절차 개시 여부 보류) 신청서를 함께 제출했다. ARS는 법정관리를 통한 매각 절차에 앞서 회생 개시 결정을 최장 3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는 제도다. 앞서 유 의장은 지난 2월 자신과 김형설 사내이사 지분 총 21%를 담보로 OK캐피탈로부터 360억원을 대출받은 바 있다. 이후 유 의장은 채무를 갚기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 유치를 추진했지만, 지난 15일 만기가 도래할 때까지 상환 자금을 마련하지 못했다.
유 의장이 법정관리를 먼저 신청한 것은 채권단 주도로 이뤄지는 매각이나 법정관리를 막고,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메쉬코리아는 이날 이사회를 열고 유진소닉-스톤브릿지캐피탈로의 경영권 매각에 대해 의결하겠다는 방침이었으나, 유 의장과 4대 주주인 솔본인베스트먼트 등 일부 주주들의 반대로 이사회 개최가 불발됐다. 유 의장은 만기만 연장된다면 투자 유치를 통해 채무를 상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채권자인 OK캐피탈은 유 의장의 독단적인 행동에 유감을 표하고, 그동안 추진해온 경영권 매각을 그대로 진행할 예정이다. 채권단 측은 내달 초 이사회 소집까지 불발될 경우 P플랜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P플랜은 법정관리와 유사하게 법원의 관리하에 회생을 진행하지만, 그 계획은 채권자와 채무자가 협의해서 만든 계획안에 의해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OK캐피탈은 메쉬코리아의 최대 주주인 네이버, GS리테일, 현대차와의 협의를 거쳐 메쉬코리아의 경영권을 유진그룹 계열 물류기업인 유진로지스틱스의 자회사 유진소닉과 스톤브릿지캐피탈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했다.
OK캐피탈 측은 “주요 화주, 라이더 피해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회사 회생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단순히 자기자리 보전을 위해 직접 법정 관리를 신청한 점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유 의장 의결권 자체는 모두 OK캐피탈에 담보로 제공한 상태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OK캐피탈은 원안대로 신규 유상증자를 진행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다른 방안이 없다면 정식 절차대로 ‘P플랜(사전회생계획)’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기업금융 위주 포트폴리오 형성한 OK캐피탈, 대출금 회수 절실
지난해 7월 투자유치 당시 기업가치가 약 5,000억원 수준이었던 메쉬코리아의 현재 매각가는 600억원 수준이다. 1년여 만에 기업가치가 약 8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셈이다. 이런 극단적인 '후려치기'의 배경에는 채권자인 OK캐피탈의 자산 구성 비율이 있다.
2017년까지 OK캐피탈의 자산 성장은 대부업체 대출 및 개인신용대출이 이끌어왔다. 그러나 2018년 10월 시행된 개정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에 따라 대부업체 대출을 포함한 가계대출 한도가 총자산의 30% 이내로 축소됐다. 대부업체 대출 규모는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에 OK캐피탈은 이후 노선을 틀어 부동산PF 및 시행사대출 등 부동산금융, 기타기업대출 취급 확대를 바탕으로 기업금융 위주 포트폴리오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OK캐피탈의 기업금융 비중은 2016년 말 62.6%에서 지난 1분기 82.9%까지 증가했다. 지난해부터 OK캐피탈은 영업조직 확대 개편, 성과에 기반한 인센티브 조직 운영 등 적극적인 영업 기조를 바탕으로 기업금융 취급 규모를 크게 늘린 바 있다.
기업금융을 확대하며 OK캐피탈의 이익 창출력은 크게 개선됐다. OK캐피탈은 지난해 순이익 845억원, ROA(총자산이익률) 2.8%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 역시 296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208.3% 증가했다. 수익성이 높은 자산 기반을 늘리며 운용수익과 부동산 관련 금융 취급 수수료 수익이 증가한 것이다.
문제는 기업금융 중심의 자산 포트폴리오는 리스크가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메쉬코리아가 360억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OK캐피탈은 전체 기업대출 중 약 6%(2022년 3월 기준) 수준의 손해를 입게 되며, 금융감독 기관들에서 대규모의 충당금 축적 압박을 받게 된다. OK캐피탈이 메쉬코리아의 기업가치를 극단적으로 낮춰서라도 매각을 성사하고자 노력하는 이유다.
상환 위한 추가 투자 유치 시도, 줄줄이 불발
메쉬코리아는 지난 4월부터 지금까지 국내외 벤처캐피털(VC) 여러 곳과 접촉해 투자 유치를 시도했지만, 줄줄이 불발됐다. 국내외 일부 VC와 사모펀드(PEF) 운용사 및 동남아 대형 투자사에서 투자를 검토했으나 무산된 것으로 확인됐으며, 추가 투자자 물망에 올랐던 KDB산업은행 등 기존 투자사들도 투자를 꺼리는 모양새다. 올 초 공식적으로 투자 의사를 밝힌 곳도 마찬가지다. KB증권도 지난 4월부터 메쉬코리아를 대상으로 1,000억원 안팎 규모의 투자를 검토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투자금이 채무 상환에 쓰여야 하는 상황에 돈을 선뜻 내어줄 투자자를 찾기는 쉽지 않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언택트 수요 증가로 기업가치가 불어나기는 했지만, 배달대행 업계의 출혈 경쟁으로 수익성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이 그 이유다. 업계에서 거론되는 메쉬코리아의 기업가치는 5,000억원에서 최대 7,000억원 수준이다. 금리 인상으로 전 세계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크게 조정을 받는 가운데, 지나치게 높은 밸류에이션에 엔데믹 전환으로 미래 전망이 불투명해지며 투자 유치에 실패한 것이다.
부릉을 운영 중인 메쉬코리아 측은 기업가치 8,000억원 수준에서 신규 투자금 유치 작업이 마무리될 예정이어서 매각을 검토하지는 않고 있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피력해왔다. 지난 9월에는 재무 상황 개선을 위해 적자 사업인 '새벽배송' 철수와 '식자재사업' 완전 중단을 선언했으며, 지난 10월에는 당일배송 서비스(퀵커머스) '브이'를 약 25억원에 오아시스마켓그룹에 매각하기도 했다.
매각 절차 시작됐지만, 주주 의견 충돌로 '진흙탕'
하지만 메쉬코리아의 매각을 막기 위한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10월부터 매각주관사 삼정KPMG를 통해 메쉬코리아의 예비입찰이 진행됐다. 예비입찰에는 동종 물류업체를 비롯해 5~6곳이 참여했으며, 참여 후보 중에는 PEF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매각 역시 주주들 사이 의견이 부딪치며 쉽사리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메쉬코리아 최대 주주는 지난해 말 기준 18.48% 지분을 보유한 네이버이며, GS리테일(18.46%), 유정범 메쉬코리아 대표(14.82%), 현대자동차(8.88%), 솔본인베스트먼트(7.51%) 등이 주요 주주다. 앞서 OK캐피탈과 주주단은 전날 주주단 회의에서 새 인수자인 유진소닉-스톤브릿지캐피탈 컨소시엄이 600억원을 신주로 투입해 53%를 인수하고, 나머지 지분 47%는 기존 주주들에게 분배하는 내용에 동의했다. 이 안건을 토대로 오는 25일 이사회를 갖고, 대표이사 해임안과 유진소닉이 우선으로 메쉬코리아에 100억을 증자하는 안건을 결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분 7.51%를 보유한 4대 주주 솔본인베스트먼트가 해당 안건에 돌연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이사회 개최가 불발됐고, 매각 작업 자체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생겼다. 솔본인베스트먼트가 메쉬코리아 이사회 이사진에게 보낸 공문에는 기존 주주들이 합의한 대표이사 해임, 유상증자에 대한 사전동의권 두 가지 안건에 대한 반대 의견이 담겼으며, 만약 해당 안건을 강행할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경고도 포함됐다. 이 외에도 일부 주주가 매각 방침을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매각은 주주단의 전원 동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한 주주라도 반대할 경우 매각 절차가 중지된다.
기존 주주가 매각을 수용한 것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메쉬코리아의 법정관리행이 확정될 경우 보유 중인 지분이 전부 소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진소닉이 메쉬코리아를 인수할 경우 투자 손실 규모를 줄이거나, 다시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창업자인 유정범 의장은 경영권 사수를 위해 매각에 결사반대하고 있다. 매각 반대 의사를 밝히며 유 의장의 우군으로 나선 솔본인베스트먼트는 유 의장과 오랜 기간 신뢰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성장성 내세운 스타트업들 줄줄이 무너지는 중
그동안 대다수 스타트업은 적자라고 해도 ‘미래 성장성’을 내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몸집을 불려 왔다. 과거 저금리와 유동성 기조 속 몸값이 뛴 대다수의 스타트업들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동성 축소 및 투자 여건 악화를 버티지 못하고 몸값이 추락하거나, 경영이 위기에 내몰리는 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21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지난 9월 한 달간 국내 스타트업이 유치한 전체 투자금은 3,816억원이다. 이는 8월 투자금인 8,628억원 대비 56% 감소한 수준이다. 10월 투자액 역시 4,514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21.7% 감소했다. 이달 300억원 이상 투자 건은 2건에 그쳤다. 은행 예금 금리가 5%를 넘어서며 위험을 떠안고 투자 시장에 돈을 맡길 투자자가 감소한 것이다.
국내 대표적인 유니콘 스타트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들도 투자 위축의 여파를 피해 가지는 못했다. 실제로 토종 OTT(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는 올 상반기 1,000억원 규모의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를 추진했으나 실패했고, 지난해부터 이어진 자본 잠식으로 인해 주주들이 앞장서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이에 경영권 매각을 추진했지만, 인수자를 찾지 못해 불발됐다.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서재도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달 초 IPO(기업공개)를 철회한 바 있다. 신선식품 새벽배송으로 이름을 알린 컬리는 지난해 말 프리IPO 당시만 해도 기업가치가 4조원에 달했지만, 지금은 약 1조원에서 1조5,0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인터넷전문은행 토스(비바리퍼블리카)도 당초 1조원 규모의 시리즈G 투자유치를 추진했으나, 결국 투자 금액을 5,300억원으로 줄여 라운드를 마무리했다. 투자유치 후 기업가치는 9조원대로 희망했던 가격(10조원대)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기업 가치 하락과 경영권 위험은 비단 메쉬코리아만의 문제가 아닌, 투자 위축으로 인해 스타트업 업계 전반이 겪고 있는 고충이다. 주주들 사이 의견 충돌로 '진흙탕 싸움'이 되어버린 메쉬코리아 인수 건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