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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LLM ‘제미니’ 공개, 사람처럼 사물 인식·판단한다 2천 명 이상 AI 연구원 및 엔지니어들 대거 투입 메타·IBM 연합군, X.AI, 아마존 등도 AI 전쟁에 도전장
구글이 초거대언어모델(LLM) 기반의 차세대 인공지능(AI) 모델 ‘제미니’(Gemini)를 내놨다. 이번 구글의 차세대 AI 출시로 오픈AI와 손잡은 마이크로소프트(MS), ‘인공지능 동맹’에 나선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3대 진영’으로 이합집산해 경쟁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구글의 비밀병기 ‘제미니’, GPT4·인간 능력 초월
6일(현지시간) 구글이 생성형 AI 선두주자인 오픈AI GPT-4의 대항마 ‘제미니(Gemini) 1.0’을 공개했다. GPT-4를 능가하는 현존 최고 수준 성능을 갖춘 AI 모델이라고 자랑할 만큼 야심 차게 내놓은 구글의 차세대 AI 모델이다. 제미니는 오픈AI의 GPT와 달리 개발 단계부터 이미지를 인식은 물론, 음성으로 말하거나 들을 수 있으며 코딩을 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춘 ‘멀티모달 AI’로 구축됐다. 텍스트 데이터만 학습한 AI 모델과 다른 방식이다. 텍스트, 코드, 오디오, 이미지, 동영상 등 다양한 유형의 정보를 이해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실제로 제미니 테스트 결과들을 보면, 그저 인형을 보여주기만 했을 뿐인데 고무 소재의 파란색 오리 모양인 걸 맞히거나, 초록색 실과 분홍색 실을 보고는 과일 드래곤 프루트(용과)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자동차 그림을 제시하며 디자인상 속도의 차이를 묻자 “오른쪽 차량이 공기 저항에 더 유리하다”는 식으로 답하는가 하면, 두 장의 사진을 보고 유사성을 찾아내기도 했다. 일반 사진을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에 맞는 SVG(벡터 그래픽 형식)로 변환하는 것은 물론 HTML, 자바스크립트로 표현하는 코딩에도 능했다.
구글에 따르면 제미니 울트라는 32개의 학술 벤치마크(성능 지표) 중 30개에서 GPT-4를 앞섰다. 특히 수학, 물리학, 역사, 법률, 의학, 윤리 등 57개 과목을 조합해 지식, 문제 해결 능력을 테스트하는 ‘MMLU(대규모 다중 작업 언어 이해)’ 영역에서 90%의 점수를 획득, 최초로 인간 전문가를 능가했다. GPT-4의 MMLU 점수는 86.4%였다.
제미니는 구글이 자체 개발한 AI 칩(TPU v4·v5e)으로 학습했다. 구글은 최첨단 AI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해 설계한 최신 칩(클라우드 TPU v5p)도 공개하며 제미니의 향후 개발을 가속화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첫 번째 버전인 제미니 1.0은 구글 딥마인드의 비전을 처음으로 실현했다”며 “앞으로 펼쳐질 일과 제미니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열어줄 기회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설명했다.
가장 범용으로 쓰이는 '제미니 프로'는 이날부터 구글의 AI 챗봇 서비스인 바드에 탑재된다. 바드에는 지금까지 팜2(PaLM2)가 탑재돼 있었다. 제미니 프로가 적용된 바드는 170개 이상 국가 및 지역에서 영어로 제공되며, 향후 서비스 확장 및 새로운 지역과 언어도 지원된다. 가장 크고 고성능인 '제미니 울트라'는 내년 초 '바드 어드밴스트'라는 이름으로 바드에 장착된다. '제미니 나노'는 클라우드 연결 없이 디바이스 자체에서 가벼운 AI를 즉각적으로 활용하는 온디바이스 형태로 접목되며, 구글이 지난 10월 공개한 스마트폰인 '픽셀8 프로'에 탑재될 예정이다.
사실 지난해 11월 오픈AI가 챗GPT를 처음 공개했을 때만 해도 구글은 무방비 상태였다. MS가 오픈AI에 거액을 투자하면서부터는 수년간 지배해 왔던 검색 시장의 주도권마저 뺏길 판이었다. 이에 구글은 지난 3월 즉각 자체 챗봇인 바드를 출시했고, 4월에는 AI 조직인 구글브레인과 딥마인드를 ‘구글 딥마인드’로 통합한 뒤 2,000명 이상의 AI 연구원과 엔지니어를 끌어모아 자원을 집중 투입했다. 이후 9개월여 만에 GPT-4를 능가하는 기능을 갖춘 AI 모델 제미니를 출시한 것이다.
초거대 AI 패권 전쟁 3파전
앞으로 초거대 AI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각축전은 더욱 격화할 전망이다. 현재 AI 시장에서는 지난달 오픈AI가 샘 알트만 CEO 축출 사태로 혼란에 빠진 틈을 타 후발주자들의 추격이 거세지고 있는 모양새다. 구글이 독자 노선을 걷고 MS가 오픈AI와 연대를 했다면, 후발주자인 메타와 IBM은 50개사와 함께 'AI 동맹(AI Alliance)’을 결성하는 방식으로 패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동맹에는 산학연이 고루 이름을 올렸다. 우선 인텔, AMD, 오라클 등 미국의 반도체·IT 대기업을 비롯해 스태빌리티AI, 허깅페이스 등 생성 AI 스타트업들도 참여한다. 예일대, 코넬대, 도쿄대 등 유수의 대학과 항공우주국(NASA), 국립과학재단(NSF) 등 미국 정부기관들도 동참했다.
이들은 기술을 무료로 공유하는 오픈소스를 뿌리에 두고 ‘개방형 혁신’에 나설 계획이다. 다리오 길 IBM 수석부사장은 “지난 1년간 AI에 대한 논의는 생태계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해 불만족스러웠다”고 했다. 이 같은 이유로 올해 8월부터 오픈AI 만큼 주목 받지는 못했던 기업들을 모아, 동맹을 결성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동맹은 오픈소스 확산을 위해 △AI 알고리즘을 평가하는 공통 프레임워크 구축 △AI 연구자금 마련 △오픈소스 모델에 대한 협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AI 경쟁이 격화하는 이유는 디지털 세계의 패권이 AI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생성형 AI 시장 규모는 2023년 438억 달러(약 57조원)에서 2030년 6,679억 달러(약 876조원)로 연평균 47%씩 폭증할 전망이다.
초거대 AI를 둘러싼 전쟁은 빅테크 3대 진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이끄는 AI 스타트업 X.AI는 5일(현지시간) 미국 규제 당국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최대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 조달을 추진 중이라고 공시했다. SEC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X.AI는 이미 4명의 투자자로부터 1억3,470만 달러(약 1,761억원)의 자금을 모집했다. 오픈AI를 공동 창업한 바 있는 머스크는 올해 7월 별도 AI 기업을 설립하고 소셜미디어 엑스(X)에서 서비스되는 챗봇 '그록(Grok)'을 공개한 상태다. 아마존웹서비스(AWS) 역시 지난달 텍스트를 통한 의사소통으로 문서 요약과 자료 생성, 코드 작성 업무를 도와주는 기업용 생성형 AI 챗봇 '아마존Q'를 전격 공개했다. 구글 클라우드, MS 애저 같은 클라우드 분야 경쟁사가 잇달아 생성형 AI를 탑재하자 반격에 나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