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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 시간) 애플이 세계개발자회의(WWDC) 첫 날 행사에서 새 맥북 시리즈, iOS 17과 함께 VR기기로 추측됐던 '애플 비전 프로(Apple Vision Pro)'를 발표했다.
혼합현실(Mixed Reality, MR)을 내세우며 그간 VR기기들의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 넣는 발표가 이어졌으나,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에 대한 언급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머신러닝'은 나오고 '인공지능'은 없었던 애플 키노트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알파벳(구글 모회사), 아마존이 지난 4월에 1분기 실적 보고 중에 합계 168번이나 언급했던 AI가 이번 애플 키노트 발표에서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AI를 언급할 수 있는 장면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보이스 메일 및 회의 내용을 문자로 바꿔주는 서비스, 주변 소음을 제어하는 에어팟, 자동완성 보완 등에서 충분히 AI를 언급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애플이 고의적으로 언급을 피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애플 CEO인 팀 쿡과 애플 주요 경영진은 일반적으로 '유행어(Buzzword, 버즈워드)'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애플이 직접 버즈워드를 만들어내는 경우는 있어도 다른 기업들이 만들어 낸 버즈워드를 따라가는 것을 피한다는 것이다. MP3 플레이어도 아이팟(iPod)가 대명사가 될 수 있도록 버즈워드 사용을 피했던 것을 예로 들었다.
이어 애플이 항상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개인 성향에 맞춘 음량 조절' 같은 서비스를 실제 활용 기술인 '머신러닝'으로 언급하는 것은 경영진에서 납득하지만 막연히 AI라고 언급해서 부정확한 정보가 전달되는 것은 피하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메타버스 설명에서도 이어진 '버즈워드' 회피
팀 쿡은 이어진 메타버스 설명에서도 메타버스라는 용어 대신 애플 비전 프로 활용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역시 메타버스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지난해 한 네덜란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일반인들이 메타버스라는 용어를 이해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며 "우리 상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답변한 바 있다.
애플워치로 제공되는 여러 서비스 중 긴급구호요청(SOS) 등은 업계에서는 AI 서비스로 인식하고 있으나 애플에서는 인공지능이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유사한 기능인 음성 비서 서비스 애플 시리(Siri)에 대해서도 생성형 AI 서비스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해석임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한 번도 언론에 생성형 AI 서비스에 대해 언급한 사례가 없다.
실리콘밸리 전문가들은 애플이 과거에도 버즈워드를 언급하기보다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 마케팅에 활용했던 점과 법정 소송 등을 우려해 정확한 용어 사용을 강조하는 사내 분위기가 있는 만큼,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의 주요 유행어가 애플의 상품 광고에 등장할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진짜 인공지능이 아닌 서비스가 인공지능으로 불리는 것은 피해야
국내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생성형 AI의 시대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재 인공지능이라고 불리는 서비스가 특정 데이터에서 자주 나타나는 패턴을 찾는 계산과학 알고리즘일 뿐, 자체 사고력을 갖춘 인공지능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스위스 AI대학의 인공지능/데이터과학 학장을 맡고 있는 이경환 교수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계산과학 알고리즘이라고 오랫동안 설명해 왔음에도 기업들의 마케팅에 언론과 시장이 끌려가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현재까지 학계에서 만들어 낸 알고리즘의 교과서적인 공식 명칭은 여전히 '기계학습(머신러닝)'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인공지능에 해당하는 '강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를 마케팅에 쓰는 것이 자칫 사후적으로 법정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위스 인공지능 어워드(Swiss AI Award)'를 이끌고 있는 파스칼 카프만(Pascal Kaufmann)은 데이터 의존형 계산 알고리즘을 인공지능으로 부르다 진정한 인공지능이 나오게 되면 서비스 혼선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