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필수 소재 기업 편입해 '반도체 종합 서비스' 강화 그간 환경 사업 다각화 및 건설업 부진으로 재무 상황 악화 IPO 위한 체질 개선 '잰걸음', 자회사 매각도 진행

SK그룹이 SK㈜의 사내독립기업(CIC)인 SK머티리얼즈의 자회사 4곳을 SK에코플랜트에 편입하는 사업재편안을 시행한다. 2026년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는 SK에코플랜트의 재무 건정성을 개선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SK온을 살리기 위해 SK이노베이션과 SK E&S를 합병하는 등 조치를 취한 데 이어 이번엔 'SK에코플랜트 살리기'에 나섰다는 평가다.
SK㈜, 에코플랜트에 4,800억 자본 확충
13일 SK㈜는 전날 오후 이사회를 열어 SK머티리얼즈의 반도체 소재 자회사 4곳을 SK에코플랜트 자회사로 재편하는 내용의 사업구조개편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SK㈜는 SK머티리얼즈 CIC 산하의 자회사 SK트리켐(65%), SK레조낙(51%), SK머티리얼즈제이엔씨(51%)의 보유 지분을 SK에코플랜트에 현물 출자하고 그 대가로 SK에코플랜트의 신주를 발행받는다. 여기에 더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SK머티리얼즈퍼포먼스는 SK에코플랜트와 포괄적 주식교환을 진행한다. 약 4,800억원 규모의 자본을 SK에코플랜트에 지원하는 셈이다.
이번 자회사 편입으로 SK에코플랜트는 반도체 제조 주요 공정 중 △포토공정 △식각공정 △증착 및 이온주입 공정 △금속배선공정 △패키지공정 등에 필요한 핵심 소재와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공정인 OLED 증착 공정의 소재 공급 역량을 내재화하게 됐다. SK트리켐은 박막을 반도체용 웨이퍼에 부착하는 데 필요한 프리커서 소재 전문 기업이다. SK레조낙은 반도체 회로 패턴 외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데 쓰이는 식각공정용 특수가스를 공급한다. SK머티리얼즈제이엔씨는 OLED용 발광 소재인 블루 도판트를 생산, 공급하고 SK머티리얼즈퍼포먼스는 웨이퍼에 반도체 회로를 형성하는 공정에 활용되는 포토 소재 전문 기업이다.
새로 편입되는 4개 기업은 기술 및 품질 경쟁력을 기반으로 성장성과 안정성까지 겸비하고 있다. 4개 기업의 지난해 합산 매출액은 3,500억원에 달해 포트폴리오 확장과 더불어 우량자산 내재화에 따른 매출 및 수익성 향상 등 내실을 다지는 효과도 기대된다. SK에코플랜트만의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전력·용수·도로 등 기반시설과 FAB(제조공장) 등 반도체 인프라 EPC(설계·조달·시공) 구축 노하우를 기반으로 △SK에어플러스(산업용 가스) △에센코어(반도체 모듈) △SK테스(리사이클링) 등 기존 포트폴리오에 더해 반도체 소재 부문까지 강화하는 반도체 종합 서비스 밸류체인을 갖췄기 때문이다.

내년 IPO 이행 못하면 수천억 투자금 반환해야
SK그룹이 건설과 관계없는 사업까지 넘겨주며 SK에코플랜트 살리기에 열을 올리는 건 막대한 비용부담 때문이다. 앞서 SK에코플랜트는 2022년 프리 IPO(상장 전 투자유치) 당시 4,000억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RCPS) 94만 주, 6,000억원 규모의 전환우선주(CPS) 133만333주를 발행해 총 1조원의 자본을 확충하면서 4년 내 IPO를 약속했다. 이에 따라 2026년까지 IPO를 이행하지 않으면 수천억원을 토해내야 한다. 결국 SK는 에코플랜트가 건설업만으로는 독자적인 상장이 어렵다고 판단, SK㈜의 사업을 떼내는 고육책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SK에코플랜트의 2023년 영업활동현금흐름은 마이너스(-) 7,319억원을 기록했다. 10대 건설사 중 가장 안 좋은 수준이다. SK에코플랜트의 아파트 신규 수주 실적도 크게 감소했다. SK에코플랜트는 2023년 1조2,980억원, 지난해 1조3,073억원의 정비사업을 수주했으나 올해는 현재까지 수주가 한 건도 없다. 현대건설과 컨소시엄을 맺은 ‘면목7구역 재개발’(5,959억원 규모)이 올해 상반기 중 유일한 정비사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SK㈜는 지난해에도 반도체 가공·유통사 에센코어와 산업용 가스 제조 업체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를 SK에코플랜트의 자회사로 편입하며 재무 부담을 완화했다. 여기에 반도체 클러스터 일감도 SK에코플랜트에 밀어줬다. 현재 SK에코플랜트는 본업인 건설업을 기반에 두고 환경과 에너지에 이어 반도체 종합 서비스로 기둥을 세운 상태인데, 지난해 SK하이닉스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나서면서 SK에코플랜트가 직접적인 효과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SK에코플랜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34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9% 증가했는데 이는 1조원대를 밑돌던 플랜트 일감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과 함께 4조원대로 급증한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결과다.
권고사직까지 꺼내든 SK
지난해 말 SK에코플랜트가 임직원을 대상으로 권고사직 절차에 착수한 것도 그룹 리밸런싱의 일환이었다. 권고사직은 회사가 저성과 근로자에게 자진 퇴사를 권유하고 이에 응하면 근로관계를 종료하는 퇴직 형태다. SK에코플랜트 측은 권고사직을 거부한 직원에 대해 대기 발령, 급여 40% 삭감 등을 비롯한 후속 절차를 밟을 것으로 알려졌다.
타 계열사보다 한발 빠른 인적 쇄신을 진행 중인 SK에코플랜트가 권고사직 카드까지 꺼내든 것은 회사를 살리기 위한 모든 방안을 총동원하겠다는 의지로 평가받는다. 그룹 계열사 가운데 체질 개선 필요성이 가장 큰 것으로 거론되는 SK에코플랜트가 결국 조직 슬림화를 위한 칼을 꺼내든 셈이다.
현재 SK에코플랜트는 리뉴어스와 리뉴원 등 환경 자회사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최근 예비입찰에서 주요 후보인 글로벌 사모펀드(PEF)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스틱인베스트먼트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가격을 제시하면서 매각 작업이 난항에 빠졌다. SK그룹은 약 2조원 수준의 매각가를 기대했으나, KKR은 1조원 중반대, 스틱은 그보다 낮은 수준의 가격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이 같은 환경 자회사 매각 지연이 결국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실제로 리뉴어스와 리뉴원은 과거 대규모 인수합병(M&A)으로 SK가 확보한 회사들로, 일정 수준 이상의 매각가가 아니면 그룹 차원에서도 쉽게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