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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T시스템스 인수로 엔비디아와 경쟁 박차
리사 수 CEO "자체 서버 체계 구축 능력 강화"
엔비디아 로드맵 맞춰 신제품 출시도 본격화
미국 반도체 설계기업 AMD가 서버 제조업체 ZT시스템스를 인수한다. 인공지능(AI) 칩 선두주자 엔비디아를 따라잡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엔비디아 대항마로 불리는 AMD가 치열한 경쟁을 위한 카드를 하나둘 모으며 심기일전하는 모습이다.
AMD, ZT시스템스 49억 달러에 품었다
19일(현지시간) AMD는 ZT시스템스를 49억 달러(약 6조5,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인수 비용의 75%는 현금, 나머지는 주식으로 거래한다. ZT시스템스는 미국 뉴저지주에 위치한 비상장 기업으로 대규모 데이터센터용 서버 컴퓨터 등의 하드웨어를 설계하고 제조한다. 연간 약 100억 달러(약 13조3,000억원)의 매출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 완료 후 ZT시스템스는 AMD의 데이터센터 솔루션 비즈니스 그룹에 편입돼 AMD가 개발하는 AI 칩 성능을 테스트하게 된다. AMD는 ZT시스템스의 엔지니어의 합류로 회사가 최신 AI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더욱 빠르게 테스트하고 출시해 마이크로소프트(MS)와 같은 대규모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이 요구하는 규모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날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는 “AI 시스템은 자사 최우선 전략적 우선순위”라고 강조했다. 이어 “(ZT시스템스가) 회사에 부가가치를 더해주는 주된 방법은 더 많은 GPU를 판매할 수 있게 하도록 것”이라고 덧붙였다.
AMD는 슈퍼마이크로컴퓨터, 델과 같은 서버 제조업체와 경쟁할 계획이 없으며 인수가 완료되면 ZT시스템스의 서버 제조 사업을 분리해 매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당 업체들은 AMD의 칩을 구매해 자사 서버에 탑재한다. 다만 마더보드, 전력, 열, 네트워킹 및 랙 설계에 대해 깊은 전문성을 갖춘 약 1,000명의 엔지니어는 회사에 남게 된다고 전했다. AMD는 이번 거래가 내년 상반기에 완료되며 서버 제조 사업 매각에는 12~18개월이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AMD는 이번 인수를 통해 최근 수년간 데이터센터 제품군을 공격적으로 늘려왔던 엔비디아에 맞선 입지를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현재 AMD는 AI 훈련용 AI칩을 생산하고 판매하고 있지만,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한 엔비디아에 비해선 여전히 존재감이 작은 편이다. 테크 업계에선 AMD와 엔비디아의 격차를 만든 가장 큰 이유는 AI칩 자체의 성능보단 기존 데이터센터에 신규 AI칩을 쉽게 연결할 수 있는 AI시스템 설계 능력에서 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AMD가 이번 거래로 AI 시스템을 강화해 엔비디아와 경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뉴스트리트리서치의 피에르 페라구(Pierre Ferragu) 애널리스트도 "고객들은 엔비디아 시스템을 AI 센터의 보다 까다로운 작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AMD 제품은 주로 AI 시스템에서 더 쉽고 소규모인 사례에 활용해 왔다"며 "이번 거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AMD가 적용할 수 있는 사용 사례 범위를 넓히는 매우 가치 있는 추가 인수"라고 평가했다.
사일로AI·노드AI·밉솔로지 등 인수도
이번 거래는 지난 2022년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를 다루는 자일링스 인수 다음으로 AMD가 진행하는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의 거래다. AMD는 지난달 핀란드 스타트업 사일로AI도 6억6,500만 달러(약 9,200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핀란드 헬싱키에 본사를 둔 사일로 AI는 북유럽권 최고의 AI 스타트업으로 꼽힌다.
기업을 상대로 스웨덴어, 아이슬란드어, 덴마크어 등 유럽 언어들을 지원하는 맞춤형 AI 모델과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으며 폐쇄형 AI 모델을 제공하는 오픈AI나 구글과 달리 오픈 소스 대형언어모델(LLM)에 주력한다. AMD는 사일로AI 인수를 통해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을 강화를 꾀하고 있다. 사일로 AI는 알리안츠와 롤스로이스, 유니레버 등 세계적 기업에 AMD 하드웨어를 사용해 AI 솔루션을 제공한 경험이 있다.
AMD는 지난해 AI 분야에 1억2,500만 달러(1,667억원)를 투자한 데 이어 노드AI(Nod.ai)와 밉솔로지(Mipsology)를 인수하기도 했다. AI 모델 최적화 및 컴파일러 기술에 대한 밉솔로지의 전문성과, 오픈소스 AI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노드AI의 기여 덕에 AMD는 AI 전략 가속화를 위한 포괄적인 도구 및 전문성을 갖추게 됐다. 과거에는 500억 달러에 자일링스(Xilinx)도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인수 전략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 나가고 있다.
AMD, '엔비디아 대항' 신규 AI칩 'MI325X' 공개
AMD는 엔비디아 로드맵에 맞춰 용량이나 가격 등 경쟁력을 갖춘 칩도 내놓을 계획이다. 앞서 AMD는 엔비디아가 지난 6월 대만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4’ 행사에서 2026년 출시할 차세대 AI칩 ‘루빈’을 발표하자, 자사의 새로운 AI칩 ‘MI325X’를 선보이며 맞불을 놨다. MI325X는 AMD가 지난해 12월 발표하고 올해 5월부터 공급을 시작한 AI칩 ‘MI300’ 시리즈의 강화형 모델이다. MI300과 같은 아키텍처를 사용하지만 전용 메모리를 기존 HBM3(4세대 고대역폭메모리)에서 HBM3E(5세대)로 업그레이드하고, 메모리 용량도 192GB(기가바이트)에서 최대 288GB까지 늘렸다. 메모리 속도가 빠르고 용량이 늘어날수록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생성형 AI의 훈련 및 학습에 유리하다.
원래 AMD는 MI300으로 올해를 넘기고, 내년에 완전히 새로운 아키텍처를 사용하는 차세대 ‘MI350’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엔비디아가 B200 외에 기존 ‘H100’의 강화형인 ‘H200’이라는 중간 다리 격 AI칩을 선보이고, AI반도체 개발 주기를 기존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한다고 밝히면서 AMD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됐다. 비슷한 주기로 대응 제품을 내놓지 않으면 엔비디아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AMD가 MI325X를 선보인 또 다른 이유로는 ‘분위기 전환’이 거론된다. MI300 시리즈는 지난해 12월 발표 당시 엔비디아 H100과 비교해 우수한 ‘가격 대비 성능’으로 엔비디아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제품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엔비디아는 지난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역대 최대 매출 기록을 경신하면서 독주를 이어갔다. MI300 시리즈가 엔비디아를 견제하기에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이번 MI325X는 그런 분위기를 반전시킬 ‘핀치 히터’인 셈이다.
현재 MI325X에 대한 전망은 나쁘지 않다. MI300 시리즈는 비록 엔비디아의 독주를 막지 못했지만, MS와 오픈AI, 메타, 구글, 오라클 등 유력 빅테크 기업들이 채택하면서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겼기 때문이다. 또한 AMD 혼자 엔비디아를 상대해야 했던 MI300 시리즈와 달리, MI325X는 최근 반엔비디아 진영이 모여 결성한 새로운 고속 인터페이스 표준 ‘UA링크’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함께하는 점이 다르다. UA링크 진영에는 MS와 구글, 메타 등 AI 빅테크는 물론 인텔과 브로드컴, 시스코 등 통신 및 네트워크 부문 강자들과 HPE 같은 서버 전문 기업들이 한데 모였다. AMD가 부족했던 부분을 협력사들의 지원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