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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웨덴 기술사업화 포럼'이 오는 4월 19일부터 2일간 열린다. 이번 포럼은 스웨덴 왕립공학한림원과 과학기술사업화진흥, 창업진흥원이 양국의 창업 지원책과 기술사업화에 대해 공유하고, 분야별 투자정보 등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김봉수 과학기술사업화진흥원장은 "스웨덴을 시작으로 해외 기술사업화 거점을 늘리는 한편 해외 진출 모델을 정립해 K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확대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위한 협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창업진흥원과 K-스타트업 센터(KSC) 참여기업인 CN.AI(씨앤에이아이)가 만나 국내 창업기업의 글로벌 진출에 관해 소통한 바 있으며, 2019년 12월에는 국내 창업기업의 북유럽 진출 및 유망 창업기업 교류 협력을 위해 비즈니스 스웨덴과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비즈니스 스웨덴은 2013년 설립된 기관으로, 국내에도 진출해 한-스웨덴 양국 무역 투자 협력 촉진을 위한 ‘주한스웨덴무역투자대표부’를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과 스웨덴의 스타트업 생태계 간 협력이 활발해지고 있는 데에는 스웨덴의 기본 산업 구조 변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은 그간 자국의 경제를 지탱하던 ‘굴뚝 산업’ 의존에서 탈피해 ‘지식기반 산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말뫼의 눈물’로 유명한 옛 공업 도시 말뫼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철강 강국 스웨덴, 말뫼의 흥망성쇠
스웨덴 남부에 위치한 해안 도시 말뫼(Malmö)에는 120년간 말뫼 지역의 경제 기반이었던 코쿰스 조선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골리앗’으로 불리던 코쿰스의 갠트리 크레인은 그야말로 말뫼의 자부심 그 자체였다. 그런 코쿰스 조선소가 문을 닫은 건 1987년. 노르만족의 항해 역량을 토대로 발전을 거듭하며 조선 시장을 선도했던 스웨덴 대표 조선소가 한국 기업의 약진에 밀려 도산한 것이다. 당시 인구 20만 명이었던 말뫼의 실업자 수는 3만 명에 달했고, 도시는 점차 자족 기능을 상실해갔다. 골리앗 크레인은 20년 동안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가 무용지물로 전락해 2002년 9월 한국의 현대중공업이 해체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단돈 1달러’에 매각됐다. 스웨덴 국영방송은 당시 크레인이 해체돼 멀리 떠나는 모습을 보도하면서 장송곡을 틀고 ‘말뫼의 눈물’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몰락한 도시’, ‘암울한 도시’로 불렸던 말뫼. 20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의 모습은 어떨까. 지금은 청년들이 모인 IT와 미디어, 게임 등 지식 기반 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그야말로 180도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높은 실업률과 고령화로 몸살을 앓던 말뫼의 현재 평균연령은 36세로, 전체 인구의 약 40%가 29세 미만인 유럽의 대표적인 ‘젊은 도시’로 거듭났다. 창업 생태계가 다시 조성되자 20년 만에 인구는 다시 돌아왔고 새로운 일자리 6만3,000여 개가 창출됐다. 말뫼가 기존 공업도시의 이미지를 벗고, 첨단산업 도시로 혁신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말뫼에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된 것은 1995년 무렵부터다. 여기엔 19년간 말뫼시를 이끈 일마 리팔루 전 시장의 역할이 주효했다. 당시 말뫼시의 변화를 이끈 ‘핵심’은 크게 세 가지로 △대학 설립 △외레순드대교 건립 △친환경 주택단지 건설이었다.
특히 말뫼의 혁신에 정점을 찍은 것은 말뫼대 설립이었다. 말뫼를 지식 기반 산업도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들을 불러들일 대학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말뫼 인근에 명문대인 룬드대학이 자리 잡고 있는 만큼 경쟁에서 불리하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에 말뫼는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말뫼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만의 혁신을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IT 산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할 수 있는 친환경 뉴타운 터닝 토르소를 설립했다. 리팔루 전 시장은 이를 “도시 전체를 젊은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혁신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로 내놓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말뫼 시청 도시계획팀 관계자는 “새로운 회사를 찾고 새로운 종류의 일자리를 찾는 것은 교육과 연결돼 있다”며 “그래서 말뫼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시내 중심가에 대학교를 건립하고 친환경 에너지 자립 건물인 터닝 토르소를 세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골리앗이 떠난 자리를 메워준 다윗의 힘 ‘얀테라겐’
“실패와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 말라”. 데이비드 레가 스웨덴 당시 예테보리 부시장의 말이다. 이는 실패를 통해 전진할 수 있으며 타인의 시선을 벗어내는 순간 비로소 자신의 목표를 분명히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골리앗이 떠난 자리를 수많은 다윗이 채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가 있었다. 바로 ‘얀테의 법칙(얀테라겐, Jantelagen)’이다.
얀테의 법칙은 작가 악셀 산데모세의 풍자소설 ‘도망자 그의 지난 발자취를 따라서 건너다’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규칙을 잘 지키는’ 마을 얀테에서는 ‘잘난 척’하는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 인정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비판의 대상이 된다. 10가지로 구성된 얀테의 법칙은 모두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하거나 더 잘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한가지 생각으로 귀결된다. 즉 우월 의식과 돈만 좇는 무모한 경쟁에서 자유로워짐으로써, 유한한 자원이 아닌 지식 탐구라는 무한한 자원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스웨덴 대학 졸업생의 30%가 창업을 희망한다. 이는 얀테라겐에 따라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고 실패해도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지 않는 스웨덴 사회의 특징이 젊은 창업자들에게 훌륭한 동기부여가 됐다는 방증이다.
국가는 경제 성장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한다. 그러나 한 번 실패하면 영원히 패자로 낙인찍히는 사회에서는 반목과 갈등이 커지는 것은 물론 상호 간 불신과 불만이 잦아질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국가 발전 저해로 이어지게 된다.
스웨덴의 경우 기업가 정신이 번성할 수 있는 토양 위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적극 지원하는 분위기가 잘 조성되어 있다. 특히 비즈니스에 실패하더라도 개인 파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 덕분에 어떤 일이든 거침없이 도전하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다. 특기할만한 것은 창업의 목적이 돈이 아닌 유산이라는 점이다. 선순환 창업 생태계가 정착한 업계 내부적으로도 글로벌 스타트업 허브 역할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을 뛰어넘어 후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을 창출한다는 마음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런 만큼 정부 역시 더 크고 높은 비전을 갖고 스타트업을 지원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혁신의 날개 꺾는 규제 혁파 없이는 기적도 없다
한국과 스웨덴은 모두 우수한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와 높은 교육 수준, 대규모 R&D 투자 등을 기반으로 글로벌 혁신을 이끄는 국가로 손꼽힌다. 양 국가 모두 제조업 기반이 강하며, 디지털 산업이 발달된 수출 중심의 강소국이라는 점에서도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발표한 2022 세계혁신지수(Global Innovation Index)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57.8점으로, 2020년 10위에서 2022년 6위로 4계단 상승하며 랭킹에서 가장 큰 성과를 거둔 국가로 선정됐다. 스웨덴은 스위스, 미국에 이어 3위에 랭크됐다.
그러나 최근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빠르게 쇠퇴하면서 한국판 ‘러스트벨트(사양화된 공업지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산업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지난 시절 말뫼가 겪었던 일들이 우리 지방 도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만큼 말뫼의 흥망성쇠는 제조업 기반인 우리나라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조선 산업의 몰락 이후 ‘지식’에 기반한 첨단산업도시를 지향했던 말뫼는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때의 눈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코쿰스 조선소 부지에 말뫼대학교를 세웠고,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창업보육센터도 만들었다. 이렇게 건립된 대학, 기업, 연구소는 지방자치단체 및 정부와 서로 협력하며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말뫼에서는 하루 평균 7개 기업이 설립되고 있으며 파생되는 일자리도 수만 개에 달한다. ‘말뫼의 눈물’이 ‘말뫼의 기적’이 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말뫼의 기적을 능가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국가다. 기술에 대한 자신감과 위기 극복 역량은 우리에게도 있다. 그러나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의 분위기나 스타트업과 이인삼각으로 함께 달려줄 정책은 없다. 스타트업 성장의 싹을 짓밟는 규제와 까다로운 절차, 그리고 기득권의 편에 선 채 혁신의 날개를 꺾는 정치권만 있을 뿐이다. 1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영국이 자동차 산업에서 우위를 선점하지 못한 이유가 마차 사업자의 기득권 옹호를 위한 ‘적기조례’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글로벌 기업들과의 만남을 넘어 낡은 규제를 혁파하고 선진국 수준의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에 진력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