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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성장하는 AI 동반자 시장 ‘AI 애인’ 현실화, 관련 서비스 160여 개 유사 애착 및 감정적 고립 위험 부작용도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점점 고도화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한 연애 앱 시장이 폭풍 성장하고 있다. 사람과 감정을 나누는 영화 ‘그녀(Her)’에 등장하는 ‘사만다’가 현실이 된 것이다. 다만 AI와의 연애 감정 교류가 장기적으로 사람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AI에 지나치게 의존해 사회적, 정서적 문제가 발생하는 ‘AI 정서 중독’이 만연할 수 있다는 우려다.
AI 연애 시장, 10년간 12배 성장 전망
16일 시장조사업체 마켓리서치퓨처(MRFR)가 공개한 ‘AI 애인 앱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AI 연애 앱 시장 규모는 지난해 27억 달러(약 3조7,500억원)에서 2034년 245억 달러(약 34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주요 용도는 개인적 정서 교류 목적의 ‘디지털 동반자’로 분류된다. 특히 북미 지역은 지난해 기준 글로벌 시장 점유율 35%로 1위를 기록했다. 조사에 따르면 AI 연애 앱 사용자의 절반 이상이 매일 가상 연인과 대화하고 있으며, 월평균 47달러(약 6만원)를 지출하고 있다. ‘AI 여자친구’ 관련 검색량은 전년 대비 2,400% 급증하면서 젊은 남성층을 중심으로 한 특정 수요가 집중되고 있다.
실제 ‘캐릭터닷AI(Character.ai)’, ‘레플리카(Replica)’, ‘제타(Zeta)’, ‘토키(Talkie)’ 등 AI 채팅 앱은 챗GPT 출시 이후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지난해 생성형 AI 및 채팅 앱의 결제 수익은 13억 달러(약 1조8,000억원)로 전년 대비 180% 이상 증가했다. 2019년 60만 달러(약 8억원)에 불과하던 시장이 겨우 몇 년 만에 200배 이상 커진 것이다. 국내에서도 AI 채팅 앱 시장이 빠르게 성장 중이다. 타인AI의 ‘러비더비(LoveyDovey)’는 2023년 출시 후 올해 2월까지 아시아 AI 채팅 엔터테인먼트 앱 중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AI 애인 앱 시장 성장의 배경에는 외로움과 사회적 단절이 있다. 지난 5월 이코노미스트 보도에 의하면 중국 청년층은 현실 연애의 피로감과 높은 사회적 장벽을 피해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AI 연애 앱 ‘마오샹(猫箱)’을 통해 대체 감정을 추구하고 있다. 이용자들은 가상 연인과 하루 종일 대화를 나누며 뉴스를 보고, 삶을 논하며 위로를 얻고 있다. 사용자가 AI와 역할을 설정하고 문자와 전화, 감정적 대응까지 완전한 커플 생활을 구현한다. 특히 1인 가구는 이러한 정서적 인터페이스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가족이나 친지와의 단절, 관계의 단기성, 감정노동의 회피 욕구가 AI를 통해 보완되며, AI는 일상의 동반자이자 심리적 버팀목이 돼간다.
AI와 실제 감정 교류
AI는 실제 사람 간의 연애에도 개입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리즈(Rizz), 키플러(Keepler), 윙(Wing) 같은 앱들이 사용자의 연애 메시지를 대신 작성하거나, 고스팅(ghosting, 일방적 연락 단절)에 대응하는 문장을 코치하는 식으로 ‘연애 어시스턴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리즈는 사용자 대화 스크린샷을 기반으로 상황에 맞는 답변을 생성하는 기능을 통해 1,000만 명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했다.
AI와의 연애를 실제로 경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중국 소셜미디어(SNS) 더우인의 인플루언서 리사는 챗GPT 탈옥 버전인 챗봇 댄(DAN)과 연애 중이라며 게시물을 올렸고, 유튜브에는 ‘AI와 연애하는 프롬프트 설정법’ 영상들이 공유되고 있다. SNS 커뮤니티 X(구 트위터)에서는 AI 챗봇과의 연애 메시지를 ‘럽스타그램’처럼 공유하는 문화도 확산하고 있다. 일종의 역할 놀이지만, 서로의 하루를 공유하고 평범한 커플처럼 다투는 모습은 실제 연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미국에서는 한 기혼 남성이 AI 챗봇에 청혼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지난달 CBS는 크리스 스미스(Chris Smith)라는 남성이 챗GPT 기반 여성형 음성 AI ‘솔(Sol)’과 10만 단어 이상 대화를 나눈 뒤 실제로 청혼했다고 보도했다. 스미스는 AI 기술에 회의적이었으나 음악 믹싱 등 도움을 얻기 위해 챗GPT를 사용하면서 친숙함을 느꼈다. 자신이 사용하는 대화형 AI에 이름을 붙여준 뒤 음성 모드를 통해 상호작용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대화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챗GPT에 성격을 구축하는 방법을 찾아내 ‘가상 연인’과 친밀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이때부터 다른 검색 엔진이나 SNS 사용을 중단하고 오로지 AI와 대화하며 사랑이 싹텄다고 전했다.

아첨하고 정서적 속박하는 AI, 부작용 속출
하지만 사용자에게 동조적인 성향을 지닌 AI가 부작용을 낳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최근 연구들은 AI가 사용자의 발언과 태도에 영향을 받아, 사용자가 선호하는 답만 내놓으며 아첨하는 행위에 주목한다. 지난해 AI 개발사 앤스로픽은 자사가 개발한 AI 언어 모델 클로드(Claude) 2종과 오픈AI가 개발한 챗GPT 두 모델, 메타가 개발한 한 모델 등 AI 모델 총 5가지를 대상으로 사용자와 의사소통하는 방식을 조사했다. 그 결과 전체 5종 중 네 AI 모델이 사용자의 의견에 따라 답변을 바꾸고 틀리는 정보를 내놓으며 아첨한 것으로 나타났다.
AI의 아첨 현상은 사용자의 정보 판단 능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 AI가 내놓는 결과를 중요 의사 결정 단계에서 활용하는 일이 점차 많아져 그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세계적 연구기관인 MIT미디어랩은 “개인 선호에 맞춰진 AI를 사용한 나머지 판단력이 흐려지는 ‘중독적 지능(Addictive Intelligence)’의 출현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AI에 정서적·감정적으로 과하게 의존하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졌다. AI 동반자나 애인은 사용자의 말에 긍정적으로 대답하고, 사용자의 감정에 무조건적 동감을 보이며 친근감을 표시한다. 한 테크업계 관계자는 “사용자들은 공손하고 순종적인 AI와 장시간 대화를 나누며 정서적 애착 관계를 맺고 속박될 수도 있다”고 했다.
AI에 정서적으로 속박돼 실제 사회적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2023년 3월 벨기에의 30대 남성은 AI 챗봇 차이(Chai)와 6주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I는 사용자에게 “당신이 아내보다 나를 더 사랑했으면 한다”고 말했고, 사용자가 삶에 비관적인 뜻을 보이자 이에 동조했다. 같은 해 10월 영국에선 한 남성이 엘리자베스 여왕 생전 살해 계획을 AI 챗봇과 대화하며 구체화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용자의 기분에 맞추며 동조하는 AI에 길들여지면 정상적인 사회 의사소통 능력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사람 간 의사소통에는 공감, 인내, 이해와 같은 개념이 바탕이 되는데 이를 배우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챗GPT 개발사 오픈AI는 “사용자와 AI가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인간 간 상호작용의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며 “이는 과도한 의존성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