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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중희토류 7종 수출 통제 선언
비축 물량 한정적, 첨단 산업 ‘비상’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 움직임, 성과는?

중국이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에 맞서 전방위적인 보복 조치를 단행하며 ‘경제 전시 체제’에 돌입했다. 높은 수준의 보복 관세에 이어 이번에는 희토류 수출 통제까지 선언하고 나섰다. 세계 첨단 산업의 필수 자원인 희토류가 무기화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주요국들은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다. 핵심 자원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각국의 노력이 모두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국주의적 메시지 꺼내 든 시진핑
13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중국 정부는 외교부와 상무부 소속 고위 관료들의 휴가를 전면 취소하고, 24시간 소통 가능한 상태에 있으라는 지침을 내렸다. 또 주요 부서에는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대미 통상 전략을 수립·수행한 경험이 있는 관료들을 대거 배치했다. 공산당 선전부 또한 소셜미디어(SNS)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는 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 주석의 발언을 게재하는 등 대미 전략의 핵심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중국 같은 나라들이 미국에 손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중국산 수입품에 최고 1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곧바로 “중국은 미국보다 더 큰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돼 있다”며 애국주의적 메시지로 맞불을 놨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중국은 공포에 질려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거래를 원하면서도 방법을 모르는 걸로 보인다”고 응수했다.
이에 중국은 더 큰 보복 조치로 대응했다. 중국 상무부는 미국산 수입품에 34%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 군수기업 16곳에 대한 수출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또 사마륨, 가돌리늄, 테르븀 등 7종의 희토류 자원에 대한 수출 통제를 선언하며 첨단 산업의 핵심 자원을 무기로 꺼내 들었다. 중국은 이 같은 조치를 미국 증시 개장 직전이자, 청명절 연휴 기간인 지난 4일 오전 발표하며 시장의 충격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를 보였다.
외교계는 중국이 단순한 무역 보복을 넘어 미국과의 전면전을 염두에 둔 전략적 대응에 나섰다고 해석했다. 중국은 과거에도 희토류 수출 제한을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한 바 있으며, 이번에도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희토류는 자동차와 드론, 로봇과 미사일 등 첨단 제품 제작에 필수적인 원료다. 제임스 리틴스키 MP머티리얼즈 회장은 “드론과 로봇은 전쟁의 미래상으로 여겨지는데,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미래 공급망의 핵심 요소가 마비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탄탄한 매장량에 압도적 기술력까지
중국이 희토류 수출 제한을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내세울 수 있었던 데는 관련 분야에서 독보적인 세계 1위 공급국이란 자신감이 짙게 작용했다. 전 세계 희토류 채굴량 기준으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0%에 달하며, 정제 및 가공 부문에서는 무려 9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희토류는 일반적인 원석 채굴보다 정제와 가공에서 훨씬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데, 이 공정에서 중국이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다른 국가들의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이번 수출 제한 목록에 오른 중희토류는 중국의 영향력이 더욱 크다. 중국은 2023년까지 전 세계 중희토류 금속 공급량의 99%를 생산했다. 한때 베트남 한 정유공장에서 소량의 중희토류를 생산하기도 했지만, 세금 관련 분쟁에 얽히면서 공장이 문을 닫은 상태다. 또 해마다 약 20만 톤(t)에 달하는 전 세계 희토류 자석 사용량 중 90%가량도 중국산이다.
중국 내 주요 희토류 광산으로는 내몽골과 쓰촨성, 광둥성 등이 꼽힌다. 미국은 물론 유럽연합(EU), 일본 등 첨단 산업 국가들 대부분이 이들 광산에서 채굴되는 중국산 희토류에 수급을 의존한다. 미국은 전체 희토류 수입량의 약 75%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으며, 일본은 약 57.5%를 중국에서 들여온다.
한국 역시 희토류 수입의 79.8%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이번 사태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한국 정부는 희토류 자원 확보를 위해 비축 물량 확대와 해외 공급망 다변화 등 전략을 취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디스프로슘, 이트륨 등 일부 희토류에 대해 약 6개월분 비축량을 확보하고 있으며,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P)을 통한 국제 협력 강화에 한창이다.

공급망 다변화엔 현실적 한계 여전
전 세계 각국 또한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가능성에 대비해 수년 전부터 공급망 다변화를 모색해 왔다. 미국은 서부 내륙 지역에서 희토류 광산 개발을 확대하고 있으며, 석탄재에서 약 1,100만 톤의 희토류 자원을 발견해 이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해당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브리짓 스캔런 오스틴 대학 교수는 “별도의 채굴을 하지 않고도 석탄재에 막대한 양의 희토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며 “미국의 핵심 광물 조달 전략에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에서는 벨기에 화학기업 솔베이가 프랑스 라로셸 공장의 희토류 생산 라인을 증설하는 등 2030년까지 역내 희토류 수요의 30%를 자체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일본은 프랑스 기업 카레스터와 협력해 희토류 정제 및 재활용 프로젝트에 1억 유로(약 1,6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으며, 프랑스 정부도 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호주 역시 광업 기업 라이너스가 최근 말레이시아에서 디스프로슘 정제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모두 초기 단계에 불과해 당장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희토류 가공 및 정제 기술의 격차는 단기간 내 좁히기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중국은 수십 년간의 투자와 경험을 통해 희토류 가공 기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이는 다른 국가들이 단기간 내에 따라잡기 어려운 부분이다.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등이 자국 내에 상당량의 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가공 시설 부족을 이유로 대부분의 희토류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환경오염 문제 또한 생산 설비 확대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희토류는 채굴과 추출 공정에 황산과 암모늄 등 강력한 화학 물질이 대량 사용되며, 이는 지하수 및 강물 오염으로 이어지곤 한다. 생산 후 폐기물 역시 유해 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처리에 막대한 비용이 수반된다. 상대적으로 느슨한 환경 규제와 낮은 생산 비용을 바탕으로 자국 희토류 산업을 성장시킨 중국이 세계 1위 공급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