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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방송작가 1만1,000여명이 소속된 미국작가조합(WGA)의 파업이 지난 5월 2일 시작된지 2개월 넘게 지속되고 있다. 이에 TV와 영화 등 영상 제작물의 현장 촬영 및 제작 업무가 차질을 빚으면서 30% 가까이 급감했다. 일각에서는 할리우드 산업 자체가 쇠퇴하고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여기에 더해 약 16만 명의 배우들이 소속된 미국배우·방송인노동조합(SAG-AFTRA)도 지난 14일부터 파업에 나섰다. 배우조합의 파업은 1980년 이후 43년 만이며, 양대 노조의 동반 파업은 1960년 이후 63년 만의 일이다. 할리우드 양대 노동조합의 총파업 여파는 LA와 캘리포니아 경제 문제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SAG-AFTRA 및 WGA 파업의 핵심 이슈
주요 쟁점은 OTT 산업의 발달과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인해 변화된 시스템에 적용할 새로운 계약 조건이다. SAG-AFTRA는 OTT 서비스가 창작자들의 임금 인상을 막고 경력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AI 기술을 겨냥해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AI 기술로 인해 자신들이 만든 결과물을 평가 절하되고 있으며, AI 기술이 자신들을 대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SAG-AFTRA는 지난 6월 7일 파업 승인 투표를 시작하고 AMPTP와 교섭을 이어왔으나 합의는 끝내 결렬됐다. 프랜 드레셔 SAG-AFTRA 회장은 이번 파업이 "배우들의 매우 중요한 순간에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든 노동 분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며 "고용주들이 월가와 탐욕을 가장 우선시하고 (업계를) 돌아가게 만드는 필수 기여자들을 잊고 있다"고 덧붙였다.
메릴 스트립, 제니퍼 로렌스, 샤를리즈 테론, 호아킨 피닉스 등 할리우드 대표 배우를 포함한 약 1,000명의 배우들도 이번 협상과 관련해 SAG-AFTRA 지도부에 서한을 보내며, 동료 배우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위해 굳건히 맞서 싸울 것을 촉구했다. 이에 당시 SAG-AFTRA는 협상 기한을 6월 30일에서 7월 12일 오후 11시 59분으로 연장해 논의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7월 13일 SAG-AFTRA는 AMPTP와의 협상 실패를 확인하고 결국 파업을 선언했다. 협상 결렬의 원인으로는 AMPTP가 제시한 인색한 협상안을 꼽았다. 프랜 드레셔는 AMPTP의 배우 처우에 대한 실망감을 표명하면서 AMPTP가 업계의 주요 기여자보다 금전적 이익을 우선시한다고 비난했다.
창작자 vs 제작자
2012년 영화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SAG)과 미국 텔레비전 및 라디오 아티스트 연맹(American Federation of Television and Radio Artists·AFTRA)이 통합된 이후로 SAG-AFTRA는 영화배우와 TV 및 라디오 방송 아티스트를 대표하고 있다. SAG-AFTRA는 현재 영화 스튜디오, 방송사, OTT 제작자들로 구성된 영화 및 텔레비전 제작자 연합(AMPTP)과 갈등을 빚고 있다.
워너 브라더스, 디즈니, 넷플릭스 등 주요 스튜디오 및 OTT 플랫폼 업체 경영진은 3년마다 배우, 감독, 작가와 임금 및 권리를 놓고 협상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일반적으로 협상은 차질 없이 진행되지만, 파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작가 노조와 배우 노조가 동시에 파업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사실 노조들의 동반 파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60년에도 공동 파업이 있었다. 당시 신산업인 TV 방송이 도입되면서 영화가 방송 채널에서 방영될 경우 영화 판매액을 수익에 포함할지 여부를 둘러싸고 6주 동안 파업이 벌어졌다. 1960년 초에 시작된 WGA의 파업은 그 해 중반까지 이어졌다. 미국 스튜디오가 작가에게 정당한 보상을 주지 않고 방송사에 영화를 판매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었다.
같은 해에 함께 진행됐던 SAG 파업도 WGA와 동일한 재상영분배금(Residual)을 이슈로 진행됐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배우였던 시절 직접 파업을 이끌었고 3월 7일부터 4월 18일까지 약 한 달간 진행됐다. 이처럼 올해 파업은 63년 전의 우려와 평행이론을 그리고 있다. 방송사에서 OTT로 바뀌었을 뿐, 현재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WGA의 요구 사항
WGA도 SAG-AFTRA보다 앞선 지난 5월 2일부터 AMPTP를 상대로 파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AMPTP가 무시로 일관하면서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작가들은 왜 파업에 나섰을까. 구독자를 사로잡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쏟아내야 하는 OTT 서비스의 특성 탓에 작가들의 업무량이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익은 저하됐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존 할리우드 TV 드라마의 경우 시즌당 22편 정도지만, 스트리밍 오리지널은 많아야 12편에 그친다. 그러나 각 에피소드 길이는 더 길어졌다. 에피소드당 보수를 지급받는 작가들은 더 많은 일을 하고도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셈이다. 게다가 OTT를 통해 방영된 작품들은 재상영분배금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에 WGA는 △에피소드 수에 따른 프로그램당 최소 작가 수 △10주에서 52주 동안의 고용 보장 △프로그램 성공에 상응하는 스트리밍 수수료 등을 요구하고 있다.
불타는 할리우드
이번 파업은 단순히 배우들의 연기 활동 중단으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노조원은 파업 기간 동안 영화 또는 TV 프로그램 촬영, 코믹콘, 오디션, 의상 및 분장 테스트, 인터뷰, 시사회, 투어, 시상식 등 대부분 공식 활동에 참여할 수 없다. 이로 인해 <바비>, <오펜하이머> 등 예정돼 있던 각종 영화 이벤트가 취소되기도 했다.
파업으로 할리우드 영화와 TV 프로그램 대부분이 중단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독립 제작사만은 제작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영화제작사 A24는 이번 파업에서 예외가 허락돼 배우와 작업이 가능하다. 작가 및 배우 노조가 원하는 조건을 전부 수용했기 때문이다.
현재 드라마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즌2>, <안도르 시즌2>, <화이트 로투스 시즌3>를 비롯해 영화 <글래디에이터2>, <모탈 컴뱃2>, <위키드>, <스픽 노 이블> 등 이미 제작 중인 다수의 프로그램과 영화가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CNN은 이번 파업이 조속히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할리우드 업계가 40억 달러(약 5조1,064억원) 이상의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