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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글로벌 AI 협력에 연일 '러브콜' 미국, 규제 최소화·속도 최대화로 질주 실상은 화려한 외피뿐, 접점 없이 간극만 확인

중국 상하이에서 '세계인공지능대회(World Artificial Intelligence Conference, WAIC)'가 개막한 가운데, 중국이 글로벌 AI 거버넌스의 중심 국가로 자임하고 나섰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대대적인 AI 규제 완화 전략을 발표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정부는 다자 협력과 새로운 국제 AI 프레임워크의 수립을 공식적으로 촉구하고 있지만, 미중 간 전략의 근저에는 뚜렷한 균열이 존재하는 모습이다.
중국의 외교적 승부수, 협력 앞세운 비타협 노선
29일 외교계와 AI업계에 따르면 리창(李强) 중국 국무원 총리는 26일 WAIC에서 AI 거버넌스를 조율할 국제기구의 설립을 공식 제안하며, 중국이 글로벌 AI 규범 수립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글로벌 AI 거버넌스를 주제로 한 고위급 회의를 열고 오픈소스 공유, 글로벌 사우스(중남미·동남아·중동·아프리카 등 신흥국)를 포괄하는 포용성, 그리고 기술 독점을 지양하는 생태계를 강조했다. 로이터통신 보도에 의하면 리 총리는 "AI가 소수 국가와 기업의 전유물이 돼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면서 "국제기구의 본부를 상하이에 두자"고 제안했다.
이 같은 외교적 제안은 트럼프 행정부가 AI 산업에 대한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정책 청사진을 공개한 직후 나왔다. 트럼프 행정부는최근 90건이 넘는 규제 완화 조치를 추진하면서 AI를 공공재가 아닌 경제 성장의 촉매로 정의했다. 이처럼 양국의 접근법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미국이 민간 주도의 속도전을 택했다면, 중국은 집단적 방향성과 신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AI 부상 이면에 숨겨진 청사진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AI 굴기는 장기적 국가 전략의 산물이다. 산업 정책,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국가 주도의 생태계 정렬이 어우러진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은 딥시크(DeepSeek) 등 중국 AI 기업들은 R1과 같은 고성능 저비용 오픈소스 모델을 잇따라 공개하며 미국의 기술 우위를 정면으로 위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의 전략은 반도체 설계부터 개발자 접근성에 이르기까지 공급망 전반을 포괄한다. 이는 미국의 수출 규제를 견딜 수 있는 자립적 내수 시장을 구축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예컨대 이번 WAIC에서는 화웨이, 엔플레임 등 칩 제조사와 AI 모델 개발 기업 간의 기술 제휴가 다수 이뤄졌는데, 이는 AI 생태계의 자율성과 동시에 글로벌 확장성을 겨냥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실제 이번 WAIC에서는 800개 이상의 중국 기업이 7만㎡ 이상의 전시 공간을 차지하는 등 중국의 AI 패권 야심을 여실히 드러냈다. 로봇, 디지털 휴먼, AI 스마트글래스, 메가 AI 클러스터 등 다양한 기술이 공개됐고, 그 중에서도 화웨이의 클라우드매트릭스 384(CloudMatrix 384)는 특정 작업에서 엔비디아 칩을 능가한다는 평가도 나왔다.
외형만 과시, 내용은 부재
그러나 이 같은 외형적 성과에도 이번 고위급 회의에서 실질적인 글로벌 거버넌스 틀을 도출하는 데는 실패했다. 리 총리가 새로운 국제기구 설립을 제안하고 협력을 강조했지만 어떤 강제 조항도, 구체적 일정도 마련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로이터는 전 세계적으로 AI 규제에 대한 합의가 여전히 부재하며 제안된 기구 역시 회원 구성, 권한 범위, 집행력 측면에서 불확실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번 회의는 실질적 성과보다는 외교적 연출에 방점이 찍힌 행사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중국이 제시한 다자주의적 협력 제안은 미국의 속도 우선 전략과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하지만 양국 모두 국제적 AI 질서 재편의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 세계는 여전히 ‘누가’, ‘어떤 방식으로’ AI를 이끌 것인가를 두고 분열된 상태다.
본질적으로 미국과 중국은 공통의 기반을 모색하기보다는 자국의 전략적 비전을 부각하는 데만 주력해 왔다. 화려한 수사와 정상급 회의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국제 규범이나 실질적 합의는 여전히 도출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번 회의는 양 진영 간 철학적, 제도적 단층선을 오롯이 드러내며 그 균열이 당분간 봉합되기 어려운 수준임을 재확인시켰다는 평가다.