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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2017년 이어 세 번째 외국인 매도세에 주가 하락 랠리 투자심리 개선 및 주가 부양 기대
삼성전자가 오는 18일부터 1년간 10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에 나선다. 올해 들어 주가가 30% 넘게 하락하면서 기업 가치가 청산 가치를 밑도는 수준까지 떨어지자, 투자자들을 달래기 위해 강력한 주주환원 카드를 꺼내든 모습이다. 외국인들의 순매도에도 오랜 시간 매수세를 지켜온 개인 투자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전체 주식 중 0.84% 장내 매수·전량 소각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날 장 마감 후 이사회를 열어 향후 1년간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10조 원 규모의 자사주를 분할 매입하는 계획을 의결했다고 공시했다. 우선 18일부터 3개월간 3조원 규모 자사주를 장내 매수해 전량 소각할 방침이다. 이는 보통주 5,014만4,628주, 우선주 691만2036주 규모로, 전체 발행 주식 수에서 차지하는 매입 주식 비중은 각각 0.84%다. 삼성전자는 “나머지 7조원어치 자사주 매수 시점은 주주가치 제고 관점에서 활용 방안과 시기 등을 다각적으로 논의해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자사주 매입 규모는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올 3분기 말 기준 103조7,765억원)의 9.6%에 달한다. 인수합병(M&A)이나 연구개발(R&D), 시설 투자가 아닌 주주환원에 이처럼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건 주주가치 제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연초 이후 이달 15일까지 삼성전자 주가는 32.8% 떨어졌다. 같은 기간 TSMC(74.5% 상승), 미디어텍(29.5% 상승), SK하이닉스(25.1% 상승) 등 경쟁사들과 비교해 매우 부진한 결과다.
삼성전자 주가는 15일 5만3,500원에 장을 마쳤다. 불과 하루 전 49,900원에 장을 마치며 ‘4만전자(삼성전자 주가 4만원대)’우려를 현실화한 후 하루만의 반등이다. 삼성전자 주가가 4만원대로 내려앉은 것은 2020년 6월 15일 이후 4년 5개월 만의 일로, 300조원대를 유지하던 시가총액도 298조원으로 고꾸라졌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번 소식을 반기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과거 2015년(11조4,000억원)과 2017년(9조3,000억원) 두 차례에 걸친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가 부양을 성공으로 이끈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 자사주 매입 계획이 나온 2015년 10월 말부터 매입 및 소각이 완료된 2018년 11월 말까지 삼성전자 주가는 52.5% 상승했다. 이번 자사주 매입과 관련해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삼성전자의 10조원 자사주 매입 발표는 시장의 위기감 속에서 일단 주가의 단기 부양 의지를 보인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펀더멘털 변화는 없겠지만, 투자심리 개선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패닉’ 강타한 시장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증시 하락의 배경으로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거 이탈을 꼽을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그간 강조해 온 대중 강경책으로 중국의 IT 수출을 제한할 경우 한국이 그 피해를 볼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이같은 ‘트럼프 패닉’이 시장에 확산하면서 지난 한 주(11일~15일)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은 1조5,223억원을 순매도했다.
이러한 매도세는 국내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지난달 30일부터 12일 연속 삼성전자 주식을 매도해 온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 기간 코스피 전체 순매도보다 훨씬 많은 2조6,920억원을 순매도했다. 삼성전자 주가 하락을 주도하는 외국인은 트럼프 2기 정부 관세 우려, SK하이닉스와 롱숏 플레이(SK하이닉스 매수 및 삼성전자 매도), 신흥국 비중 축소 등을 이유로 삼성전자 순매도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국채금리 상승도 한국 주식시장 하락세에 힘을 보탰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높아지면서 외국인들이 포트폴리오 내 신흥국 투자 비중을 축소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과 더불어 거세질 관세 폭탄의 사정권에 놓인 한국, 대만 등 대미수출 흑자국에서 자금 회수세가 강하게 나타났다.
오너 일가 상속세 이슈와도 관련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이번 자사주 매입이 오너 일가의 상속세 납부를 위한 조처라는 해석이 나온다. 주가가 급락하면서 삼성그룹 오너 일가가 상속세 관련 대출 실행을 위해 금융권에 담보로 맡긴 주식 평가액이 담보유지비율 아래로 떨어졌고, 이에 주가 방어 수단 마련이 필요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고(故)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 삼성그룹 오너 일가는 이 전 회장의 재산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각자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당시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금융사들은 주가 하락 가능성을 감안해 110% 또는 140% 수준의 담보유지비율을 설정했다. 담보로 제공된 주식 가치가 담보유지비율을 감안한 대출금보다 낮아질 경우, 금융사는 채무자에게 추가 담보를 요청하거나 대출금 중 일부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주식 등의 대량보유 상황 보고서’를 통해 위와 같은 삼성그룹 오너 일가의 주식담보대출 중 일부 계약에 대해 “담보유지비율 미달 시 해당 계좌 내 잔여 담보 주식 또는 예수금 등에 대해 담보유지비율 부족분만큼 인출이 제한되는 등 담보 효력이 추가될 수 있다”고 알리고 있기도 하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오너 일가의 자산 보호를 위해서라도 주가 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는 셈이다.
이는 최근 삼성전자 임원들이 연이어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는 것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1일 공시된 삼성전자의 ‘임원 및 주요주주 특정 증권 등 소유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안중현 삼성전자 사장은 이달 초 삼성전자 주식 1만 주를 1주당 5만7,600원에 매입했다. 이보다 앞선 9월에는 한종희 부회장, 전영현 부회장, 노태문 사장, 박학규 사장, 이정배 사장 등이 잇따라 자사주를 매수했다. 삼성전자 부회장과 사장 25명 중 4명은 아직까지 자사주를 매입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