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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폴리시] 유럽 학술지 평가 체계, 연구 품질에 초점 맞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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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onths 3 wee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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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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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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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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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상위 경제학 학술지, 미국 연구자 비중 과도
연구 평가 기준을 투명성 검증 가능성 분석 공개로 전환 필요
제도화로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학술지 구조 구축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계 상위 경제학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의 약 3분의 2는 미국 기반 연구자의 집필로 나타났다. 최상위 일부를 제외하면 이 비율은 거의 변하지 않았으며, 비미국권 연구자의 비중 증가는 주로 상위 25위 밖 학술지에서만 확인됐다. 이는 유럽 연구 환경이 지닌 구조적 제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럽은 이미 세계적 수준의 연구 역량을 갖추고 있다. 2024년 유럽연구위원회(ERC)의 연구비 수주 실적이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현행 평가 체계는 여전히 협소한 범주의 학술지 권위를 우선시하고 있어 다양한 연구 성과가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학술지 순위를 늘리거나 미국식 위계 구조를 모방하는 방식은 해법이 될 수 없다. 연구 방법과 운영 원칙을 우선하는 평가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학술지 개혁, 평가 기준 재설정 필요

지금까지 제시된 해법은 채용·승진 평가에서 인정받는 학술지 목록을 넓히는 것이었다. 이는 일정 부분 효과를 낼 수 있으나, 결국 학술지 간판이 연구의 질보다 우선하는 구조를 유지하게 만든다.

실증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 고전 연구는 톱5 학술지가 연구자의 전체 성과와 무관하게 종신 재직 심사에서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분석했다. 최근 분석에서도 비미국권 연구자는 최상위 학술지에서 성장이 거의 없었고, 오히려 100위 이하 학술지에서만 증가세가 확인됐다. 편집 권한 역시 소수 기관과 개인에게 집중돼 있어, 경쟁은 과열된 반면 심사 인력은 제한적이고 진입은 더딘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목록을 넓히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유럽은 평가 기준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 대학과 정부 부처는 연구 과정의 투명성, 데이터·분석 절차 공개, 결과의 검증 가능성을 핵심 지표로 삼아 채용과 승진을 연계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이 자리 잡을 때, 학술지의 간판이 아니라 연구의 신뢰성과 타당성이 평가의 중심으로 설 수 있다.

제도 실행 역량 확보

유럽은 이러한 변화를 실제로 추진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2024년 ERC의 초기·중견·선도 연구자 지원 결과 사회과학·인문 분야에서 수백 건의 연구비가 배정됐고, 성공률은 약 14%에 달했다. 유럽연합(EU)의 대형 연구 지원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이 이 기회를 확대했고, 2024~2025년 영국의 재가입으로 협력 네트워크는 한층 더 넓어졌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연구 평가 방식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재현성 검증을 의무화하고, 등록 보고서를 제도화하며, 분석 과정을 공개하는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실천을 점수화해 채용위원회 간에 공유하는 방식도 도입할 수 있다. 예컨대 ERC가 인증 배지를 통해 공개 코드, 사전 분석 계획, 외부 검증을 확인한다면 해당 논문이 비전통적 학술지에 실렸더라도 채용 과정에서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 연구비 지원 기관이 동시에 평가 기관의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개발 경제 저널 오픈액세스 비중 변화 (단위: %)
주: 학술지명(X축), 오픈액세스 논문 비중(Y축)/2020년(연한 빨강), 2024년(진한 빨강)

학술지 신뢰, 운영이 관건

현재 주요 경제학 학술지의 평균 사전 탈락률은 72%에 이른다. 외부 심사까지 진행된 논문의 채택률은 약 39%에 불과하며, 일부 학술지의 전체 채택률은 3%에 그친다. 2016년 이후 투고가 급격히 늘면서 편집 역량에 대한 압박은 더 커졌다.

이런 환경에서 속도와 공정성을 보장하는 힘은 운영 절차에서 나온다. 단문 논문 전용 심사 트랙, 연구 설계의 사전 등록 확인, 초기 결정의 기한 설정이 대표적이다. 학회가 운영하는 학술지는 신뢰할 수 있는 편집진, 명확한 목표, 집행 가능한 정책이 결합될 때 명성을 빠르게 쌓을 수 있음을 이미 보여줬다. 유럽은 유럽경제협회(EEA), 왕립경제학회(RES), 유럽경제정책연구센터(CEPR), 각국 학회와 함께 이러한 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

유럽 학술지 개혁, 반론과 우려

유럽 학술지 개혁 구상에는 여러 반론이 따른다. 유럽이 자체적으로 최상위 학술지 집단을 만들 경우, 학계 내부에만 머무는 폐쇄적 구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소수 미국 학술지에만 연구 성과가 집중되는 현 체제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지금의 구조는 평가 기준을 협소하게 만들고 학문적 다양성을 제약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또 다른 우려는 개혁이 방법론만 강조할 경우, 연구의 참신성이 소외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설계의 엄격함이 뒷받침되지 않는 새로움은 학문적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등록 보고서와 사전 분석 계획을 실증 연구의 기본으로 삼고, 혁신적이지 않더라도 식별력과 측정이 확실한 논문에는 신속 심사 경로를 제공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최근 복제 연구는 다수의 결과가 계산상으로는 재현 가능했으나, 효과 크기는 원래보다 줄어드는 경우가 많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재현성과 신뢰성을 평가 지표에 포함하면 연구자들은 더 정교한 설계를 추구하게 되고, 결과가 유지되지 않을 경우 빠르게 정정할 수 있다.

국제적 영향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학술지의 힘은 결국 유용성에서 비롯된다. 유럽 학술지가 연구 방법과 데이터 공유의 허브로 자리 잡는다면 국제 독자층은 자연스럽게 확대될 것이다. 최근 신설 학회지가 빠른 속도로 영향력을 확보한 것도 저자와 독자의 실제 요구를 충족했기 때문이다.

유럽이 복제 연구 기금과 ERC식 인증 배지를 마련해 이를 채용 평가에 반영한다면 새로운 대안 경로가 열릴 것이다. 이는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연구자들에게도 공정한 진입로를 제공한다. 실제로 상위 학술지의 세계적 저자 구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방법론을 우선하는 유럽은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열린 무대를 마련할 수 있다.

교육과 연구를 함께 바꾸는 힘

경제학 교육은 본보기로 작동한다. 대학원생이 학문적 성과가 소수 학술지의 이름값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면 연구 방향 역시 학술지 위상에 맞춰지게 된다. 반대로 분석 과정 공개, 철저한 연구 설계, 복제 검증이 실제 평가와 보상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확인한다면 연구자는 저널의 간판이 아니라 연구의 품질에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통계 교육, 연구팀 훈련, 나아가 정부 부처와 중앙은행의 연구 활용 방식까지 바꾼다. 특히 빠르게 변하는 정책 환경에서는 명확하고 재사용 가능하며 검증이 쉬운 연구가 필수적이다. 유럽은 기존 위계 구조를 답습하는 대신 연구의 기준 자체를 새롭게 세움으로써 학문과 정책 현장을 동시에 이끌 수 있다.

방향 전환의 과제

세계 상위 학술지는 특정 지역에 편중돼 있고 다양화 속도는 더디다. 단순히 인정받는 학술지 목록을 넓히는 방식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핵심은 연구 방법의 투명성과 검증 가능성을 평가와 보상 체계에 직접 연결하는 것이다.

유럽은 이미 연구비와 제도적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이를 활용해 연구 검증을 지원하고, 채용과 평가에 반영하며, 학술지 운영에 제도화해야 한다. 이렇게 체계를 바꾸면 명성은 뒤따른다. 학계와 정책 현장은 결국 실질적 가치가 있는 연구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실행이다. 승진 기준에 연구 검증을 반영하고, ERC와 호라이즌 프로그램에 복제 연구 예산을 포함하며, 모든 대학이 채용 규칙을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학문의 주류는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질서가 아니라 평가와 보상 체계가 만드는 결과다. 체계를 바꾸면 연구의 지형도 달라진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uropean Economics Journals Reform: Build Quality Before Prestige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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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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