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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 코인 찾는 무역 시장, 외환 거래 편의성 부각
"테라도 스테이블 코인이었다" 시장 불신은 여전
한국은행·기획재정부, 스테이블 코인 대응에 속도
암호화폐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이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외환 거래가 잦은 무역 시장을 중심으로 스테이블 코인 거래가 활성화한 결과다. 다만 일각에서는 스테이블 코인의 성장세가 △지난 2022년 테라-루나 폭락 사태 이후 본격화한 시장의 불신 △각국 정부·중앙은행의 견제 움직임 등으로 인해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스테이블 코인, 실물 경제까지 진출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시장에서 스테이블 코인의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은 법정 화폐와 1:1의 비율로 가치가 고정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다. 변동성이 큰 일반적인 암호화폐와 달리 변동성이 낮아 가상화폐 거래소의 매매 기준으로 활용되며, 탈중앙화 금융상품 설계에 이용되기도 한다.
스테이블 코인의 주요 활용처로는 무역 시장이 꼽힌다. 무역 과정에서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하면 외환 거래 절차를 눈에 띄게 간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업 간 무역 거래를 체결하면 수입업체는 현지 통화를 달러로 환전하고, 수출업체는 달러를 현지 통화로 환전하며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송금 절차 역시 까다롭다. 수입업체의 은행은 국제 송금 네트워크(SWIFT)를 통해 수출업체 은행으로 달러를 송금한다. 이로 인해 기업은 SWIFT 서비스 비용을 부담해야 하며, 2~5영업일에 달하는 송금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 반면 스테이블 코인을 이용할 경우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한 직접 결제로 수수료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고, 수출업체와 수입업체 간 실시간 결제가 가능해 환율 리스크를 경감할 수 있다.
정부 역시 스테이블 코인이 무역 시장을 비롯한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지난 8일 기획재정부는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현재 스테이블 코인은 주로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여타 가상자산의 거래·교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나, 국경 간 거래 등을 통해서도 사용되며 실물 경제의 지급·거래 수단 등으로 기능이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테라 대폭락이 불러온 불신
다만 시장에서는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시장 신뢰가 완전히 자리 잡지는 못했다는 평이 나온다. 2022년 벌어진 스테이블 코인 테라(UST) 대폭락 사태의 여파가 여전히 시장 전반에 남아 있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테라 폭락 사태는 스테이블 코인 시장은 물론,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시장 신뢰를 크게 훼손한 사례"라며 "테라 사태 이후 스테이블 코인에 거부감을 가지게 된 투자자가 많다"고 전했다.
테라 대폭락 사태의 배경에는 테라의 불안정한 가치 유지 구조가 있었다. 테라의 발행사 테라폼랩스는 테라의 가치를 조정하기 위해 자체 발행한 암호화폐 루나(LUNC)를 사용했다. 블록체인상 알고리즘에 따라 1달러 가치 루나를 소각해 1테라를 발행하거나, 1테라를 소각해 1달러 가치의 루나를 발행하는 구조다. 테라폼랩스는 테라의 시장 가격이 1달러보다 높아지면 1달러 가치의 루나를 소각해 1테라를 얻어 이익을 볼 수 있고, 테라 가격이 1달러보다 낮아지면 1테라를 소각해 1달러 가치의 루나를 얻어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문제는 이 같은 방식으로 자산 가치를 유지할 경우,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거나 가격이 폭락했을 때 시스템 전반이 붕괴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실제 2022년 대규모 보유자들이 한꺼번에 테라를 매도하자 테라는 가격은 1달러 밑으로 떨어졌고, 루나 가격도 동시에 폭락했다. 알고리즘은 ‘테라=1달러’ 가치를 복구하기 위해 루나를 대량 발행했으나, 오히려 루나의 가격 하락세는 거세졌다. 이후 테라 가격이 추가적으로 하락하며 테라 생태계는 완전히 무너지게 됐다. 해당 폭락 사태는 자그마치 한화 50조원 규모의 투자 손실을 낳으며 암호화폐 시장에 뼈아픈 상처를 남겼다.
정부·중앙은행도 '경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스테이블 코인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도 스테이블 코인 특유의 한계로 꼽힌다. 달러 연동 스테이블 코인이 글로벌 시장에서 주요 거래 수단으로 자리매김할 경우, 각국은 자국 통화 수요 감소로 인한 통화 대체 부작용을 떠안게 된다. 스테이블 코인이 자체 영역을 넘어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에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이에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개발 등 스테이블 코인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로, 법정통화와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과 달리 법정통화 자체의 위상을 갖는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해 12월 “스테이블 코인이 확산되면 화폐 단일성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고, 화폐 발행 주조 차익과 통화정책 수행 방식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CBDC 도입에 관한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정부 역시 스테이블 코인 관련 규제 체계 정비에 착수했다. 기획재정부는 스테이블 코인 등 국경 간 가상자산 거래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스테이블 코인 규제는 원화 연동 코인 발행 제도를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 관련 법령 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하고, 차후 점진적으로 이를 외화 코인에 적용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