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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AI 토익, 산타토익 등으로 알려진 뤼이드(Riiid)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비전펀드로부터 1억7,500만 달러 (한화 약 2,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가까이 지내는 인공지능, 데이터 과학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당시 소프트뱅크의 한국 지사 문규학 매니징파트너는 "뤼이드는 획일화된 교육 방식에서 개인화 학습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하는 기업"이라며 "뤼이드의 AI/머신러닝 플랫폼이 교육기업, 학교, 그리고 학생들에게 개인화된 학습 솔루션을 제공하여 학습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투자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당시 뤼이드의 장영준 대표는 실리콘밸리, 캐나다, 아프리카 가나 지역 등에 사업을 확장하고 단순한 토익 시험문제 추천뿐만 아니라 미국 대입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SAT 및 각종 미국 대학, 대학원 입시 관련 시험으로 영역을 확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화려한 겉모양, 그럴듯한 약속, 뒷받침되지 않는 기술
뤼이드는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2020년 4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글로벌 사업 법인을 설립하고, 전 미국 ACT CEO인 마텐 루다(Marten Roorda), 스탠포드대학 부학장 출신이자 바이든 캠프의 교육정책위원직을 역임한 짐 래리모어(Jim Larimore) 등 글로벌 거물급 인사들을 연이어 영입하기도 했다.
이어 EDM 등 글로벌 AIEd 컨퍼런스에 2021년 들어 3건 이상의 논문을 등재하며 글로벌 기술력을 갖춘 회사라는 점을 크게 홍보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CB인사이트는 2021년 4월에 100대 AI 기업으로 뤼이드를 선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간 많은 업계 관계자들이 '산타토익'으로 알려진 토익 문제 추천 알고리즘 자체가 문제의 카테고리를 유형에 맞춰 수작업으로 세분화한 것일 뿐, 실제로 '인공지능'으로 불릴 수 있는 알고리즘이 아닐 것이라는 의견을 내왔다. 현재 알려진 AI 알고리즘은 모두 '패턴 인식'에 기반해 있어 현실적으로 문제 유형이 구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패턴을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한 계산 구조이며, 알고리즘 스스로 문제 유형을 구분하려면 막대한 데이터가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라도 서비스 초기부터 사용자 숫자 확보에 주력해야 했으나, 성적별 예시 데이터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뤼이드는 글로벌 시장 진출을 주장했던 2021년 중반까지도 수작업을 통해 문제 유형을 분류하고 있었다는 게 익명을 요구한 내부 관계자의 증언이다.
토익 이외 다른 시험으로 확장은 가능한가?
뤼이드가 글로벌 시장 진출을 이유로 수천억원의 투자를 받았다는 소문이 돌자, 국내 주요 AI 및 데이터 과학 업체들에 토익 이외의 다른 시험에도 이러한 알고리즘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지 문의가 빗발쳤다. 소프트뱅크 벤처스 국내 지사의 전 투자 전문역이었던 한 관계자는 주변의 전문가들에게 가능성 여부를 꼼꼼하게 확인한 다음 당시 재직 중이던 VC가 보유한 뤼이드의 지분을 중간에 매각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시장에서는 토익처럼 공통된 유형 반복이 두드러지는 일부 시험을 준비할 땐 뤼이드식 알고리즘 학습법의 효과를 볼 수도 있겠으나, 유학 준비를 위해 많이 도전하는 토플만 해도 읽기, 듣기 중 일부 문제에서만 이득을 볼 수 있을 뿐 다른 문항들에선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화 교육? 문제 미리 가르쳐주는 교육?
AI업계 및 교육업계 전문가들은 한국과 해외 시장의 교육 관점이 다른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에서는 다음 토익 시험에 나올 문제를 미리 가르쳐 줄 수 있다는 점이 '산타토익' 서비스의 중요한 홍보 포인트로 작용했으나, 한국과 중국 등의 일부 시장을 제외하면 해외에서는 이 같은 방식을 '반칙(Cheating)'으로 인식하고 비정상적인 교육 방식으로 판단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시험문제를 미리 알려준다는 알고리즘으로 홍보에 성공했던 한국 방식이 중국 및 화교들 시장에서는 통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영미권 시장에서는 자칫 미리 교육받았다는 것이 문제 되는 사안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만약 추천 알고리즘이 효율적으로 효율적으로 동작한다고 해도, 모자라는 영역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적절한 추가 문제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약점을 보완하는 교육은 이미 뤼이드 이전에도 수많은 기업들이 갖고 있던 기술이었기에 개인화라는 뤼이드의 차별점도 특이하다고 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보 전진을 위한 이보 후퇴? 성장 동력의 상실?
뤼이드의 미국 법인인 뤼이드 랩스는 지난해 146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연결재무제표 기준 471억원의 손실 중 약 30%에 해당한다. 미국 진출로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동안 매출은 지난 2021년 53억원에서 2022년 50억원으로 감소했으며, 같은 기간 연결기준 영업비용은 302억에서 471억원으로 증가했다. 국내 매출이 제자리걸음하고 영업비용이 증가한 만큼 뤼이드가 미국 시장에서 대규모 추가 적자를 봤다고 분석할 수 있다는 게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미국 시장에서 단기간에 매출액을 내기는 어려운 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뒤따르고 있으나, 미국 시장에 적합한 다른 교육 서비스를 만들어 내지 않는 이상 시장 확장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내에서 통했던 시험문제 추천 알고리즘이 실질적인 학습 및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 타국 시장에서 서비스를 이해시키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2021년에 소프트뱅크 벤처스의 비전펀드로부터 투자받은 것으로 알려진 약 2천억원의 시리즈 D 투자금액이 2024년 만기로 연복리 7% 상환 약정이 잡혀 있는 점에 주목했다. 2023년 말까지 반전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에 만기까지 다음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만큼, 올해 안에 뤼이드가 대대적인 반전을 보여주지 않으면 2024년에는 영업 위험뿐만 아니라 재무적 위험도 짊어지고 가야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