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지난 1일, CJ ENM의 OTT 서비스인 티빙(Tving)이 KT의 시즌(Seezn)과 합병을 완료했다. 지난 7월 양측간의 합병 보도가 나온 지 5개월 만이다.
당시 KT가 '계륵'을 떼어냈다는 평이 나온 반면, 웨이브와 힘겹게 토종 OTT 1위 경쟁을 하고 있던 티빙은 합병을 통해 1위 업체로 우뚝 설 수 있어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시장에 반영되기도 했다. 당시 왓챠의 경영난 소식이 이어지며 OTT 업계 전반이 위축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으나, 티빙과 웨이브 모두 대기업 집단이 모기업으로 지원하고 있는 만큼, OTT 업계 전체의 손실이 양 사에 직접 반영되기보다 시너지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지난 10월 말, 공정위가 티빙과 시즌의 기업결합을 승인하면서 기대감은 한층 높아졌다. 콘텐츠 역량을 결집해 넷플릭스, 디즈니+ 등의 해외 업체에 대항할 수 있는 토종 OTT 강자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한층 커졌기 때문이다.
OTT 업계, 규모의 경제로 수익성 개선될 수 있을까?
지난 2021년 티빙의 영업수익은 1,135억원, 영업비용은 2,078억원이다. 영업손실이 762억원에 이른다. CJ ENM이 OTT 사업에 뛰어든 지 5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영업이익이 나올 가능성은 낮은 상태다. 그럼 시즌에서 가입자를 유치해 국내 1위 업체로 올라서면 영업이익을 낼 수 있는 콘텐츠 업체가 될 수 있을까?
그간 국내 1위 업체로 독보적인 위치를 지켜온 웨이브(Wavve)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2021년 재무정보에 따르면, 영업수익은 2,300억원, 영업비용은 2,860억원으로 역시 560억원의 영업손실을 보고 있다. 2020년에도 영업손실은 170억원이었다. 심지어 방송 3사와 연합해 만들어진 기업으로 콘텐츠 확보에 드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웨이브가 이런 상황인 만큼, 다른 OTT업체들이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은 당연한 상황인 것이다.
공정위는 지난 10월 합병 심사에서 규모의 경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양 사가 합병하더라도 각각의 시장 점유율이 13.07%, 4.98%에 불과해, 웨이브(14.37%)를 넘어설 수는 있으나, 1위 넷플릭스(38.2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합병 OTT가 단독으로 구독료를 인상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OTT업계 관계자들도 단순히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것만으로 수익성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는 갖고 있지 않다. 콘텐츠 업계는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망작' 속에 한두 개의 '대박'이 기업 전체의 영업이익을 이끌어낸다는 일종의 '투자 심리'에 기반해 움직여왔다. OTT로 플랫폼이 이전되었을 뿐, 콘텐츠 업계의 기존 셈법은 바뀌지 않은 상태다.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 티빙에 새로운 길 열어주나
티빙의 시즌 인수도 겉으로는 가입자 숫자 확보라는 평이 나오지만, 내부적으로는 시즌이 보유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낮은 가격에 인수해서 티빙에 이득이 됐다는 평이 나온다. 오히려 KT에서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이 대박을 치면서 지나치게 저가에 매각했다는 이유로 시즌 고위 관계자를 질타했다는 후문도 들려오는 상황이다.
OTT 업계에서는 이번 합병이 티빙에 주는 직접적인 이득은 가입자 숫자 증대보다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라고 지적한다. 합병 법인은 스튜디오드래곤과 CJ ENM 스튜디오스, 피프스시즌 등 CJ ENM 국내외 스튜디오 자회사와 더불어 최근 흥행 돌풍을 일으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기획한 KT스튜디오지니까지 4개 스튜디오를 거느리게 된다.
지난 3월 양 사가 콘텐츠 협력을 공표하면서 CJ ENM은 KT스튜디오지니에 무려 1,000억원의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지난 7월의 합병 발표에서도 콘텐츠에 방점을 찍은 CJ ENM의 공격적인 투자 성향이 잘 드러난다. 당시 양지을 티빙 대표는 “이번 합병은 최근 글로벌에서 위상이 강화된 K-콘텐츠 산업의 발전과 OTT 생태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이라며 “양사의 콘텐츠 제작 인프라와 통신 기술력을 통해 국내를 넘어 글로벌 넘버원 K-콘텐츠 플랫폼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1위 업체 타이틀로 해외 OTT 시장 진출, 수익성 개선 타개책인가?
티빙의 시즌 인수 이면에는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 이외에 또 다른 셈법이 숨어있다. 바로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타이틀 확보'다.
티빙은 국내 OTT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판단 아래, 해외시장으로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왔다. 같은 측면에서 웨이브도 SKT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일본의 NTT도코모와 콘텐츠 제휴 협약을 맺은 바 있다. 일본, 동남아를 비롯한 해외시장 진출이 수익성 개선을 위해 핵심적인 도전이 되었다는 증거 중 하나다.
티빙에서는 KT 멤버쉽을 통한 시즌 가입자들이 일부 떨어져 나가더라도 당분간 웨이브보다 더 많은 가입자를 유치한 국내 OTT 업체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해외 OTT 시장에 단순히 콘텐츠 제공사가 아니라 직접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한국 1위 업체'라는 타이틀이 해외시장 진출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CJ ENM 내부 관계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12월 공개가 예정된 오리지널 콘텐츠인 ‘아일랜드’는 글로벌 OTT인 아마존프라임비디오(Amazon Prime)를 통해 해외 주요 지역에 공개하기로 했다. 제주도 설화를 재해석한 아일랜드는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악과 싸워야 하는 운명을 가진 인물들의 여정을 그린다. 만화가 윤인완, 양경일 작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조작된 도시’ 등을 만든 배종 감독이 연출했다. 티빙은 콘텐츠를 해외에서 방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2023년부터는 '한국 1위 업체' 타이틀을 활용해 직접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당장 내년부터 일본과 대만에서, 2024년부터는 미국과 유럽에서 사업을 시작한다.
넷플릭스, 디즈니+를 넘어 글로벌 시장 안착 가능할까?
'오징어게임’ 등의 성공으로 K-콘텐츠의 글로벌 시장 위치는 급변했다. 이전에는 동아시아 일부에서만 소비되는 마니아성 콘텐츠라는 인식이 강했던 반면, 국내의 독자적인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가 충분히 글로벌 시장에서 흥행될 수 있다는 경험치가 쌓이게 되면서, 국내 업체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은 넷플릭스 등의 플랫폼을 통해서, 혹은 이번 티빙의 도전처럼 직접적인 글로벌 시장 진출 형태로 나타나는 중이다.
다만 티빙이 글로벌 시장에 넷플릭스, 디즈니+, 아마존프라임비디오처럼 안착할 수 있을지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여전히 수백억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오징어게임의 성공은 되려 넷플릭스와 디즈니+ 같은 글로벌 회사들에게 K-콘텐츠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가속화시켜줬기 때문이다. 영업손실을 입는 가운데 과감한 콘텐츠 투자는 쉽지 않은 도전이다.
한편에서는 어차피 콘텐츠 시장 자체가 1-2개의 대박을 위해 수십 개의 '쪽박' 콘텐츠 제작에 도전해야하는 업계인 만큼, 티빙이 적극적으로 콘텐츠 제작에 나설수록 K-콘텐츠의 해외시장 침투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단순히 하나의 대박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해외시장에 안정적으로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는 시장이라는 이미지가 심어지면 티빙이 K-콘텐츠를 들고 해외시장에 진출함에 있어 마케팅 비용을 절감하는 등, 이른바 '판을 미리 깔고 가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