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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일이 늘고 있다. 그간 기술이 발전하며 인간의 일자리가 대체될 것이란 논의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다만 과거엔 이것이 반복적인 육체노동을 하는 '블루칼라' 노동자에게만 해당되는 일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챗GPT의 등장 등 AI 기술이 고도화됨에 따라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창작의 영역에까지 AI가 발을 들이며 '화이트칼라'층도 안심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 실제 국내외 기업 중 카피라이터, 디자이너, 번역가 등 인력을 AI로 대체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기도 하다.
챗GPT, 인간 넘어 AI 일자리까지 위협한다
중국 최대 미디어 광고 그룹 블루포커스는 지난 14일(현지 시각) 카피라이터 및 디자이너 등에 대한 아웃소싱(외주)을 무기한 중단하고 생성형 AI 기구로 이를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블루포커스는 지난 3월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식 홍보대행사로 계약하면서 전략적 협업에 나서고 있다. MS는 챗GPT를 운영하는 오픈AI의 최대투자자다.
미국 기업의 경우 이미 절반 정도가 챗GPT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지난 2월 미국의 구인 플랫폼 '레주메빌더닷컴'이 설문조사 플랫폼 '폴피쉬'를 통해 미국 내 기업 1,000곳의 경영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챗GPT 출시 이후 이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답한 기업은 49%에 달했다. 일부 인력을 챗GPT로 대체했다고 응답한 기업은 여기서 또 절반에 가까운 48%였다. 즉 전체 기업의 25%의 인력이 AI로 대체된 것이다.
챗GPT를 제외한 타 AI도 위기 상황을 맞았다. 챗GPT의 등장으로 아이폰의 '시리' 등 음성인식 비서들의 저열한 성능이 부각되며 점차 퇴출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시리의 공동 개발자인 아담 체이어는 "음성 비서의 한계를 인정한다"며 "복잡한 명령을 이해하는 챗GPT와 비교할 때 기존의 음성 비서는 멍청해 보인다"고 자조했다.
실제로 음성 비서 대신 챗GPT를 비서로서 채용한 기업도 있다. MS는 지난 1월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에 100억 달러를 투자한 뒤 챗GPT 기반 언어 모델을 장착한 검색엔진 빙(Bing)을 만들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스냅챗'과 식료품 배송 업체 '인스타카트', 전자상거래 플랫폼 '쇼피파이' 등 기업은 이미 챗GPT를 코드 작성, 콘텐츠 제작, 고객지원 등 자사 서비스에 적용하고 있기도 하다.
'화이트칼라'에도 불어닥친 '인력 대체' 칼바람
이런 가운데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가 앞으로 10년간 전 세계 주요 경제권에서 3억 개 이상의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전체 직업의 3분의 2가량이 생성형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특히 오픈AI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회계사, 수학자, 통역사, 작가, 법원 속기사, 블록체인 엔지니어 등 직업들이 생성형 AI에 의한 해고 위기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
앞서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생성형 AI가 미국 및 유럽 일자리 4분의 1을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업종별로는 사무·행정(46%), 법률(44%), 건축·공학(37%) 등이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상위권에 오른 업종 대다수는 '화이트칼라' 업종으로, 그간 '블루칼라'들만의 이야기로 여겨져왔던 인력 대체의 칼바람이 화이트칼라 업계에도 불어닥친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미 생성형 AI로 대체된 인력들도 있다. 일부 국내 스타트업들은 외주를 주던 영문 번역을 생성형 AI로 대체했다. 챗GPT는 GPT4의 출시로 GPT3.5 대비 한국어 능력이 월등히 좋아졌다. 때문에 구태여 비싼 돈을 내고 영문 번역 외주를 맡길 일이 없어진 것이다. 웹소설 시장에도 생성형 AI 바람이 불었다. 당초 100만원가량의 돈을 들여 외주를 맡기던 표지를 생성형 AI 그림으로 대체하는 식이다.
"AI 발달, '직장 양극화' 심화시킬 것"
그간 개발, 디자인 등 생산직 직군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챗GPT의 등장으로 이 같은 문제는 사라졌다.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은 모두 생성형 AI에 맡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단순 반복에 해당되는 업무들은 지속적으로 대체될 전망이다. 여기에 더해 생성형 AI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사회적, 기업적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업무 대체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인력 대체 속도의 증가는 직장 양극화의 가시화라는 결과를 낳는다. 생각해보라. 최저시급이 인상될 때마다 자영업자들은 앓는 소리를 내며 '다 죽는다'고 아우성쳤다. 그런데 생성형 AI 등 기술을 활용하면 단순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는 만큼 굳이 비싼 인력을 쓰지 않아도 된다. 최근 기계를 이용해 음식을 만듦으로써 인건비를 줄인 사장님들의 사례를 생각하면 쉽다. 요리사를 기계로 대체하듯, 간단한 업무를 행하는 직원도 AI로 대체되는 것이다.
반대로 챗GPT 등 AI가 진행할 수 없는 업무에 대한 역량을 가진 고급 인력의 채용 경쟁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AI가 간단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인건비로 지출하던 자금에 여유가 생기고, 이러한 여유 자금은 보다 능력있는 고급 인력을 채용하기 위한 발품팔이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과거 기술이 급진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던 때에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 바 있다. 신기술을 잘 이해하고 다루는 고학력자의 생산성과 보수는 높아지는 반면 자동화 기술의 발달에 따라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들은 기계로 대체되는 식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제조업과 사무직 중에서 중간 수준의 임금에 해당하는 일자리를 감소시킴에 따라 양극화 현상을 극대화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아직 AI로 인해 대량의 실업이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고 관측한다. AI 기술도 여타 기술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으로 투입되던 노동력을 절약하는 데 사용될 뿐, 인간의 일자리 자체는 앗아가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대량 실업 위기가 찾아왔으나 이것이 실현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역사적 분석도 함께 제시했다. 그러나 관성적인 낙관은 도태를 야기한다. 챗GPT의 등장으로 세계는 네 번째 물결을 맞이했다. 이번 제4의 물결에 인간이란 종족이 그대로 쓸려나갈 것인지, 굳건히 자리를 지킬 것인지는 오롯이 인간의 몫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