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올해 들어 기업공개(IPO) 재도전에 나서고 있다. 작년에 비해 IPO 환경이 좋아졌다는 기대감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바이오 생태계는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는 모양새다. 벤처투자 혹한기가 지속되며 자본금이 말라붙은 것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IPO 재도전의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 차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벤처 생태계 활성화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모양새다.
오상헬스케어 등 바이오사, IPO 재도전 시도 나섰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체외진단 업체 오상헬스케어는 지난 9일 코스닥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를 청구했다. 예비심사는 해당 업체가 상장자격을 갖췄는지 평가하는 절차다. 이로써 오상헬스케어는 약 2년 만에 코스닥 상장 재도전에 나섰다. 오상헬스케어는 지난 2021년 상장을 추진했으나 한국거래소로부터 '미승인' 통보를 받은 바 있다.
당시 오상헬스케어는 오상그룹에 인수되기 전 감사 의견거절로 인한 상장폐지 이력(당시 사명 인포피아), 경영진 횡령 사건 등에 발목이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진단키트 업체로서 수익 지속성에 대한 우려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오상헬스케어는 지난 2년간 경영권 안정화, 내부통제 강화 등을 꾀하면서 체질 개선에 나섰다. 외형 성장이 지속된 것도 긍정적인 부문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오상헬스케어는 2021년 1,323억원, 2022년 1,939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특히 경쟁사들 매출이 급감한 올해 1분기에도 2,855억원의 역대 최대 실적을 내보였다.
신약 개발 기업 디앤디파마텍은 상장예비심사에서 낙방한 지 1년 만에 다시 코스닥 상장에 나섰다. 이슬기 존스홉킨스의과대학 교수 등이 설립한 디앤디파마텍은 파킨슨병·당뇨·비알콜성지방간질환 치료제 등을 개발하는 신약기업으로, 2020년 기술성평가를 통과해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제출했으나 2021년 한국거래소로부터 미승인 결과를 받았다. 2021년 10월 또 한번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으나 이번에도 디앤디파마텍은 승인받지 못했다. 3수에 걸친 도전 끝에 디앤디파마텍이 승인 결과를 받아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ADC(항체·약물접합제) 플랫폼 및 표적항암제 전문업체 피노바이오도 1년 만에 IPO 재도전에 나섰다. 피노바이오는 IPO 첫 도전 시기인 2021년 첫 관문인 기술성평가에서 바로 좌절을 맛봐야만 했다. 같은 해 9월 피노바이오가 기술성평가에서 A, BB 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을 위해서는 한국거래소가 지정한 평가기관 2곳에서 A, BBB 이상의 등급을 받아야 한다. 다만 올해 1월 피노바이오는 기술성평가에서 A, BBB 등급을 받으면서 기본 요건을 충족했고 4개월 만인 지난달 예비심사를 청구했다.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CAR-T) 기술을 통해 항암제를 개발하는 큐로셀도 IPO를 통한 코스닥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하고 나섰다. 앞서 큐로셀은 올해 초 두 번째 기술성평가에서 A·BBB 등급을 받은 바 있다. 첫 기평 고배를 마신 지 약 10개월 만에 재도전에 성공한 것이다.
IPO 환경 개선됐단 기대감 ↑
이외에도 의약품 품질관리 및 CRO 업체 에스엘에스바이오, 항체 신약 개발 업체 와이바이오로스직스, 펩타이드 신약 개발 업체 엔솔바이오사이언스, 의료 AI 개발 업체 코어라인소프트 등도 올해 코스닥 상장 재도전에 나섰다. 특히 에스엘에스바이오는 코스닥 이전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당초 에스엘에스바이오는 바이오벤처 기업으로서 지난 2016년 코넥스 시장에 상장한 바 있다. 이번 IPO를 통해 '업그레이드'를 시도하는 모양새다.
에스엘에스바이오와 비슷한 시도를 하는 기업으로는 체외진단검사서비스·의료IT솔루션 기업 유투바이오, 세포 전처리 자동화기기 등 제조기업 큐리옥스바이오시스템즈 등이 있다. 이들 기업은 모두 코넥스 시장에서 코스닥 시장으로 이전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바이오 기업들이 IPO 및 코스닥 이전 상장 시도를 이어가는 건 최근 들어 바이오섹터의 상승장이 형성되고 타 업체의 코스닥 입성 성과도 상대적으로 늘어난 점을 고려한 결과인 것으로 풀이된다. 즉 작년보다는 IPO 환경이 나아졌단 기대감이 형성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현 윤석열 정부는 바이오 산업을 육성하겠단 내용의 정책을 다수 꺼내 들고 있다. 아직 IPO 타이밍이 완전히 좋다고 볼 수는 없음에도 바이오 기업들이 IPO에 나선 건 이 같은 정부의 바이오 육성 비전이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겠다.
IPO 재도전 시도, 바이오 생태계 회복으로 보기엔 무리 있어
다만 이 같은 현상을 바이오 생태계의 회복으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바이오 계열에 벤처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투자금이 말라가니 일단 IPO를 통해 돈을 가져오자는 게 기업들의 대체적인 목표인 것으로 보인다. 즉 윤석열 정부가 바라는 만큼 바이오 시장이 활성화될 때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란 의미다.
실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주식시장 상장을 추진 중인 제약바이오기업 14곳 중 9곳의 영업실적과 재무 구조가 우려할 수준이었다. 이들이 특례상장 코스로 주식시장에 입성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영업·재무 구조가 지속될 경우 한국거래소로부터 관리 종목으로 지정될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의 관리 종목 지정 사유로는 매출 30억원 미만, 4년 연속 영업손실, 자본잠식률 50% 이상 또는 자기자본 10억원 미만 등이 있다. 법인세 차감 전 계속사업 손실(법차손) 규모가 자기자본의 50%를 초과하는 경우가 최근 3년 내 2회 이상일 때도 관리 종목으로 지정된다. 관리 종목으로 지정된 이후 해당 사유가 해소되지 않으면 이듬해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14개 기업의 작년 사업·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중 4곳이 2021·2022년 연속으로 매출이 30억원 미만이었으며, 9곳은 2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기술성이 있고 연구개발 투자가 많은 연구개발 기업은 장기 영업손실로 인한 관리 종목 지정이 한시적으로 면제되긴 하나, 이들 기업들 중 이 같은 기준에 발맞출 수 있는 기업이 몇이나 될까.
'M&A' 고려해야 한단 목소리도
최근 몇 년 새 국내 바이오 업계는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으나 작년부터 자본시장이 말라붙으며 대부분의 기업들이 큰 어려움에 처했다. 유일한 탈출로로 꼽히던 IPO마저 어려워진 형국이다. 사실상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자구책을 마련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업계 일각에선 M&A가 새로운 대안으로 고민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한다. IPO에 어려움이 큰 현시점에서 가장 확실한 대책 방안은 M&A라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바이오 업계에선 M&A 사례가 산발적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유한양행이 다중표적 항체 기술을 보유한 프로젠을 300억원에 인수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유한양행은 프로젠의 구주와 신주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회사 지분 38.9%를 확보해 단일 최대주주가 됐다.
미국 등 선진 자본시장에선 M&A를 통한 엑시트(EXIT)가 이미 꽤 활성화되어 있다. 국내에서도 M&A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단 측면에서 유한양행의 프로젠 인수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다만 여전히 업계 전반으로 보면 M&A를 위한 자본금이나 수요는 부족한 상황이다. IPO 상황도, M&A 상황도, 마냥 긍정적이진 못하다는 것이다. 국내 바이오 업계가 처한 현실이다. 정부 차원에서 보다 확실한 성장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한 이 같은 현황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