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일본제철-US스틸 인수 논의 진전 조짐 中 철강 견제 위한 트럼프의 묘안인가 日도 철강 관세 리스크 회피 가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에 대한 긍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일본제철이 US스틸에 대한 투자 규모를 대폭 확대하며 강력한 인수 의지를 드러내자, 과반 지분 인수를 반대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노선을 선회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인수 거래가 중국을 견제하고 싶은 미국과 관세 리스크를 회피해야 하는 일본에 나란히 이득이 될 것이라는 평이 나온다.
트럼프 "일본제철, 美에 140억 달러 투자할 것"
2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많은 고려와 협상 끝에 US스틸은 미국에 남을 것이며, 위대한 피츠버그시에 본사를 유지할 것”이라면서 “US스틸과 일본 간 계획된 파트너십으로 최소 7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 경제에 140억 달러(약 19조원)를 추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투자 대부분은 향후 14개월 내에 실시되며, 펜실베이니아주 사상 최대 규모 투자”라고 덧붙였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때부터 공회전하던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논의는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에 인수 계획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순풍을 탔다. 이후 일본제철은 140억 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 계획을 제시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을 바꾼 요인 중 하나는 일본제철이 투자액을 대폭 늘린 것”이라며 “고율 관세로 미국 경제에 충격이 우려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 측은 대규모 대미 직접 투자를 ‘관세 성과’로 빨리 내세우고 싶은 상황이었다”라고 분석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US스틸과 일본의 ‘계획된 파트너십’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일본제철이 US스틸의 과반 지분을 인수하는 것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투자'만을 허용하겠다고 거듭 강조해 왔다. 반면 일본제철은 US스틸의 완전 자회사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제철의 US스틸 100% 출자가 승인될지가 중요하다”며 “만약 미국 행정부 측이 과반인 51%나 소액 출자 등에 머물라고 주장한다면 합의점은 다시 불투명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中 '철강 덤핑' 견제 효과 기대
철강업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철강 사업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노선을 선회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최근 수년간 저가 철강 제품을 대거 수출하며 시장 질서를 교란해 왔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철강 순수출량은 1억390만 톤(t)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5년(9,962만 톤) 이후 9년 만에 최대치다. 2020년 3,344만 톤 수준이었던 중국 철강의 연간 순수출량은 2021년 4,096만 톤, 2022년 5,676만 톤, 2023년 8,262만 톤 등으로 매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철강 순수출량이 늘어났다는 것은 자국 내 철강 수요가 감소하고, 철강 생산은 확대됐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자국 기업이 생산한 물량이 내수 시장에서 자체적으로 소화되지 않자 수입은 줄이고 수출을 늘린 것이다. 실제 중국 야금(冶金)공업규획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철강 수요는 전년 동기 대비 4.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불경기로 인해 건설 업계가 소비하는 철강이 급격히 줄어든 영향이다.
글로벌 철강업계 절반 이상을 점유하는 중국이 덤핑 행위를 일삼자, 미국은 지난 3월부터 모든 수입 철강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며 견제를 본격화했다. 이번 인수 거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돼 일본제철과 US스틸이 합병될 경우 중국 철강 기업들이 받는 압박은 한층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2023년 기준 일본제철의 조강 생산량은 4,366만 톤으로 세계 4위며, US스틸은 1,575만 톤으로 24위다. 양 사의 조강 생산량 합계치는 5,941만 톤으로, 중국의 유력 철강 업체인 안스틸(5,589만 톤)의 생산량을 웃돈다.
美 현지 생산의 이점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는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호재가 될 수 있다. 일본제철이 합병을 통해 현지 생산 기지를 확보하면 미국발(發) 관세 리스크를 일부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결국 글로벌 기업들의 현지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라며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인수해 현지 생산 능력을 갖추면 고율 관세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짚었다.
국내 철강 기업들 역시 유사한 해결책을 택하고 있다. 지난 3월 현대제철은 2029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제철소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투자 규모는 58억 달러(약 8조5,000억원)다. 루이지애나 제철소는 자동차 강판 특화 제철소로, 직접환원철을 생산하는 원료 생산 설비와 열연 및 냉연강판 생산 설비 등으로 구성된다. 생산 능력은 연 270만 톤(t) 수준으로 예상된다. 현대제철은 향후 루이지애나 제철소와 인접한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기아 조지아 공장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등과 협력해 물류비를 절감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내 철강업계 1위 기업인 포스코그룹도 지난달 현대제철의 미국 루이지애나 제철소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두 회사가 처음으로 해외 공동 투자·생산에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제철은 대규모 투자 리스크를 절감할 수 있게 됐으며, 포스코는 미국 생산 거점을 확보할 기회를 얻었다. 현재 양 사는 포스코의 투자 금액과 지분율 등 세부 사항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